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제 1 강
임마누엘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1:1-25
요절: 마태복음 1:23
Ⅰ. 예수님의 족보(1-17)
1.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입니까(1)?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약속 했습니까? (창22:17,18 삼하7:12,13 사11:1-10) 이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2. 아브라함부터 다윗 때까지의 족보 상에 있는 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2-6a)? 이를 볼 때 하나님. 은 어떤 사람들을 구속 역사에 쓰십니까?
3.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은 사건은 다윗과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6)? (삼하12:13,24)
4. 열왕들 중 ‘다윗의 등불’을 지킨 왕들은 누구입니까? (대하14:1-5,19:4-7,26:4,5,29:1-11,34:1-7) 영적으로 어려운 시대 가운데서 다윗의 등불을 지키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오.(왕상11:36)
5.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으로 이거하게 되었습니까? (왕하24:19,20)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 도까지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습니까(12-17)? (마4:15,16) 그들은 무엇을 기다렸습니까? (눅2:25)
Ⅱ. 예수님의 탄생(18-25)
1. 마리아가 언제, 어떻게 잉태하게 되었습니까(18)? 요셉은 왜 마리아를 끊고자 했습니까(19)? 또 왜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까?
2.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20a)? 주의 사자는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무엇 을 가르쳐 주었습니까(20b)?
3.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낳을 아들의 이름과 그 할 일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했습니까(21)? 사람에게 왜 구원자가 필요합니까? (롬3:10-18,7:14)
4. 이 모든 사실에는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까(22,23)? (사7:14)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 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 징조입니까?
5.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의 뜻이 무엇입니까(23)? 임마누엘 예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6. 요셉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24,25)? 요셉은 마리아가 낳은 아들을 어떤 분으로 영접했습니까?
마태복음 제 1 강
임마누엘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1:1-25
요절: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
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새 봄학기에 마태복음을 공부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태복음은 ‘왕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왕은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낮아져서 섬기고 희생하고 어머니와 같이 돌봐주는 목자와 같은 왕을 말합니다. 이 왕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셔서 우리 연약함을 담당해주는 사랑의 왕입니다. 저자 마태는 멸시받는 세리로서 뼈아픈 고통과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제자로 부르시고 3년 동안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긍휼과 자비가 풍성한 사랑의 왕으로 묘사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족보와 그의 탄생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여기에는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의 은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임마누엘의 은혜를 충만히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예수님의 족보(1-17)
저자 마태는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임을 입증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중시하는 족보를 배경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세계’(世系)란 족보(Genealogy)란 뜻입니다. 이는 족보의 대전제로서 예수님의 족보의 성격을 잘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때부터 인류 구속역사를 시작하시고 그의 씨에서 메시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2:17,18). 또한 다윗에게는 그의 씨를 통해 영원한 메시야 왕국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7:12,13, 눅1:32,33).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이 약속의 말씀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구속역사의 씨를 뿌리시고, 다윗을 통해 꽃을 피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매를 맺히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로서 이 분들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인류 구속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족보를 보면 누가 몇세에 아들을 낳고 몇세에 죽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에는 ‘죽고’가 없고 ‘낳고’만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족보는 생명의 역사임을 말해 줍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한 생명의 역사가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세상에 생명 구원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죄로 인해 파멸해 가는 인간들을 어찌하든지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할 메시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마침내는 그 약속대로 사랑하는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족보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첫째, 아브라함에서 다윗 왕까지(2-6a).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초로 인류 구원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이 약속은 은혜되게 하기 위해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롬4:13-16). 예수님의 족보는 전통, 인종, 신분, 도덕을 초월한 믿음의 족보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유다는 모두 허물과 실수가 많은 자들로서 행위로 하면 도저히 쓰임받을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진실되게 회개하고 믿음으로 살았을 때 인류 구속 역사의 주인공들로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족보는 장자 상속이라는 인간의 전통과 관습을 통해 이어내려 오지 않고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통해 이어내려 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대로 이루어짐을 말해 줍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왕까지 특기할만한 사실은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라나 리브가와 같은 여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가장 무시하고 경멸하는 이방 여인들이었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맏며느리였고 라합은 여리고의 기생으로서 창기였습니다. 또한 룻은 정절이 뛰어나고 광야에 피어난 향기 그윽한 한송이 백합화와 같이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방여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쓰임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혈통과 신분과 도덕성과 국적이 좋지 않습니다. 이들로 말미암아 신성해야 할 예수님의 족보는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있어도 삭제해야 하는데 마태는 심술로 일부러 집어넣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모든 의를 깨고 온전히 하나님의 의만 드러내고자 함이었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며, 또한 하나님은 율법의 하나님이 아니라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자 함이었습니다.
둘째, 다윗 왕부터 바벨론 이거 전까지(6b-11): 6-11절까지는 다윗 왕국이 계속됩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 막둥이로서 양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대개 막둥이는 의존심이 많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막둥이였지만 달랐습니다. 그는 책임감이 강했고 목자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그가 아비의 양을 돌볼 때 사자나 곰이 어린 양을 물어가면 어린 양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곰과 사자와 싸우는 선한 목자였습니다. 그는 또한 믿음으로 거대한 골리앗에 도전하여 무너뜨린 믿음의 용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만나 심히 기뻐하시고 그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사람이 축복을 받기 전에는 겸손하다가도 축복을 받은 후에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조금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행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공과 의를 행하며 사랑과 평화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국은 메시야 왕국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씨를 통해 영원한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12,13, 눅1:32,33). 이렇게 다윗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치명적인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6b) 이 말씀은 다윗의 죄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모든 신하들은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있는데 다윗 왕은 안일하게 저녁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정욕의 유혹을 받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충신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 보내어 죽게 했습니다. 그는 간음죄, 살인죄, 탐심죄, 거짓말죄를 범함으로 십계명 중에서 4계명을 범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치명적인 죄를 범하면 가차없이 잘라 버립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탄핵을 받아 대통령직에서 잘리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그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서 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진실되게 회개했을 때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신 축복과 약속을 하나도 뺏지 아니하시고 여전히 귀히 쓰셨습니다. 또한 밧세바가 낳은 솔로몬을 사랑하사 그를 통해 다윗 왕국이 계승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 왕국은 솔로몬 왕 때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이방여인을 취함으로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 나라는 남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역사는 음모와 배반, 암살과 쿠데타와 같은 정변으로 얼룩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다윗 한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아사와 여호사밧과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을 통해 다윗의 등불을 지키셨습니다(왕상11:36). 그러나 그들이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우상숭배의 죄와 도덕적인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때 무섭게 심판하시고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관영하였을 때 반드시 이를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셋째, 바벨론 이거 후부터 그리스도 탄생까지(12-16): 이 시기는 신구약 중간 시대로서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기간은 정치적으로나 영적으로 암흑기였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자 유다는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후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헬라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후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은 전쟁의 연속으로 이스라엘에는 잠시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권 잃은 백성으로 이민족의 통치를 받으며 착취당하고 짓밟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단9:16, 시137:1-3). 젊은 청년들은 노예가 되고 젊은 처녀들은 창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동안은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영적으로 피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절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되고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류 구속역사는 중단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때 시므온과 안나와 같은 기다리는 사람들을 통하여 메사야에 대한 희망은 더욱 불타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시기에도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구속역사를 줄기차게 이루어 오셨습니다. God never fails! 인간은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상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요, 용서의 하나님이시요,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때가 되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탄생하심으로 어둡고 긴 밤이 지나가고 희망찬 새아침이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Ⅱ. 예수님의 탄생(18-25)
18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유대 결혼은 정혼을 하게 되면 법적으로는 부부가 되지만 1년 동안은 순결을 지킨 후에 혼례식을 거행했습니다.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은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그에게는 마리아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마리아로 시작해서 마리아로 끝났습니다. 그가 목수일로 인해 피곤할 때도 아름답고 순결한 마리아만 생각하면 피곤이 일순간에 풀렸습니다. 그는 마리아와 하루 속히 소박한 신혼살림을 꾸릴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어느날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절망감과 배신감으로 인해 자신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감정적인 사람이었다면 장인집에 불을 지른다거나 고소해서 매장을 시킨다거나 인생의 소망을 잃고 갈릴리 바다에 투신자살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는 절망적인 인생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끊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 같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요셉은 이 일을 생각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이때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이 말씀은 요셉에게 임한 기쁜 성탄 메시지였습니다. 요셉이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탄생하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두가지로 말해 주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분이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 본체가 하나님이심을 말해 줍니다(빌2:6). 또한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육신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와 꼭 같이 인성을 지닌 인간이 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으로 나셨기 때문에 아담의 죄의 피를 이어받지 않아 아무 죄가 없으십니다(히4:15b).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완전한 인간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기에 합당하십니다.(딤전2:5)
둘째,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이는 예수라는 이름에서 잘 나타납니다. 예수란 구원자란 뜻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경제적인 구주가 절실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우리나라의 김영삼 대통령도 가장 중요한 정책이 경제 회복입니다. 또한 CIS나 중국에서는 비지니스 맨이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세상의 문제는 피상적으로 볼 때 경제 문제가 인간사의 근본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경제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인생 문제가 해결될 것 같고 행복이 굴러들어 올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입니다. 경제 문제가 해결된 나라나 개인일수록 죄를 더 많이 짓고 죄로 인해 고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정말 고통하는 것은 경제 문제보다도 죄 문제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5-7일에 있었던 모스크바 제자 수양회 때 이사야서 53장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1,2년 밖에 안된 어린 제자들이 어려운 이사야서 53장 말씀을 잘 이해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말씀 가운데 나타난 사죄의 복음을 듣고 자신들의 숨은 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기쁨이 충만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구주가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자임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는 문둥병과 같아서 인간을 추하고 더럽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쓸모없게 만듭니다. 죄는 피흘림을 요구합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피를 흘리며 비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파멸로 이끄는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그몸으로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해 주셨습니다(벧전2:24). 그리고 누구든지 죄를 진실되게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참 자유와 기쁨과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라는 이름은 죄인들에게 소망과 기쁨을 주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이름입니다. 세상에 이 이름 외에는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행4:12)
셋째, 임마누엘 예수님입니다. 저자 마태는 이 사건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일찍이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놀라운 사건임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하나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과 권세와 특권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비우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도 인간들의 고뇌에 동참하시기 위해 장막 생활을 하셨습니다. 장막 생활은 사생활이 없고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 동안 장막 생활을 하시며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셨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문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심으로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욕으로 병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고, 고독한 니고데모와 대화하시고, 세리 마태와 대화하셨습니다. 조금이라도 장벽이 있으면 진실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대화를 하려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겸손하게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없이 낮아지셔서 어떤 종류의 사람도 품고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대화하셨습니다. 그 대화의 주제는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대화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심으셨고 영생을 선물로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양들과 함께 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은 진실된 대화가 메마른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진실된 대화를 원합니다. 1대1은 진리의 말씀으로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번 봄학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1대1로 대화함으로 양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고질병을 담당하심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사람이 반발심이 강하고 이기적이 되고 중풍병자와 같이 무기력하게 누워 지내는 것은 그 내면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내면이 병든 증상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근거없이 교만한 것으로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의존심으로 나타납니다. 남을 의존하는 마음 때문에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 지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욕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음란한 생각 때문에 공부도 잘 못하여 낙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내면이 병든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병들어 쓸모없게 된 사람은 잘라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들의 모든 연약함과 고질병을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8:17절은 말합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또한 마태복음12:20절은 말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슬픔과 운명과 죄짐과 마음의 상처를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나음을 얻고 밝고 힘찬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랑만이 사람을 살립니다. 모스크바에 빠벨 목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공화국에서 1등을 한 수재입니다. 그리고 얼굴도 잘 생기고 영어도 매우 잘 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 부모들이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인해 객사를 하고 어머니는 독일 남자와 재혼을 하여 독일로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아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무기력하게 누워서 지내다가 모스크바 대학에서 재적을 당했습니다. 송 어거스틴 선교사님과 모니카 선교사님은 아무 쓸모없게 된 그를 지난 2년 동안 함께 데리고 살면서 친 자식보다 더한 사랑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조금씩 믿음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자 공동팀에서 장막생활을 하며 매주 주일 예배 사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믿음으로 새롭고 모스크바 대학에 들어가고자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크라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가 12살 때 그의 부모가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인해 자녀들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기 위해 시베리아로 도망가 살다가 36살의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늘 그를 욕하고 때렸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반항적이 되고 삐뚤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장하여서는 여자들과 동거생활을 하며 죄악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부를 무척 잘하여 전 소련 물리 경연 대회에서 우등을 하였고 현재는 유명한 모스크바 물리 단과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에스토니아로 가신 윤사무엘 선교사님에게 피싱되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윤사무엘 선교사님이 에스토니아 개척을 나간 후, 한아브라함 선교사님 집에 살면서 사라 선교사님과 말씀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선교사님의 아파트는 방이 두 개가 있는데 한방을 마크 형제에게 내어주고 한방에서 아이들 셋과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생활하며 아들과 같이 전폭적으로 돌봐주자 병든 내면이 조금씩 치료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스크바에 있는 우리 선교사님들은 대부분이 양들을 데리고 살면서 함께 함으로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함께 하는 사랑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랑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병든 내면을 함께 하심으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슬픔을 이길 수 있고 고독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운명을 이길 수 있고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험한 세상에서도 위대한 사명인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요셉은 잠이 깨자 곧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했습니다(24,25). 요셉은 자기의 꿈이 깨지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임마누엘의 은혜가 한 분 한 분의 심령에 충만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