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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8:1-35

by Mark Yang   05/04/2022  

Message


여호수아 제 8 강

패배에서 승리로

■ 말씀: 여호수아 8:1-35
■ 요절: 여호수아 8: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7장에서 우리는 아간 한 사람의 탐욕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공공기관이나 회사와 같은 조직체와는 달리 몸과 같은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몸의 한 부분이 아프게 되면 몸 전체가 아픈 것과 같이, 한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면 그 영향이 전체에 미치게 됩니다. 아간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괴롭히고 못쓰게 만들고 파멸시키는 환부였습니다. 하나님은 내부로 곪아가고 있는 환부를 도려내심으로 신앙공동체를 치료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치료함을 받은 후 7장에서의 실패를 딛고 승리를 거두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하는 질문보다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설 것인가?” 하는 질문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공보다 실패에 더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실패를 딛고 승리할 수 있었는가? 또 승리 후에 여호수아가 한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 봄으로써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몇가지 원리를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그들은 새롭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1,2).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하나님은 먼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하심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현재 여호수아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실수와 과오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 잡히기 쉬웠습니다. 또 사람이 한번 실패를 하고 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되면 마음이 움츠러들고 손발이 마비되어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때 전에는 아이성이 아이와 같이 작게 보였지만, 이제는 아이성이 골리앗과 같이 크게 보여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도 두렵고 아이성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축복하기를 원하시지만 아간적인 요소가 있을 때는 축복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간적인 요소를 제거하게 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세상에서는 실수하여 한번 찍히게 되면 그것으로 끝장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는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진실되게 죄를 회개했을 때는 지난 날의 모든 허물과 죄를 하나도 기억지 아니하시고 다 도말하시며 깨끗이 용서해 주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신 후에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실패했을 때 실패를 딛고 일어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의 실수 때문에, 한 번의 패배 때문에, 한 번의 범죄 때문에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진실되게 회개하면 다시 은혜와 긍휼을 베푸사 실패를 만회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지니라.”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는 첫 성이기 때문에 그곳의 탈취물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지만, 아이성에서는 스스로 취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이 주시는 방향에 순종하기만 하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다 채울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구체적으로 작전지시를 해 주셨습니다. 이 작전은 복병작전으로서 여리고 작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전이었습니다. 전쟁에서는 작전이 매우 중요합니다. 작전을 잘못 짜게 되면 아무리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어도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24:6절에서는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4월 28일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이 나라는 일본에게 먹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 임진왜란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상황에 처했는데도 지도자들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서 동인, 서인으로 나누어 파벌 싸움만 일삼고 있었습니다. 일본에 외교사절단인 통신사들이 다녀와서 보고를 하였는데 황윤길과 김성일은 정반대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황윤길은 일본의 풍신수길이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한 후 조선은 물론 명나라까지 침략하여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품고 조선침략을 위한 전쟁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 하루 속히 병화에 대비해야 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실상 그들은 백성의 절반이 군인이 되어 훈련을 받고 있었으며, 또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성일은 잔나비와 같은 풍신수길이 허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니 염려할 것 없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조와 조정 중신들은 깊은 안일에 빠져 김성일의 보고를 더 신뢰하고 장차 있을 병화에 대비하지 않음으로 후에 큰 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 장군은 장차 있을 전란(戰亂)에 대비하여 거북선의 건조에 골몰하는 한편, 쉴새없이 병사들을 조련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군사들이 육지에서는 참패를 당했으나 해전에서는 승리함으로써 육로로 가는 보급로를 차단하여 나라를 전란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해전 중에서 옥포해전, 한산도해전, 안골포해전, 명량해전, 노량진해전이 유명한데 이 해전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 때 그 때마다 지혜롭게 대처한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명량해전에서는 해류의 흐름을 이용하여 12척의 전함으로 무려 130척을 대파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전투에서는 전략이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의 삶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어제의 전략이 성공했다고 해서 오늘의 영적 전투에서 어제의 전략이 성공적인 전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전투에서는 오늘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전략, 오늘의 양식, 오늘의 힘, 오늘의 은혜, 오늘의 방향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패배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제 성공한 것 때문에 사고가 굳어져서 오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면 패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방향에 순종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매일 겸손하게 하나님의 작전지시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새롭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자기 나름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4절은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매일 매일 겸손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실패를 교훈으로 삼았습니다 (3-9). 하나님의 작전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는 용사 3만명을 매복조로 뽑아 밤에 보내며 성읍 뒤로 가서 매복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나머지 백성들은 유인조가 되어 자기를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3천명만 보냈고 여호수아 자신도 싸움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복조로 3만명을 보내고 여호수아도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서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백성들이 승리에 도취되어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것을 이용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실패를 딛고 새롭게 도전한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배후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잘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무수한 실패를 교훈 삼아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성공은 실패를 전제로 해서 된 것입니다. 야구의 신화적인 기록을 남겼던 데이브 루스가 714번째의 홈런 기록을 세웠을 때 신문들은 저마다 이 경이적인 기록에 대해 떠들어 댔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신문들 중에서 오직 하나의 신문만이 그가 714번째의 기록을 세우던 그 날, 그 기록과 동시에 1,330개의 스트라이크 아웃(strike out), 즉 삼진 기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그의 성공은 실패를 전제로 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미국 역사에서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한 사람의 행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22살에 처음 시작한 사업에서 보기좋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23세에 주의회에 출마했다가 보기좋게 낙선했습니다. 24세에 다시 사업에 손을 댔지만 이 사업마저 실패했습니다. 27세에 그는 신경쇠약과 정신분열증으로 시달림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9세에 다시 한번 의회 의장직에 도전했다가 낙선을 당했습니다. 31세에 그는 대통령 선거위원회에 도전했다가 또 다시 낙선했습니다. 34세에 국회의원에 또 한번 낙선하고, 37세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했지만 39세에 다시 낙선을 경험했습니다. 46세에는 상원의원에 낙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47세에 부통령에 또 낙선하는 비극을 맛봅니다. 49세에 또 다시 상원의원회에 도전했다가 또 한 번 낙선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는 51세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에이브라함 링컨입니다. 어느날 사람들이 링컨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성공과 존경받는 삶의 비결은 도데체 무엇입니까? 링컨은 그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저는 실패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배운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실패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배웠기 때문에 더 큰 일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링컨이 가장 좋아했던 성경구절은 로마서 8:28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실패도 절망도 좌절도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상이 바로 링컨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실패할 때 악마는 끝장났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내가 실패할 때 하나님은 이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악마의 말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인 United Tecknology의 기업 PR 광고의 헤드라인의 제목은 ”이 글을 보시면 기분이 좋아집니다“입니다. 이 광고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소매상을 운영했는데 파산, 빚을 갚는데 15년이나 걸렸고,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네 번이나 낙선했고, 결혼했으나 악처를 만나 불행했고, 사람들은 모두 그를 외면했고 신문은 그를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초라하고 수염 많은 남자에게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사인을 할 때 A. 링컨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광고를 보는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에이브라함 링컨이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딛고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패할 때 좌절하고 절망하고 엎드려질 것이 아닙니다.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믿음으로 더 큰 일에 도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방향을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10-29).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성으로 올라갔습니다(10). 그리고 성읍 서편에 복병을 매복시킨 후에 아이 백성들을 유인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1차전 때와 같이 싸우는 척하다가 후퇴를 하자 아이성 사람들은 그들이 사퇴가 불리하여 후퇴하는 줄 알고 성문을 활짝 열어 놓은채 멀리까지 그들을 따라 나왔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은 손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는 순간에 복병들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아이성을 정복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진멸하였고, 아이성을 불살라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하였을 때는 패하였지만 죄를 회개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작전대로 순종하였을 때는 큰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잠언 18:12절은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지도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방향에 순종하여 단창을 끝까지 가리키고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8절과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단창을 가리키는 것은 쉬운 일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빈손으로 십분만 손을 들어 가리키기도 매우 힘이 드는데 거의 하루종일 단창을 들고 서 있는다는 것은 엄청난 중노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단창을 들고 서 있기 위해서는 피곤한 마음과 지루함을 극복해야 합니다. 또한 단창을 가리킨다고 원수를 무찌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신도 극복해야 합니다. 단창을 가리키는 것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분명한 기도제목을 제시함으로써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 한 일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단창을 들고 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손을 들어 단창을 가리키는 일이 너무 힘들고 지루하고 피곤하다고 해서 단창을 내려 놓게 되면 백성들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아무리 힘들어도 백성들에게 분명한 기도제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굳게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백성들은 지도자가 제시하는 방향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서 가리켜야 할 단창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단창, 기도의 단창은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단창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에 두신 단창은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들을 영적 지도자로 키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대일 성경공부의 단창과 제자양성의 단창입니다. 더 나아가 전세계 187개국 캠퍼스를 복음으로 정복하는 세계선교의 단창입니다. 쉽게 말하여 성서한국의 단창과 세계선교의 단창입니다. 우리는 세계 187개국이 복음으로 정복되기까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까지 이 기도제목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기도제목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붙든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끝까지 붙들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1985년 세계선교 보고대회 때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10년내에 USSR(소련)에 선교사를 파송할 수 기도제목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당시 소련은 철의 장막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에 이 기도제목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이 기도제목을 붙잡고 줄기차게 기도했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90년에 수교도 되기전에 황제임스, 송어거스틴 선교사들이 불가능한 가운데서 헝거리를 거쳐 믿음으로 나아갔고, 1991년도에는 쿠데타가 일어난 상황 가운데서도 제 1회 여름 수양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00여명의 선교사들이 나아갔으며 각곳에서 활발한 제자양성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제목을 붙들고 줄기차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기적의 역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5월 24일에는 제 13회 세계선교 보고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이 선교보고대회는 경제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좌절과 절망 중에 있는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이 백성이 나아가야할 분명할 방향을 제시하는 대회가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굳게 붙들어야 할 내적인 방향은 말구유 정신입니다. 말구유 정신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것과 같이,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정신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정신입니다. 우리가 말구유 정신을 굳게 붙들 때 하나님께서 이를 축복하사 놀라운 생명 구원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넷째, 승리의 날에 감사의 제단을 쌓고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30-35).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정복한 후 두가지 일을 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희생과 헌신을 상징합니다. 또한 화목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는 친교를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여호수아는 모든 승리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신앙고백하고, 또 계속하여 자족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승리의 날에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승리의 날에 감사의 단을 쌓을 때 교만해지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여호수아는 승리의 날에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모세의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돌에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과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이방인들까지도 다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나아오게 하고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서게 하였습니다. 에발산은 거칠고 조악한 바위산이 있고, 그리심산은 나무가 많은 아름다운 산입니다.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에발산과 같이 심판과 저주를 받아 황폐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리심산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아름답게 됨을 시청각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곳은 자연 음향장치가 완벽하여 지금도 에발산 꼭대기에 서서 그리심산 위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열심히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웠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여호수아가 왜 이때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을까요? 이는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으로 무장하는 것만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러 다른 책들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의 책이 아니라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이 직접 기록한 책중에 인생 문제들을 총망라하고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책은 성경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사의 모든 문제들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문제들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성경 이외의 책들은 인간의 특정한 한계상황에 대한 조언만을 줄 뿐이지만, 성경은 인간의 권태, 외로움, 실패, 좌절, 절망, 무기력, 무지 등 모든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사화복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가 됩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한계적인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지혜가 뛰어난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할 때 우리를 지배하는 사단의 영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됩니다. 인간이 괴로운 것은 환경이 좋지 않거나 인간조건이 좋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 괴롭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은 그 마음이 사단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영, 곧 악령의 지배를 받을 때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부족함이 없이 산다 할지라도 행복이 없게 됩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고 무엇에 좇기는 불안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단잠을 자지 못하고 악몽을 꾸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게 되면 악령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위로부터 생명과 평화가 임하고 심령에 참 만족과 기쁨이 생기게 되어 세상을 승리할 수 있는 힘을 덧입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성경을 가르치되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 등 좋은 말씀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동시에 가르쳤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종 모세는 축복의 말씀과 저주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앞에는 항상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천국의 길과 지옥의 길, 두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말씀을 순종하기에 힘쓰면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때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 나도 축복받을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축복받고 나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고 마음의 욕심과 정욕을 좇아 행하고 육신과 감정을 좇아 행하면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그때는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저주가 임하여 저주의 근원이 됩니다. 또한 나만 저주받는 것이 아니라 내 자손도 저주를 받게 되어 저주가 대물림을 하게 됩니다. 모세는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선포한 후에 신명기 30:19절에서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우리는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나의 선택은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내 가족과 후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가 축복의 길과 생명의 길을 택함으로 나 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과 내 주위 사람들과 내 후손들이 축복을 받는 복의 근원으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몇가지 원리를 배웠습니다. 첫째로, 매일 새롭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배우고 이를 기초로 더 큰 일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제목을 끝까지 붙잡는 것입니다. 넷째로, 승리의 날에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고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에게 실패를 딛고 승리할 수 있도록 위로부터 영적 지혜와 능력을 공급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