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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by Mark Yang   04/23/2022  

Question


사도행전 제 1 강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 : 사도행전 1:1-26

요절 : 사도행전 1:8

I. 성령 세례를 받으리라 (1-5)

1. 누가 누구에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까(1a)? 저자가 먼저 쓴 글에는 어떤 내용을 기록했습니까(1b,2)? (눅 1:1-4)

2. ‘해 받으신 후’란 어떤 사건을 말합니까?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왜 이 기간 동안에 부활 신앙을 심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을까요?

3.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무슨 분부를 하셨습니까(4)? 예루살렘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눅 24:46,47)

4. 제자들은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5)? 왜 그들이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II. 내 증인이 되리라 (6-11)

1. 사도들은 이 때 예수님이 무엇을 하실 것으로 기대했습니까(6)? 이들은 왜 이 때 이런 기대를 갖게 되었을까요? 때와 기한에 대해서 제자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7)?

2. 성령이 임하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됩니까(8a)?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하게 됩니까(8b)? 그들은 어디에까지 이르러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까?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크신 뜻을 생각해 보시오.

3.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9)? 이때 제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무슨 약속을 했습니까(10,11)? 이 약속이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III.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12-26)

1.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했습니까(12,13a)? 그곳에 누가 모였으며 그 수는 얼마였습니까(13-15)? 그들이 모여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14)? 그들은 왜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을까요?

2. 베드로는 기도하는 중에 어떤 문제를 거론했습니까(16)? 베드로는 유다 문제를 어떻게 보았으며 또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16-20)? 이런 그를 통해 배울 점이 무엇입니까?

3. 사도가 될 사람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며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21-25)? 그들은 어떻게 맛디아를 뽑게 되었습니까(26)? 유다 대신 맛디아를 뽑아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시킨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Message


사도행전 제 1 강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 사도행전 1:1-26

요절/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1990년대를 사도행전 말씀으로 출발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도행전 말씀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원대한 소원을 영접하고 성령의 역사 하심을 배워서 세계 선교 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은 누가 선생이 누가복음의 후편으로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수신자는 데오빌로로서 이는 어떤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말합니다. 저자 누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 역사가 그의 택하신 사도들을 통해 어떻게 계승되고 확장되어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제 1 강에서는 (i)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세계 선교 명령과 (ii) 선교 명령을 받은 사도들은 어떻게 성령의 그릇을 이루었는가를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 (1-5)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행하시며 가르치신 아름다운 생애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또 제자를 택하시고 훈련하셔서 그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택하신 사도들에게 구속 역사의 바톤을 넘겨주는데서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주역이 되어 역사를 이루어 나갑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사 승천하시기 전까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해 받으신 후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해 받으신 후’ 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못박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후 사흘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영광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성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박혀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처절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만 해도 무력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들 앞에 서 있다니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혹 유령이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자신이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확실히 증거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강을 주시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혹 유령이 아닌가 생각하는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을 잡수시므로 의심을 불식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부활을 확신시켜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증명할 도리가 없게 됩니다. 또 인생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죽음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생애는 패배한 생애로서 슬프고 원통하고 억울한 비극적인 스토리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성경대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듯이,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복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부활 신앙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확실한 많은 증거로 그들에게 부활 신앙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사역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역사를 시작하실 때 첫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습니다.(막1:15) 또한 가르치는 말씀 내용도 그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심문 받으실 때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18:36) 이를 볼 때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 역사의 목적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시고, 십자가와 부활로써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한마디로 통치를 의미합니다. 에덴은 단지 환경이 좋기 때문에 낙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곳이기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함으로써 낙원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 대신에 사단의 통치를 받게 됨으로써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환경 가운데서 부족함이 없이 산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행복이 없는 것은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 낙원이라고 일컫는 스위스에 알코올 중독자와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사단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은 감사하기 보다 늘 불평합니다. 이해하고 사랑하기보다 미워하고 시기합니다. 마음에 진실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이고 거짓된 인생을 살아갑니다. 또한 그 마음은 늘 두려움과 불안으로 시달리기 때문에 평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단에게 빼앗긴 통치권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심고,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도록 함으로써 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거룩한 역사를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고 연단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모여 식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4,5) 이를 볼 때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시골 출신으로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체질상 맞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도 그들에게는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기 때문에 지우기 힘든 실패와 좌절과 두려움의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하루속히 예루살렘을 떠나 마음의 고향 갈릴리로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이기에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까?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입니다. 또 이곳은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곳으로써 복음이 완성된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4:47절에서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2:3) 예루살렘은 복음 역사의 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원수들이 많고 복음 역사를 이루기가 힘든 곳이라 할지라도 이곳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바로 이곳에서 믿음으로 딛고 일어서서 복음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때 그들은 살아 있는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원수들과 싸우며 도전적으로 복음 역사를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Ⅱ. 세계 선교 명령을 주신 예수님 (6-11)

6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시 모였을 때였습니다. 이때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것은 제자들의 마음에 한 맺힌 질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때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모두 이스라엘 나라 회복과 연관시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온통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뿐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나라 회복은 그들에게 절실하고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열망은 민족 해방의 차원보다도 더 깊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보통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이방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는 선민으로서 가장 참기 어려운 수치요 굴욕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메시야 왕국이 건설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권능의 역사를 보고 이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회복할 자라고 기대하게 되었습니다.(눅24:20,21)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들은 실의와 좌절 가운데서 생의 방향을 잃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죽음까지도 정복하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틀림없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곧 거사 계획을 발표하실 것을 학수고대 하다가 참다못해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7)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 회복이 하나님 나라 건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므로 관심을 갖지 말고 잊어버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이스라엘 나라가 언제 회복될 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수없이 많은 나라가 일어났다가 망하고 또 새로운 나라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에 의해 좌우되거나 또한 몇몇 정치 지도자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그들은 도구에 불과하고 실상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소련과 동구권 사회가 개방되는 것은 몇 년전 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때 세계 역사는 순식간에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래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로마에 붙이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 나라도 남북이 갈라진 것은 미국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이 시대의 제사장 나라로 귀히 쓰시기 위해 연단 하시고자 갈라놓으신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민족을 통일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사도들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다같이 8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첫째로,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유언적으로 주신 지상 명령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 내 증인이 되리라” 여기에는 너희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또 그렇게 되고 말리라는 주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제자들을 택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전권을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위임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명은 유언적으로 주신 지상 명령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절대적으로 감당해야 할 필연적인 것입니다.

이 사명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복음을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 가운데서 멸망하게 됩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사죄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증거 함으로써 죄사함의 은혜를 덧입고 사망 권세로부터 벗어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처럼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때까지 감당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구속 사업을 계승하는 것으로서 인류 구속 역사를 감당하는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 사명은 사도와 같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대 특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께서 이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사도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크고 엄청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현재 자신 하나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들은 속두려움이 많습니다. 또 갈릴리 혼 사람들로서 무식합니다. 그들은 세계 선교하는데는 필수적인 외국어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을 떠나 외국에 나가 본 적이라고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들이 세계 선교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어느 모로 보나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 선교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령께서 주체가 되어 친히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들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은 성령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됩니다. 자의식이 사라지고 담대하게 됩니다. 어떤 원수의 세력과도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덧입게 됩니다. 또한 성령이 임할 때 지혜롭게 됩니다. 외국어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을 수 있게 됩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은 권능을 받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계 선교를 하고자 할 때 능력이 있어야 되지 않는가? 무엇보다 어학을 잘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국어를 능통하게 해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는 결국에는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 어학의 장벽도 뛰어 넘고 능력 있게 역사를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태리에 선교사로 가 있는 Paulus Chung선교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 공부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청주대 지리 교육학과를 다니며 지리 공부한다고 산으로 들로 놀러만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계 선교 사명을 심령깊이 영접했을 때 이태리어 유학시험에 합격케 하시고 지금은 선교사로 가서 능력있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Madison의 Mark Hong 선교사님은 영어는 물론 우리말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 번은 머리가 아파서 전화로 동역자에게 약을 좀 가져오라는 말을 I am headache, you bring me a phaemacy."(나는 골치다. 약국을 가져 오시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엉터리였지만 그에게는 투철한 믿음과 상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어학의 산을 넘어 능력있게 복음 역사를 섬시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능력과 재능이 많다고 세계 선교를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성령의 권능을 덧입지 못하게 하는 장애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성령의 권능을 덧입을 때만이 모든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능력있게 세계 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선교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준비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들이 감당해야 할 범위는 땅끝까지 입니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민족과 이념을 초월한 범세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유다이즘을 극복하고 사마리아에 대한 민족감정과 로마에 대한 미움의 감정도 극복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중심적이고 좁은 마음을 버리고 세계 어떤 종족도 다 품고 섬길 수 있도록 마음을 넓혀야 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좁은 마음으로는 세계선교역사를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큰 뜻을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에게 큰 뜻을 두시고 우리를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십니다. 18세기는 독일의 경건 주의 운동과 함께 모라비안 선교회를 통해 세계 선교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9C는 영국의 웨슬레 운동이 선교 역상의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서 유명한 Huduson Taylor와 캠브리지 seven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다가 20C초에는 선교 운동이 미국으로 건너와서 SVM(Student Volunteer Movement)운동이 일어나서 세계 각국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 선교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과 서구의 기독교는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되었습니다. 교회는 텅텅비고 관광객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노인들만 천국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모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대 배경하에서 하나님께서 100년 전에 한국에 복음을 허락하시고 선교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30년 전부터 젊은 지성계에 UBF운동을 일으키사 오늘날 세계 선교 사명을 감당하는 주역이 되게 하셨습니다. 역사가들은 20세기말과 21세기는 선교역사상 분명 The age of Korea, 한국의 시대로 기록할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저희 보는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믿음이 좋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만 참으로 믿음이 좋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만 의지하고 있다가 멍하게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때 천사들이 나타나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이 갈릴리 촌놈들아 어찌하여 서서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Ⅲ. 성령의 그릇을 만든 제자들 (12-26)

본문은 사도들이 성령의 권능을 덧입기 위해 어떻게 성령의 그릇을 만들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전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사도들은 천사의 책망을 듣자 정신이 났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 정도의 무리가 모였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세계 지도를펴놓고 선교 전략을 짰습니까? 아니면 인간적으로 서로 하나되기 힘든 사람들이 모였으므로 앞으로 서로 잘해보자고 단합대회를 했습니까? 이닙니다. 14절을 보십시요.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선교사명을 중심으로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합심기도는 시간 낭비같이 보이지만 성령의 권능을 덧입을 수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도 모여서 잡담하기보다는 합심기도를 해야겠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인본주의의 누룩을 제거했습니다. 그들의 합심기도는 여러날 계속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던 중에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의 문제가 걸림이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은 그들 모두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나도 유다와 같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예수님이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그들 마음 한구석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배반으로 인해 12사도의 그릇이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일어나 말씀을 기초로 유다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느 먼저 유다가 배반한 것은 성경에 응한 것이며 또 배반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말씀대로 유다를 대신하여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감당할 자를 뽑았습니다.이로써 그들은 성령의 그릇을 든든히 이루었습니다. 유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그들 마음에 남아있는 인본주의 누룩을 깨끗이 제거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인본주의 누룩이 있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 1:8절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절대적으로 감당해야 할 지상 명령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요 목적이요 방향입니다. 이 사명을 영접하고 이 사명을 기초로 해서 살 때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돼. 나는 어학에 솔질이 없단 말이야. 나는 국문과야. 또 나는 장남이야. 또 나는 장손이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안돼.” 이런 분들은 세계 선교 말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잃으키며 반발합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계 선교 일선에 나가는 goung group 이 될 수도 있고, 또 선교사를 보내고 이들을 기도와 편지와 물질로 지원하는 sending group 이 될 수도있습니다. 또 sending group 으로 있다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going group 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할 수 없다고 해서 세계 선교 사명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속하든 행 1:8 절 말씀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안주하지 않고 위대한 사명인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또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을 덧입혀 주셔서 능히 사명인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1:8절 말씀에 기초하여 인생을 설계하고 스케일이 큰 웅장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