마가복음 제 1 강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말씀 : 마가복음 1:1-15
요절 : 마가복음 1:1
Ⅰ.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 (1-8)
1. 저자는 무엇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까(1)? 복음은 누구에 관한 것이며 예수님은 어떤 분이 십니까?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사자의 맡은 사명이 무엇입니까(2)?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의미하는 바 가 무엇입니까(3)? 여기서 ‘주’는 누구를 가리키며,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3.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어떻게 예비했습니까(4b)? 그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회개란 무엇이며 또 회개한 자가 누릴 수 있는 영적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요일1:9)
4. 세례 요한의 말씀 전파를 통해 백성들 가운데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5)? 이로써 주의 길이 어떻게 예비되었습니까?
5. 세례 요한의 실제 생활이 어떠했습니까(6)? 이런 생활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6. 그는 누구를 전파합니까? 그는 자신과 비교하여 그리스도는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증거합니까(7,8)?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오. 물 세례와 성령 세례는 어떻게 다릅니까?
Ⅱ.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9-15)
1. 예수님은 메시야의 사명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하셨습니까(9,10)? 이 때 하늘이 갈라진 것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성령 강림은 메시야의 사역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사11:1,2, 사42:1, 사61:1, 행10:38)
2. 하나님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선포했습니까(11)?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왜 기뻐하셨습니까? (히10:7)
3. 누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까(12)? 예수님은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전에 어떤 어려움 을 겪으셨습니까(13)? 성령께서 예수님이 복음역사를 시작하시기 전 사단에게 시험 받게 하신 뜻이 무 엇입니까?
4. 요한이 왜 잡히게 되었습니까? (막6:17,18) 이 사건이 그 시대에 대해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 때 예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14)?
5. 예수님이 전파하신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15)?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제 1 강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말씀 : 마가복음 1:1-15
요절 :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님의 아름다운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에는 예수님을 각기 다른 측면에서 기록한 네 복음서가 있습니다. 그 중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씌여지고 가장 짧은 책으로서 단순하고 간결하고 힘이 있어 생동감이 넘칩니다. 마가복음에는 죄로 인해 병든 인생들을 섬기시는 일꾼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일하기는 싫어하고, 인정받고 섬김 받기는 좋아하지만 낮아져서 섬기기는 싫어합니다. 그러면서도 위대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자는 예수님과 같이 겸손히 낮아져서 남을 희생적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마가복음 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의 섬김의 도리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준비되고 시작 되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1)
마가복음은 장엄한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이 말씀은 마가복음 전체의 제목으로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창세기 1:1절이 천지창조의 대역사를 선포하는 말씀이라면, 마가복음 1:1절은 인류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는 장엄한 복음역사의 시작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어두움과 절망의 시대가 물러가고 빛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유앙겔리온,ευαγγελιον)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예비하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복음은 애매모호한 철학이나 윤리 체계가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인간을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세상에 기쁜 소식이 많이 있지만 이처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걸프전이 끝나자 미국은 승리의 기쁨으로 충만해 있지만 이라크는 절망 상태에 빠져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식은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세상 만민이 누구나 기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시고 (마1:21),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으신 왕이요, 제사장이 되십니다. 무엇보다도 그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서는 시대의 영웅이나 위대한 인간의 전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으로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저자는 이 장엄한 복음의 시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둘째,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 (2-8)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선포한 후 이 복음이 어떻게 시작 되었는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메시야의 선구자 세례 요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어떻게 주의 길을 예비했습니까?
(ⅰ)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 (2-5)
2,3절 말씀은 메시야의 선구자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복음은 혜성과 같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구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어떤 머리 좋은 사람이 공교히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시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이 복음의 역사성과 진정성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시기 전 먼저 메시야의 선구자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사명은 주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것입니다. 마가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생략하였지만 누가는 이사야 40:4,5절을 인용하여 기록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 말씀은 복음을 영접하기 힘든 네 가지 마음밭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골짜기와 같은 마음밭은 열등감과 운명과 마음의 상처로 인해 깊이 패인 마음밭을 말합니다. 파괴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을 보면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골짜기와 같습니다. 이런 마음밭을 돋우려면 오랫동안 말씀을 심고 사랑의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산은 교만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교만한 자는 영적인 것을 우습게 여기고 말씀을 튕깁니다. 이런 마음은 회개의 불도저로 밀어야 합니다. 고르지 않은 울퉁불퉁한 마음 밭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마음밭입니다. 또 험한 곳은 음란과 강포가 충만한 마음 밭입니다. 이런 마음밭들은 그 특징이 완악하고 반발적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은 이런 마음밭을 복음을 영접할 수 있도록 순수하고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밭으로 가꾸는 것입니다.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메시야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도록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회개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μετανοια)로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회개에는 죄에 대한 지적 인식과 정적 참회와 죄를 멀리하고 떠나는 의지적인 전환과 실생활에서 열매를 맺는 네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한다고 하면서 같은 죄를 반복하고 생활의 변화가 없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후회입니다. 회개에는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회개에는 헛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살전1:9) 회심이 있고, 또 실생활에서 우리의 죄악된 습관을 고치거나 인본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을 바로 잡는 개혁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되게 회개할 때 죄사함의 은혜가 있고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있게 됩니다. 죄사함의 축복은 세상의 그 어떤 축복보다도 가장 큰 축복입니다 (롬4:7,8).
세례 요한은 그들이 세상으로 향한 마음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그들의 죄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요한은 미사여구가 담긴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실제적인 죄 문제를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좋은 말만 해 주고 좋게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고 일시적으로 사이가 안 좋을지라도 죄를 근본적으로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복음 역사를 이루려면 어느 정도 환경이 구비되어야지 광야와 같이 힘든 환경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복음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환경 탓, 조건 탓을 하며 불평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는 광야와 같은 환경이 오히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꼬투리가 됩니다. 역사를 살펴 보면 역사 창조는 좋은 환경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광야와 같은 힘든 환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얼마전 저는 우연히 TV에서 황량한 사막에서 녹색바람을 일으킨 이스라엘의 농업에 대한 특집방송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황량한 사막에서 장미꽃을 피우고 각종 과일들을 생산하여 유럽과 미국에까지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보면서 결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 자세가 문제요, 믿음이 문제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 교만한 지성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아 믿어 순종케 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녹색바람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교사님들은 오직 믿음으로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러시아에 이러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도전해 나갈 때 영적으로 광야와 같은 러시아에도 복음의 녹색바람이 불게 될 것입니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백성들이 다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회개의 메시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죄를 짓고 싶은 죄의 소욕이 있지만 또 동시에 죄를 미워하고 죄로부터 벗어나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외적 환경으로 인해 고통하는 것보다 죄로 인해 고통하는 것이 훨씬 더 큽니다. 사람들은 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도울 때 죄와 타협하기보다 죄를 회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 때 사람이 살아나게 됩니다.
(ⅱ) 사명인의 생활 양식 (6)
6절 말씀은 세례 요한의 삶의 스타일이 어떠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약대털 옷은 오늘날 사치품에 속한 고가품이요 가죽 띠도 비쌉니다. 또한 메뚜기도 고급 요리에 속하고 석청도 매우 비쌉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비싼 옷을 입고 영양가가 풍부한 비싼 음식을 먹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약대 털옷은 선지자들이 입는 옷으로서 전천후 작업복과 같은 것입니다 (슥13:4). 또 메뚜기와 석청은 당시 가난한 자들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하고 검소했습니다. 그의 삶은 당시 성전에서 화려한 가운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멋있는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종교 지도자들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구약의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의 종답게 그 시대와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심정과 능력, 그의 생명력이 넘치는 메시지는 바로 그의 이런 삶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있는 사명인이 되고자 하면 반드시 단순하고 검소한 그의 삶의 스타일을 배워야 합니다.
(ⅲ) 그리스도를 전파함 (7,8)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기가 한창 올라갈 때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혹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할 만큼 존경하고 흠모했습니다 (눅3:15). 사람이 이렇게 인기가 올라가고 유명해지면 교만해져서 못쓰게 되기 쉽습니다. 이런 때 중심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때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서 적극적으로 예수님에게로 돌렸습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도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만나야 의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위대한 사명인이었습니다. 그의 위대성은 자기를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인 그의 겸손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자기와 본질적으로 다른 분임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굽혀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만큼 위대한 분이시요, 또 자기보다 훨씬 능력이 많은 전능하신 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물세례는 회개의 세례로서 죄사함을 받도록 마음 준비를 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근본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성령은 소멸하는 불로서 더러운 죄악을 불태워 버립니다. 성령 세례를 받을 때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이 때까지 우리는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어떻게 예비했는가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복음 역사를 준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셋째, 세례 받으신 예수님 (9-11)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며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유대의 요단강까지 먼 길을 걸어서 오셨습니다(9). 백성들은 죄사함을 받기 위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히4:15)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데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첫째로, 메시야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신다는 공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때까지 갈릴리 나사렛에서 부모님을 섬기며 조용히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사생활을 청산하시고 메시야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둘째로, 백성들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백성들과 꼭같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백성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자 세례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하며 극구 말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3:14,15).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독자적으로 복음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 때까지 이루신 역사를 계승하시고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실 때 무슨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을 보면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오셨습니다. 하늘이 갈라진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강림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야 사역을 감당할 힘과 능력과 지혜를 위로부터 덧입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성령 강림은 B.C 8세기경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을 덧입으셨습니다 (사11:1,2). 하나님은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붓듯 하심으로 예수님은 착한 일을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행10:38). 성령은 능력과 지혜의 근원이요, 모든 사단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원천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로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1:18). 하나님은 예수님을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시고 (히10:7) 인류 구속 역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하늘 영광과 권세를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배척을 당하시고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마침내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신 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사 주의 주, 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다 동참하시는 사건으로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장엄한 메시야의 대관식이었습니다.
넷째, 시험 받으신 예수님 (12,13)
예수님께서 메시야의 임명장을 부여 받으신 것으로 복음역사의 준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키 위해 사단의 시험을 이겨야 하는 가장 힘든 관문을 통과하셔야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사단의 시험을 피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대적하여 싸우시도록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은 마태나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 받으신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건조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입니다. 또 귀신들과 불결한 짐승의 거처로서 침울한 공포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광야에서 외롭게 40일 동안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과 같은 부족함이 없는 축복된 환경 가운데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았으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광야와 같은 험한 환경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므로 사단의 시험에 패배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아담의 패배로 그 허리 안에 있던 모든 인류가 사단의 종이 되었지만, 예수님의 승리로 그 안에 있는 모든 자는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역사는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사단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사단은 유혹자입니다. 사단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여 우리의 힘과 지혜로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굳게 의지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14,15)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후 당장에 복음역사를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히 물러가셔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요한이 잡힌 것은 세례 요한의 시대가 거하고 예수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 줍니다. “요한이 잡힌 후” 이 말씀은 그 시대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는 헤롯이 강대국 로마를 등에 업고 유대 지방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우같이 간사하고 잔인하고 음란했습니다. 그는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여 음란의 누룩을 온 나라에 퍼뜨렸습니다. 이를 본 요한은 그의 비행을 사정없이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요한의 입을 틀어 막기 위해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헤로디아의 간계로 요한은 무참하게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6:17-29). 이 사건은 당시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당시 어두운 시대를 비추이는 등불로서 백성들의 정신적, 신앙적 지주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잡힘으로 의가 불의에 짓밟히고 희망의 등불이 꺼져 버렸습니다. 백성들은 절망과 분노로 치를 떨고 대학가는 데모가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분노하는 민중 세력을 규합하여 헤롯 정권을 타도할 계획을 꾸미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때 조용히 갈릴리로 물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전파하셨다는 것은 선포하셨다, 포고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지 아니하시고 영적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운 시대를 복음으로 도전하셨습니다. 이는 복음만이 인생들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시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봄학기에 캠퍼스가 시대 문제로 시끄러울 줄 압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힘든 이 시대를 복음으로 도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첫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5)” 때가 찼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준비하신 구속역사의 때가 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상 통치 즉 메시야의 통치가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사단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다스리는 세상은 온갖 불의와 부정부패가 난무합니다. 사단이 다스리는 곳은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지옥입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되 은혜와 진리,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우리 인생들을 겸손과 온유로 섬기시고 생명의 꼴을 먹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에는 생명과 평강이 넘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리실 때 모든 어두움과 슬픈 운명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개하면 도덕적인 회개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자세를 바로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마음이 늘 불안하고 상황에 따라 요동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자세를 바로해야 됩니다.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동시적인 것입니다 (행20:21). 사람들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세상 잔재미도 못 즐기고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세상 재미와는 비교가 안 되는 영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죄사함의 은혜가 임하고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생명력이 넘치는 힘찬 인생을 살 수 있고 세상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의 심령에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