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제 11 강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
말씀: 다니엘서 11:1-12:13
요절: 다니엘서 12:3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서에는 세상 왕들과 세상 나라들의 운명과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가 점진적으로 나옵니다. 그 계시는 2장과 7,8장, 11,12장에 나오는데 계시가 점점 확대, 부연,발전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장에 나오는 예언들은 다니엘이 살고 있는 시대부터 약 200년~370년후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예언은 마치 실제 일어난 과거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것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다니엘의 예언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성을 보게 됩니다.
11장은 타락한 인간들이 얼마나 간교하고 잔인한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 왕들은 인간적인 야망과 복수심으로 인해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또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마구 죽이고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의 통치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지만 때가 되면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세상 역사는 마지막 때까지 계속 되다가 종국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함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지상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 나라는 점점 발전․확장되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게 됩니다. 이것이 다니엘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Ⅰ. 왕들의 권력 투쟁 (1-27)
첫째,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1-4)
1절은 10:21절에서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사 제국이 패권을 잡았을 당시 하늘의 투쟁에서 미가엘을 강건케 한 자는 주님 자신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미가엘을 도와 주셔서 바벨론으로 패망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에 의해 멸망된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멸망된 것입니다. 세상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2a절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참된 것(the truth)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은 미래의 진정한 역사를 보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10:21절의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서 장래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서입니다. 이는 장차 성경에 기록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로서 참된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으로 참된 것입니다(벧후1:21). 성경은 진리를 포함하는 책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그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11장을 공부해 볼 때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더욱 확신할 수 있습니다. 프톨레미 왕조와 셀류시드 왕조의 통치자들은 주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그대로 행동하다가 사라졌습니다. 이를 볼 때 만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를 통제하시고 그 목적대로 이끌어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예언된 말씀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성취된 것같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마지막 때의 일도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2b-4절까지는 바사의 크세르크세스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는 5절부터 나오는 남방 왕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바사에서 일어날 세 왕은 고레스(539-530 B.C)와 캄비세스(530-522 B.C), 다리오 히스타스페스(522-486 B.C)를 가리킵니다. 넷째 왕은 크세르크세스(486-465 B.C)인데 그는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그는 나라를 심히 부요케 하여 경제 대국으로 만든 후 이를 기초로 군사 강대국이 되게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수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헬라를 쳐서 살라미스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전제국을 격동시키고 또 국고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국력이 쇠퇴하여 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후 헬라에서 능력있는 왕인 알렉산더가 나타나 바사 제국을 위시하여 세계를 정복하고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33세의 나이에 죽고 헬라 제국은 네 장군들에 의해 네 부분으로 분할되었습니다.
둘째, 남방 나라(애굽)와 북방 나라(시리아)간의 전쟁 (5-27)
5절을 보십시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여기서 남방 나라는 알렉산더 사후에 네 부분으로 분할된 나라 중 하나인 애굽을 가리킵니다. 남방 왕은 프톨레미 1세 소터를 가리키는데 그는 알렉산더 부하 장성 중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서 알렉산더 사후 애굽을 차지하여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군들 중 하나는 셀류커스 니카토르를 가리키는데 그는 프톨레미 소터의 오랜 친구로서 동방 전투에도 함께 참가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도백으로 임명되었으나 안티고누스의 공격을 받고 애굽으로 피신했습니다. 프톨레미는 그를 환영하여 그에게 애굽의 군대 지휘권을 주었고 그를 도와 그가 빼앗긴 도를 탈환하도록 했습니다. 셀류커스는 이렇게 해서 북방 나라 시리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 세력을 확장하여 애굽보다 더 큰 영토를 갖게 되었습니다. 프톨레미 1세와 셀류커스 1세 때는 두 나라 간에 서로 연합하여 사이가 좋았습니다.
얼마 못 가 프톨레미 Ⅰ세는 사라지고, 셀류커스 Ⅰ세도 사라졌습니다. 몇 년 후에 남방에 프톨레미 Ⅱ세가 새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안티오커스 Ⅱ세가 다스리는 북방 나라가 남방 나라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갑자기 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리아 왕위에 자신의 혈통에서 난 자를 앉혀서 그 나라를 조종해 보고자 하는 속셈으로 자기 딸인 베르니스를 많은 지참금과 함께 안티오커스 Ⅱ세 테오스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법적 아내인 라오디스와 이혼을 하여 그녀를 폐위시키고 자기 딸인 베르니스를 법적인 왕후로 삼도록 요구했습니다. 북방 왕인 안티오커스 Ⅱ세는 그의 로맨틱한 감정을 억누르고 그렇게 했습니다. 베르니스 공주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와 악인들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방과 북방 간에 더 나은 연합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아버지인 프톨레미 Ⅱ세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안티오커스 Ⅱ세는 베르니스의 지위를 후궁으로 낮추고 그 동안 너무 사랑하여서 밤낮으로 보고 싶었던 라오디스를 법적인 황후로 복귀시켰습니다. 그런데 라오디스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이 마음에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라오디스는 먼저 베르니스를 죽이고 그 후 자기를 폐위시킨 것에 앙심을 품고 남편인 안티오커스 Ⅱ세를 독살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베르니스에서 난 아들들과 그녀를 도와주던 모든 자들을 다 죽여 버리고 자기 아들을 왕위에 앉혔습니다. 그가 셀류커스 Ⅱ세입니다.
프톨레미 Ⅱ세는 가고 베르니스의 오빠인 프톨레미 Ⅲ세 유게테스(246-221 B.C)가 남방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여동생 베르니스가 살해당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 북방 나라 시리아를 공격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대승하여 시리아의 신전들을 불태우고 시리아에 있던 자기 나라의 신들과 시리아의 우상들과 금, 은으로 만든 수많은 아름다운 기구들을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갔습니다. 이 전쟁의 원인은 복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수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복수가 복수를 낳아 계속해서 두 나라 간에는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몇 년 후에 북방 왕인 셀류커스Ⅱ세는 원수를 갚기 위해 애굽 원정을 시도했으나 참패를 당하고 퇴각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이로 인해 홧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그후 셀류커스 Ⅲ세(226-223 B.C)가 시리아를 다스렸는데 그는 소아시아 전쟁에서 살해를 당하고 그의 동생 안티오커스 Ⅲ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대왕이라 불렀습니다. 안티오커스 Ⅲ세는 애굽 왕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여 애굽의 지배 아래 있던 팔레스틴을 공격하여 애굽 군대를 무찌르고 상당한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B.C 217년 라피아 전투에서 프톨레미 Ⅳ세의 군대에게 대패함으로써 대세는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프톨레미 Ⅳ세 필로파터는 전쟁에서 이기자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포로 수만 명을 사형에 처했습니다(12). 이 대학살의 동기는 교만이었습니다. 교만으로 인해 그의 세력은 더하지 못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안티오커스 Ⅲ세는 바사와 아시아 지방에 원정을 하여 성공함으로써 명성을 회복하여 전보다 더 많은 군대를 준비했습니다. 마침 그때 애굽 왕 프톨레미 Ⅳ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 프톨레미 Ⅴ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애굽에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안티오커스 Ⅲ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마게도냐의 필립과 동맹을 맺어 애굽을 쳤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애굽으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안티오커스 Ⅲ세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안티오커스 Ⅲ세는 애굽을 격파하고 난 후 팔레스틴을 그의 수중에 넣으므로 유대는 해방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애굽의 지배 아래 있다가 이제는 시리아의 지배 아래 들어가 그들의 노예가 되었습니다(14-16). 이스라엘은 남방 나라와 북방 나라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끊임없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이스라엘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안티오커스 Ⅲ세는 팔레스틴을 정복한 후 애굽을 치고자 했습니다. 이때 애굽이 당시 신흥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던 로마와 상호 공수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계획을 바꾸어 애굽과 평화 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는 머리를 써서 그의 딸인 클레오파트라를 애굽의 프톨레미 Ⅴ세 에피파네스에게 주어 어린 딸을 이용하여 애굽을 손에 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그 딸이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결혼 후에 아버지 편에 서지 않고 자기 남편 편에 섰습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을 부추겨서 로마와 동맹을 맺고 로마로 하여금 시리아를 공격하도록 함으로써 아버지 안티오커스의 계획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딸은 시집을 가면 아버지 편이 아니라 자기 남편 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배웁니다. 안티오커스 Ⅳ세가 실패한 것은 이 평범한 진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어린 딸을 이용하여 자기 야심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대로 자녀를 양육해야 됩니다.
안티오커스 Ⅳ세는 자기 딸을 통해 이루고자 한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자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중요 도시들을 점령하고(197 B.C) 헬라를 침략했습니다(192 B.C). 그러나 그는 B.C 190년 마그네시아에서 로마 대장 코넬리우스 스키피오에게 패하여 굴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정복한 땅을 로마에게 이양할 뿐만 아니라, 12년 동안 해마다 2330달란트나 되는 막대한 양을 배상금으로 지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패전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자기 땅에 돌아와 신전들을 약탈하다가 살해당했습니다.
20절 말씀은 안티오커스 Ⅲ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셀류커스 필로파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그의 재위 기간은 선왕이 남겨 준 무거운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는데 다 보내었습니다. 그는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는 마지막 12년 되던 해에 이를 지불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금, 은 기물을 약탈하도록 명령한 후 얼마 안 있어 재무관 헬리오도루스에게 독살당했습니다. 이는 헬리오도루스가 섭정왕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21-45절까지는 안티오커스 Ⅳ세 에피파네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1절은 그가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는 비천한 사람으로서 왕이 될만한 내면성이 전혀 없는 비열하고 야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외경 마카비서에서는 그를 가리켜 "죄가 가득한 싹"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안티오커스 Ⅲ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버지가 로마에게 패배 당했을 때 인질로 로마에 끌려가 14년 동안이나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권력욕을 배우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형의 살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헬리오도루스를 물리치고 궤휼로 조카 대신에 왕이 되었습니다. 22절은 그가 헬리오도루스를 따르는 군대와 그와 동맹한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를 물리친 것을 가리킵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궤휼에 능하여 겉으로는 평화 정책을 표방해 놓고 사람들이 안심할 때에 뒤에 가서 이를 어기고 치는 자였습니다. 그는 애굽과도 평화조약을 체결한 후 갑자기 애굽의 기름진 곳에 들이닥쳐 많은 재물을 탈취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 노략물을 가까운 친구들과 군 장교들에게 나눠주어 자기 세력을 견고히 했습니다(24). 그는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손에는 비수로 뒤를 찌르는 자와 같았습니다.
25,26절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군대를 이끌고 애굽을 침공하여 프톨레미 Ⅵ세인 필로메터를 사로잡은 것을 가리킵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프톨레미 Ⅵ세의 측근을 매수하여 모략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두 왕 곧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와 프톨레미 Ⅵ세는 서로 한 밥상에 앉아 평화 조약을 맺었으나 속으로는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조약은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27b절에서 "작정된 기한에 미쳐서 그 일이 끝날 것임이니라"는 말씀은 안티오커스가 아무리 거대한 계획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의 종말이 올 것이므로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속으로 계획할지라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남방 나라인 애굽과 북방 나라인 시리아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난 전쟁은 복수심과 영토를 확장하여 세계를 지배해 보고자 하는 권력욕에 기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왕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도록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위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권세를 남용해서는 안되고 왕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들은 다윗과 같이 목자로서 백성들을 돌보고 보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백성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서 백성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좋은 예를 남겨야 합니다. 그러나 왕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싸우는 잔인한 기계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음란하고 부패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마술사들이 전문적인 거짓말쟁이 인줄 알지만 그들을 의지했습니다. 이런 왕들의 속성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꼭 마찬가지입니다.
Ⅱ. 적그리스도의 형상 (28-45)
28-39절까지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과 관련해서 행한 모든 악한 행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애굽을 정복하고 많은 재물을 노략질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4만명의 유대인을 살해하고 성전 보물을 약탈해 갔습니다(28). 그리고 2년 후에 또 다시 애굽 원정을 하여 알렉산드리아까지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과 달리 애굽과 동맹을 맺은 로마 함대 때문에 그냥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로마 지휘관인 포필리우스 라에나스는 그에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안티오커스는 시간을 벌기 위해 참모들과 의논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 지휘관은 그의 속임수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그 주위에 원을 크게 그리고 어떤 대답을 하기 전에는 원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안티오커스는 떠나기로 대답하고 낙심하여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돌아오는 길에 유대인들에게 그 분풀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가 유대인들을 억압한 것은 분풀이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헬라화 하고자 하는 그의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30b절에서 "거룩한 언약을 한하고"는 유대 종교에 대해서 분노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유대 종교를 말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그는 배교자들을 중히 여기고 성소를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제단 위에 돼지 머리를 놓고 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배교자들에게 그럴듯한 약속을 한 후 유대 종교를 공적으로 비난하도록 하였습니다. 유대 종교를 말살하고 헬라주의를 심기 위한 박해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견디기 힘든 핍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유대인들 가운데 배교자가 나와서 같은 동족을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배교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극한 시련의 때에도 악과 타협치 않고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동맹을 발하리라." 그들은 타협을 모르는 믿음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의를 행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영위하는 것보다는 의를 위하여 떳떳하게 살다가 죽는 길을 택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죽은 후에 영벌과 영생이 있을 것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생명은 죽이지만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세상 권세자들보다 육신의 생명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능히 지옥불에 던져 넣을 수 있는 참으로 권세있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한 자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도 절망하고 슬퍼하거나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강하여 용맹을 발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죄악에 도전하여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그들 중에는 제사장 맛다디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유다 마카비아스가 가장 용감히 싸웠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하리라." 이 말씀은 그런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씀대로 1대1 말씀 공부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하늘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영광스러운 순교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어리석은 자같이 보이지만 성경은 지혜로운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 같이 보이지만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자들이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이는 35절에 보면 믿음이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1:7절에서 시련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36-45절까지는 적그리스도의 특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적그리스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불경건하였고 교만하고 잔인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높혀 모든 신, 심지어는 하나님보다 더 높이게 됩니다. 그는 그가 만든 주화에 자기 초상을 놓고 거기에 데오스(神)란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선전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비상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신성모독을 일삼습니다. 또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위대한 자라고 착각합니다(37). 당시에는 메시야를 낳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경건한 여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들은 이 여인들이 단지 경건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핍박하고 괴롭혔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모든 신들을 부인하지만 한가지 공경하는 신이 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그 대신에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열조가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적그리스도가 공경하는 신은 세력의 신입니다. 이는 군사력을 증강하여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신은 "그 열조가 알지 못하던 신" 즉 사단을 가리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단을 숭배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온갖 보물을 드려 사단을 숭배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자기에게 아부하는 자에게 권세를 주고 뇌물을 받고 땅을 분배하기도 합니다(39).
40-45절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으로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적그리스도가 영화로운 땅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거기에 본부를 두고 활동할 것입니다. 그는 단일 세계 정부, 단일 세계 종교를 베푸는 그리스도로 위장하여 세계를 통치할 것이나 결국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끝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아무리 강하여도 결국 그 끝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주권대로 작정하신 것입니다(35b,36b).
Ⅲ.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 (12장)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은 세계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계 종말의 징조는 도덕적 타락과 폭력, 탈도덕, 가치관의 혼돈과 재난의 연속입니다. 세계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은 노아 시대나 소돔․고모라 시대와 같이 영적인 것에는 무관심하고 현실적이 되고 쾌락에 탐닉합니다. 사람들은 편리한 과학 문명의 이기를 즐기면서 할 수 있는대로 편하게 지내며 쾌락을 즐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편히 지내며 쾌락을 즐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종말의 징조는 재난과 전쟁과 끔찍한 사건들이 연속되는 대환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대환난의 시대에도 천사장 미가엘을 통하여 거룩한 성도들을 보호하십니다(12:1a). 세상 끝날에 견딜 수 없는 재난과 고통의 와중에서도 거룩한 성도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2b). 뿐만 아니라 그들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날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으로 즐거워합니다(고전15:42-44). 성도들은 언제나 절대 소수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상속할 큰 무리를 보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세상에서 성도들은 이상한 사람들, 비경제적인 사람들, 자학적인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은 이기적으로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아 희생적인 믿음의 삶을 산다는 이유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타협치 않고 복음 신앙을 지킨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사느라 고난과 멸시와 수치의 옷을 입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빛나는 영광으로 옷 입을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한 상속자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될 것입니다(롬8:17). 그들은 영원히 스타가 되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이는 영화의 스타와 같은 그런 스타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스타요, 어린 양 그리스도의 스타입니다. 그들은 연단을 받아 흠이 없고 정결케 될 것입니다(12:10). 그들은 세상의 나그네로 있을 때 주님의 일을 하느라고 피곤하고 얼굴에 주름살이 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황태자와 공주가 될 것입니다. 고난은 잠시지만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은 영원합니다.
반면 하나님 없이 산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 없이 산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교만한 마음입니다. 이때까지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영원히 살고 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영원히 멸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b절은 하나님 없이 산 사람들은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많지만 가장 불행한 것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영원히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관해 들었을 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4) 마지막 때의 특징은 빨리 왕래 하고 지식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스피드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모르게 바쁩니다. 또 교통수단도 엄청나게 빨라졌습니다. 이제는 음속 시대에서 마하 시대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 30년간 인류가 쌓은 지식은 그 이전에 인류가 쌓은 지식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컴퓨터의 발달로 지식은 날로 더해 가고 있습니다. 확실히 마지막 때는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즉 강 이 편과 저 편 언덕에 각각 한 사람이 서 있고 강물 위에는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때 두 사람 중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 입니까?" 그러자 그 분이 대답했습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한 때 두 때 반 때는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12절에 나오는 1,335일도 언제까지를 의미하는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기간이 짧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성도의 인내를 상징합니다. 성도들은 등불을 켜고 신랑을 기다리는 다섯 처녀와 같이 인내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반드시 마지막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맡은 바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주님 오시는 날까지 혹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끝까지 믿음의 길, 사명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러면 평안한 쉼을 얻고(죽음) 끝날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종말의 시대에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종말의 때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바쁩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내용도 없이 괜히 바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의 소망 가운데서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이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에 절대적인 진리가 없기 때문에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릇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그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려면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공부할 때만이 옳은 데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대1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둘째로, 제자 양성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4a절에서 다니엘에게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성경 책이 양피지에 쓴 두루마리 책이기 때문에 둘둘 말아서 성경이 상하지 않도록 통에 넣어서 소중히 보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자만 간직하고 숨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진리의 글을 알고자 하는 자들, 즉 영적 소원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이 올바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증거할 수 있는 성경선생 즉, 제자 양성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8:16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도 동일한 뜻이 담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지만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닫게 됩니다(10b). 아무리 시대가 악해도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지혜로운 자들은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찾아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제자 양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1대1 말씀 공부와 제자 양성만이 재난이 심한 이 시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