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제 9 강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다니엘
말씀: 다니엘서 9:1-27
요절: 다니엘서 9:18b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우리는 6장에서 다니엘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의 단을 쌓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니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은총의 때나 역경의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그가 힘든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의 원천이었고, 모든 역경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영적 무기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랑과 충성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니엘의 성경 공부와 기도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성경 공부를 통하여 동족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이 70년 만에 끝나고 해방의 날이 임박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다니엘은 무엇을 했습니까? 동족들과 영광스러운 해방의 날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를 열었습니까? 아니면 새 정부 수립을 위해 부지런히 좇아 다녔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도 자기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자복하는 기도였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심히 기뻐하시고 그가 기도한 즉시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미래에 전개될 놀라운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Ⅰ. 다니엘의 성경 공부(1,2)
1절을 보십시오. 때는 메대 족속 다리오 왕이 다스리던 통치 원년으로서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메대와 바사가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역사적 전환기였습니다. 역사적 전환기에는 안정이 되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불안하여 술을 마시거나 향락에 빠지거나 현실을 비판하며 불평합니다. 아니면 현정권에 반기를 들고 반역을 모의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런 혼란한 시기에 무엇을 하였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혼란의 시기에 조용히 앉아서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제국의 국무총리로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많아 몹시 바빴을 것입니다. 이런 중에 책상에 조용히 앉아 성경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다니엘은 위대한 선지자요, 꿈으로 환상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성경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조용히 앉아서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성경 공부는 신앙의 연륜이나 환상에 관계없이 언제나 필요한 것입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 시간과 성경 공부하는 시간을 가장 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성경 공부를 하되 의무적으로 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가 임할 때까지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습니다. 이 때 그의 심령에 드리워져 있던 세상 근심과 염려, 두려움과 슬픔 등 모든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늘 나라의 영광의 빛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성경을 공부하였을 때 그의 삶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늘 생명력으로 차고 넘쳤으며, 때를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왜 성경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본을 보여 주시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단의 시험은 아주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이 40일 동안 굶주려서 돌들이 떡으로 보일 때 속삭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배고픈 사람에게 있어서 이러한 유혹처럼 이기기 힘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 말씀으로 사단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할 이유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과 육의 존재입니다. 인간에게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육의 양식이 필요하듯이, 영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육의 양식만을 위해 살 때 짐승과 다를 바가 없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영혼의 참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성경 말씀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서 말씀을 공부하던 중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칠십 년 동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다가 칠십 년이 마치면 해방된다는 것이었습니다(렘25:11,12). 이는 실로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발견은 위대한 기도를 낳았고, 위대한 기도는 위대한 계시를 낳았습니다. 이를 볼 때 성경 공부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성경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Ⅱ. 다니엘의 기도(3-19)
다니엘은 예레미야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70년 만에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볼 때 자기 백성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은 이미 작정되어 있으므로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자 결심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9:10-13절에는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이렇게 해방의 때가 문턱에 이르렀으나 새로운 제국은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것 같지 않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증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실망치 않고 자기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첫째, 그의 기도의 자세는 겸비했습니다(3).
3절을 보십시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였고” 그가 금식했다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절제한 것을 의미합니다. 또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썼다는 것은 죄인으로서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백성들의 죄에 대한 슬픔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했습니다. 기도의 자세는 겸비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와 자기 백성의 죄를 고백했습니다(4-8).
그는 먼저 하나님을 크시고 두려워할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재시요 역사의 주관자시요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크시고 두려워할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인자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 후 다니엘은 자기와 자기 백성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한점 부끄러움이 없이 산 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의 패역한 죄를 위해서만 기도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회개하는데 자기를 제외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a).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회개할 필요가 없고 상대방은 회개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이 회개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 동일한 죄인으로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가 고백한 죄가 무엇입니까? 5b,6절을 보십시오.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이요, 둘째는 주의 종들이 말씀을 전할 때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멀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은 불행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우리는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얽어매는 것같이 생각되어 말씀을 떠나게 되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오히려 허망한 것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또한 육신과 감정과 욕심을 좇아 살게 됨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말씀 공부를 멀리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목자를 멀리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 같지만 실상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죽으나 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자는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오고” 이 말씀은 NIV 영어 성경에 보면 “Lord, you are righteous 즉 하나님은 옳으시다. 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우리가 범죄 했다고 해서 70년 동안이나 수욕을 당케 하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옳지 않음이 없고 그의 심판은 공의로우심을 고백했습니다. 그에게는 조금도 자기 의가 없었습니다. 그는 100% 하나님의 옳음을 시인하고, 100%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긍휼만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시험에 떨어진다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기 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나를 곤란하게 만드십니까? 하나님께서 뭔가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자기 의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십니다.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자기 의가 있을 때 그 자기 의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되려면 100% 하나님의 옳음을 시인하고 100% 자신의 잘못을 시인해야 합니다.
셋째, 주님의 긍휼과 용서하심을 구했습니다(9-14).
10-14절은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범했을 때 기록된 말씀대로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축복과 저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여 들어와도 복, 나가도 복을 받고 심지어는 떡반죽 그릇도 복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매사에 승리의 인생을 살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신28:1-14).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행자지 하면 모든 축복이 저주로 변하여 들어와도 저주, 나가도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재앙이 끊임없이 좇아 다니고 그들은 패배의 인생을 살게 되며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여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신28:15-68). 그들이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이렇게 기록된 말씀대로 그들에게 저주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사실을 통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반드시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께서 자신만은 특별히 봐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범죄 했을 때도 봐 주시지 않고 심판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는 예외가 없이 누구든지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하시지만 누구든지 불순종하면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품이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긍휼과 자비하심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 했을 때는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그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끝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흉악한 강도가 그 죄를 진실되게 회개했을 때 그를 하늘나라의 황태자로 받아 주시고 낙원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공의가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긍휼과 용서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하나님의 성품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기와 자기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고 다만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했습니다.
넷째,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했습니다(15-19).
15절을 보십시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다니엘이 출애굽의 역사를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서 그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과 같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구원하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간구의 내용은 첫째로, 주의 분노를 예루살렘 성에서 떠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16). 이것은 그들이 죄 때문에 주께서 진노하여 예루살렘 성이 황폐케 되었으므로 근본적으로 주의 분노를 거두어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는 것입니다(17). 이것은 주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19). 그런데 다니엘은 이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도 ‘주 자신을 위하여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그의 기도는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움직이시도록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움직이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는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패역하지만 주의 백성임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주의 백성을 구원해 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17:1). 그리고 우리에게 주기도문에서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6:9)
18b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그가 기도하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선함이나 업적이 있기 때문에 아니었습니다. 그의 의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거나 또한 채권자와 같이 하나님께 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했기 때문에 사랑 받을 만하고 하나님께 당연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이사야 64:6절은 말합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다니엘은 인간의 의를 의지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크신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일체의 자존심을 버리고 내가 지은 죄로 인해 애통하게 여기고 죄인의 모습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 해주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 들으소서, 용서하소서,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그의 기도는 간절하였고 자기 백성을 향한 목자의 심정으로 충만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기도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Ⅲ. 칠십 이레(20-27)
다니엘이 자기와 그 백성의 죄를 자복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간구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와서 저녁 제사 지낼 즈음에 그에게로 왔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온 것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다니엘에게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회복될 인류 구속 역사였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에는 70이레의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실 은혜의 역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허물이 마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에 대한 속죄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성취 되었습니다.
둘째로, 영원한 의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가 사해졌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3:25,26절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믿을 때만이 하나님의 의를 덧입을 수 있습니다.
세째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모든 예언의 말씀이 성취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어느 정도 성취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는 모든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네째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시고, 종국에 가서는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칠십 이레는 문자적으로는 490일이지만 비유적으로는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90년이 됩니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는 시기부터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더 나아가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전기간을 예언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적인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크게 일곱 이레, 육십이 이레, 중간 공백기, 한 이레 4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일곱 이레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는 B.C 538년 고레스 원년에서 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제 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 때 (B.C 445년)까지를 가리킵니다. 육십이 이레는 예루살렘 성전이 수축된 때부터(B.C 445)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기 전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 역사상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기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중간 공백기는 그리스도 성육신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직전까지를 말합니다. 26절에서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진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사53:8). 그의 끊어짐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 이레는 세계 역사의 종말의 시기로서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있게 될 7년 대환란 시대를 가리킵니다. 이 때는 적그리스도의 활동기로서 3년 반 동안은 성도와 굳은 언약을 정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나면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언약을 파기하고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예배하게 하고 666의 숫자가 있는 짐승의 표를 받게 하며 이를 거절한 자들을 죽일 것입니다(계13:15-18). 그러나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활동도 잠시 뿐 결국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심으로 영원한 유황불 못에 던져져 멸망하게 됩니다(27).(계19:20, 20:10)
결론적으로 본문 말씀을 통해 이 괴로운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그것은 샛별이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이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 나라를 제사장 나라로 쓰셔서 세계 만민을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니엘과 같이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종으로 빚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