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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0:1-12:24

by Mark Yang   05/04/2022  

Message


여호수아 제 10 강 (김 모세 목자)

태양아 머무르라

▣ 말씀 / 여호수아 10:1-12:24

▣ 요절 / 여호수아 10:12

오늘 말씀을 여호수아서 말씀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여호수아서의 이야기는 여호수아의 장군으로서의 리더의 이야기이고 그의 가나안 정복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가나안 중부의 여리고와 아이, 벧엘을 정복하게 하시고 이제 남부 왕들을 격파하고 이어 질풍노도같이 달려들어 북방 연합군을 진멸시킵니다. 여기서 여호수아의 하나님께 대한 열정과 믿음을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와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배웁니다. 특별히 태양을 향해 외친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여호수아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하나님은 그를 믿기만 하면 모든 세대 모든 이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말씀을 통해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이 하나님을 감사 찬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로서 새봄학기를 맞는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I. 기브온 전투 (10장)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성을 진멸한 후 기브온과 화친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듣고 가나안 왕들은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이를 듣고 크게 두려워졌습니다. 왜냐하면 기브온은 왕도같이 큰 성이고 또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이 다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브온이 자기들과 힘을 합쳐 이스라엘과 싸워야할 판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도니세덱은 헤브론 왕과 야르뭇왕, 라기스왕, 에글론 왕들에게 사신을 보내어 함께 배반자 기브온을 응징하지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이끌고 올라왔습니다. 이에 기브온 사람들은 길갈에 연락해 여호수아에게 ‘당신의 종들을 도와주소서, 속히 올라와 구조해주소서, 아모리 왕들이 자기를 칩니다. 기브온 살려--’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모든 군사와 용사를 거느리고 길갈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그들은 본격적으로 산악전을 치루어야했습니다. 기브온은 해발 1800 지점에 위치한 성입니다. 그들이 주로 평지에 익숙한 자들로서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 원수들이 익숙한 이런 산악전을 치루는 것은 부담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도우셨습니다.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같이 8절을 잃어보겠습니다. “그들을 두려워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하는 당신의 종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로 담대하게 하고 승리의 확신을 주십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선교사명을 주시고 그들에게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담대히 복음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용사들을 말씀으로 도와주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며 담대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아모리 사람들을 어떻게 공격했습니까? 그는 야간 기습작전을 펼쳤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사흘을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러 기습공격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간기습공격을 잘합니다. 1967년 그들은 아랍과의 6일 전쟁에서도 새벽 기습공격으로 적의 기선을 제압하고 승리했습니다. 1976년 그들은 우간다 공항에 테러리스트들에게 인질로 잡혀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출할 때도 협상 마지막 날 몰래 특공대를 띄워 밤새 날아가 엔테베 공항에 기습 착륙해 그들을 전원 구출해 전원 구출해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캠퍼스에 올라갈 때 기습해 올라가듯 해야 합니다. 아직 학기 초 새내기 양들이 뭔가를 잘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고 선배들이 아직 여유잡고 있는 때 입학 처음 열흘 동안 총력을 다해 기습 피싱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때 우리가 이들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말씀의 관계성을 맺어 그들의 마음의 먼저 점령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공부하며 이런 것도 배워야합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기습공격을 하자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들은 이스라엘 앞에 패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비탈길에서 추격하며 멀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렀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것은 가나안 남부지역 깊숙이까지 추격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산악이 익숙해서인지 도망갈 때 잘 달렸습니다. 미쳐 이스라엘의 발길이 따라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둘째, 하나님은 우박폭격으로 도우셨습니다. 그들이 벧호른 비탈길을 내려 달아날 때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일제히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들은 우박 용단 폭격을 당하면서 커다란 우박 덩어리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때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성경은 이때 죽은 자들이 이스라엘의 자손의 칼에 맞아 죽은 자보다 더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용사들을 도우실 때 때로는 자연현상, 기후 변화를 통해서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열 재앙을 내리실 때도 애굽에 우박을 내려 사람들과 짐승들과 밭의 채소들을 치신 바 있습니다. 우박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은 피 섞인 우박, 한 달란트 짜리 우박으로 심판을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약 34kg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뿐만이 아닙니다. 셋째, 하나님은 태양을 세워 시간을 벌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아모리 사람들을 붙이시던 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들을 치는데 아무래도 이 한낮에 그들을 다 칠 수 없을 것같았습니다. 더욱이 해가 지면 그들을 더 이상 추격할 수 없었습니다. 원수들에 대한 분노와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열성에 사로 잡힌 나머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양을 향해 소리 질렀습니다. 12b를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 그가 감히 태양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달을 향해 외쳤습니다. 태양이 15층 건물 꼭대기 옥상에 있습니까? 달이 뒷동산 감나무에 걸려 있는 것입니까? 그거 하늘 높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태양이 알았다는 듯, 달이 알았다는 듯 그 자리에게 동작 그만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들을 계속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야살의 책이 이때의 상황을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야살의 책이란 의로운 자의 책이란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영웅들의 업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여기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날 12시쯤부터 다음날 거의 12시가 될 때까지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힘도 좋습니다. 어째 지치지 않고 보통보다 거의 24시간이나 더 그렇게 쉬지 않고 추격한 것일까요? 반면에 도망가는 아모리 족속들은 아무 도망가도 해가 지지 않으니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은 밤을 기다라며 도망에 도망을 갔지만 밤은 오지 않고 이스라엘의 추격을 당하며 결국 다 죽었습니다. 이로서 아모리 다섯 연합국이 다 전멸되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합니다. 이것을 실제 있던 사건이 아니라 여호수아가 너무 열심히 하다보니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단시간 내에 적을 물리쳤다는 것이지 실제 그렇게 해가 선것은 아니다 하고 주장합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나님의 사람들의 말은 언제나 번함 없습니다.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로 유명한 바벵크는 ‘이것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느냐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면 하신 것이지 무슨 의심이 그리 많느냐는 뜻입니다. 바벵크는 지금부터 100여전에 활동하던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그는 요즘같이 컴퓨터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믿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20세기 과학이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미국 우주항공국(NASA)에서 역사적 사실로 입증된 것입니다. 과학자 헤롤드 힐은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때 그 인공위성이 목표지점으로 정확히 날아가 도착하고 또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하면 아주 정확한 계산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여차여차한 속도로 움직이는데 또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화성 목표지점에 도달하려면 정확한 이동 궤적이 필요하고 그 비행거리와 시간이 계산되어져야합니다. 만일 여기서 조금이라도 오차가 나면 인공위성은 화성 궤도에 진입했어도 각도가 안 맞으면 대기권 속으로 들어가면서 불에 타 없어지든지 아니면 대기권에 튕겨나가 영원한 미아 위성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서울에서 돌을 던져 부산에 날아다니는 파리의 오른쪽 눈을 맞출 만큼의 초정밀성을 요하는 것입니다. 이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주 초정밀 궤적이 필요합니다. 미래의 궤적은 미래일이라 알수 없어 지구의 과거를 추적하여 현재 화성으로 보내고자 계산한 그 인공위성의 예상 궤적이 맞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공우주국에서 슈퍼 컴퓨터를 돌려 지구의 과거 궤적을 추적해본 결과 아주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지구 궤적 추적 중에 거의 24시간이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는 23시간 30분이 사라진 것이고 또 하나는 40분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때 과학자들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깜짝 놀랐는데 이때 헤롤드 힐은 성경의 여호수아의 이 사건이 있음을 알고 년대를 추적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여호수아가 싸우던 그 시대와 정확이 일치하였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40분은 뭐냐- 이것은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고자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도록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실제 해시계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시간적으로 40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헤롤드 힐은 바로 바닥에 엎어져 고백했습니다. ‘ 나의 하나님, 당신은 살아계시군요.’ 그리고 는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이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태양이 머문다는 것은 지구가 자전은 갑자기 그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돌던 지구가 갑자기 멈추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관성의 법칙에 의해 지구에 있는 것이 다 앞으로 쏠려 다 지구 밖으로 내던져져야합니다. 또 이 거대한 지구를 누가 무슨 힘으로 갑자기 세우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물체를 원위치에 그대로 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호수아 때는 돌던 것이 스톱을 한 것이라면 히스기야 때는 돌던 것이 갑자기 거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구상에 물체에 더 커다란 충격을 줍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별일 아닌 것처럼 일어난 것입니까? 만일 여호수아가 이런 물리학적 지식을 알았더라면 그는 결코 이런 기도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기도 못할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여호수아는 원수를 물리치고자 이렇게 시간을 달라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물리학적 요소들을 잠재우시고 태양을 세웠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주는 단순한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인간의 물리학이 복잡할 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단순성’이라고 합니다. 단순하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승리를 주시고자 단순히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이 믿음의 기도, 열정적인 도전을 기뻐하시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고 외치는 자에게, 주의 일을 열심을 내고 일하고자 하는 자에게 태양을 세워서라도 시간을 주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현대의 삶을 복잡하고 할 일이 많으며 또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역사를 섬길 시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시간을 주십니다. 학생들은 할 공부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어찌하든지 하나님 역사를 섬기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시간을 주시고 학과 공부에서도 승리를 주십니다. 사모님들은 애 키우고 가정일 돌보느라고 캠퍼스에 양을 만나러 갈 시간이 없기도 합니다. 평신도 목자님들은 늦게 퇴근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때일수록 ‘ 태양아 멈추어라’ 하고 기도하면서 한계에 도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시간을 주십니다. 열성 있는 믿음의 사람에게 시간이 부족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종들에게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기도하는 자에게 단순히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현실의 한계에 부딪쳐 쉽게 물러날 때가 많습니다. 매번 상황이 어려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부족해 , 다른 일도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여기며 이것은 이래서 못하고 저것은 저래서 못한다고 말합니다. 들어보면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머물러서는 하나님 역사를 섬길 수 없고 역사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하며 한 마디로 무식한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터무니없듯 외치는 기도소리에 사람들은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기도 아주 좋아하십니다. 머리 굴려 계산을 거쳐 나온 기도- 하나님은 이런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단순히 믿고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윌리엄 케리가 한 유명한 말을 알고 있습니다. “ Expect great thing from God, Attempt great thing for God-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

하나님은 이 시대 구원을 위해 열정에 사로잡힌 용사를 필요로 하십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용사를 기다리십니다. 역대하 16:9a는 말합니다. “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은 믿음의 용장을 그리워하십니다. 태양에 도전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저는 여호수아의 태양을 세우는 기도를 묵상하다가 고대생들의 응원가 중에 ‘응원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요즘은 이 노래를 잘 안 부르는지 최근 학생들은 잘 모릅니다. 소설가 오탁번씨가 작사했는데 아주 멋있습니다. “나가자 태풍같이 고대 건아여 장안을 뒤흔드는 젊은 호랑이 승리의 그날까지 가슴을 펴고 외쳐라 고대 정신 태양을 향해. 아 아 싸우면 이기는 안암의 호랑이 자유 정의 진리의 고려대학교.” 우리가 고려대생들과 여호수아와 같이 태양을 향해 외치는 자 되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모르는 고대 양들을 불쌍히 여겨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고대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목자가 되고 그들의 영적 아비, 어미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금년 여호수아와 같이 도전하듯 캠퍼스로 달려 올라가 열심히 피싱에 도전하고 또 도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시간이 없는 분은 ‘태양아 너는 고대 골짜기에 머물라’ 외치며 열심히 일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금년 100명의 학생 제자를 세우고 고대 복음화의 기초를 놓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철도대에 들어가면 ‘ Life is Mission ’이란 말이 건물에 크게 붙어 있습니다. 인생은 Mission 곧 사명입니다. Mission 이라는 말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예수를 전하는 사명’입니다. 철도대에도 2010년까지 100명의 목자가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곳으로부터 수많은 선교사가 나오길 기도합니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아모리 족속들을 다 이기고 온 이스라엘과 함께 길갈로 개선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16절을 보십시오. 아모리 족속 연합국 다섯 왕은 자기 부하들 다 죽었는데 자기들 끼로 도망가다가 막게다의 굴에 숨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글 어귀를 큰 돌로 막고 지키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하고 믿음을 심어주고 후군을 계속 추격해 그들을 크게 도륙하고 거의 진멸시켰습니다. 그 남은 몇 사람만 겨우 자기 성에 살아 돌아갔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이때 여호수아가 굴에서 다섯 왕을 끌어내게 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부르고 또 자기와 함께 싸웠던 군장들- army commanders- 아마 군단 사령관들 쯤 되는 사람들 같습니다. - 이들에게 ‘이 왕들의 목을 밟으라’ 하고 말했습니다. 고대 근동 전투에서 승장은 패장의 목을 발로 밟고 자기의 위업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밟지 않고 자기와 함께 싸우러 나간 군 지휘관들을 불러 그들이 원수의 왕들의 목을 밟게하고 그들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왕들의 입은 옷은 화려합니다. 위엄이 있어 보입니다. 그들에게 뭔가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목을 밟으려며 좀 주춤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군장들은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그들의 목을 군화발로 꽉! 용감하게 꽉 밟았습니다. 그러자 왕들이 켁켁 거리며 몸을 비틀었습니다. 뭔가가 있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25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 이때 군장들이 다섯 왕의 목을 눌러 밟고 있는 모습은 상징적입니다. 이를 통해 여호수아는 군장들에게 그들이 앞으로 계속 이렇게 원수들을 이겨나갈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심었습니다. 이렇게 한번 원수의 목을 꽉 밟아보면 승리의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도 분명해집니다. 이어 그는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해질 때 그들이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을 막았습니다. 그는 그 후 계속 막게다를 공격해 취하고 그곳 성습과 왕을 쳐서 모두 진멸했습니다.

시편 110:1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최후 심판의 날에 원수 사탄을 진멸하고 그들을 발로 밟아 발등상 삼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20에서 “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을 사는 우리는 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살 대 믿고 사는 나만 혼자 뒤지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이 죄의 세력은 최후의 심판의 날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원수 사단의 목을 발로 밟고 주께서 주시는 승리의 포도주를 마시며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며 승리의 노래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날이 곧 올 것을 확신하며 열심히 죄와 싸우며 끝까지 주님 주신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여호수아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이 하나님의 공의의 하나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둘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공의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이런 것을 보고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나안 사람들이 얼마나 죄악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의 분노를 사고 있었는지 알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니은 언제 어디서든지 죄가 가득차면 심판하십니다. 아브라함 때 가나안에 있던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그때보다 600여 년 전 의인 한명이 없어서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아야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무법하고 짐승 같은 정욕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들은 심히 죄악 되었고 지독한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습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 때부터 600년 전이 지난 지금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이에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앞세워 이제 가나안 사람들을 그들을 심판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편애하는 것은 아닙니다. 후에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면서 우상숭배에 빠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을 때, 그리고 예레미야의 말대로 그 성 안에 한명의 의인을 찾기 힘들었을 때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그들을 철저히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완악하게 버티면 누구라도 심판하십니다. ‘비느하스의 창’을 기억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총회를 하고 있는데 한 이스라엘 남자가 미디안 여인을 진중으로 끌고 들어와 장막에서 정욕의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진중에 염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때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이를 보고 창을 들고 그 장막에 들어가 그 남녀가 엉켜 죄를 짓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창으로 꽂아 죽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진노가 누그러졌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대신해 분노하므로 때에 이스라엘 진중에 퍼져였던 염병이 그쳤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거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때 비느하스를 축복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평화의 언약을 주시고 그 자손 대대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죄악을 미워하시고 죄악을 범하는 자들에 대해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시고 우리 인간들의 죄값을 찾으실 만큼 죄에 대해 그만큼 철저하고 또한 조금의 용서도 없으십니다. 오직 예수님께 나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도 심히 본성이 죄악 되지만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주셔서 구원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여호수아는 이후 계속 싸웠습니다. 가나안 남부 지방의 립나, 라기스, 에글론, 헤브론, 드빌 성들을 하나 하나 정복하고 그들을 온전히 진멸하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40절을 보십시오. 그는 어디든지 갔습니다. 온 땅, 곧 산지, 남방, 평지, 경사지와 모든 왕들을 쳐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같이 4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고 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그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분명히 죄와 싸우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싸움에 함께 하시어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가 먼저 내안에 있는 죄와 싸워야겠습니다. 우리가 남모르게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겨가며 승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내 안에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후 여호수아와 같이 우리 시대의 죄악과 싸우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실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렇게 남부 지방을 점령한 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길갈 진으로 돌아왔습니다.

II. 메롬 물가 전투 (11,12장)

이렇게 남부가 여호수아에 의해 궤멸되고 이스라엘 손에 장악되자 북부의 왕들이 긴장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중 에서도 특별히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에 제일 먼저 긴장하였습니다. 하솔성은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14km 떨어진 성읍으로 앞에 말한대로 모든 나라의 머리라고 불리 울만큼 거대한 왕국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이 성의 크기는 대략 200 에이커 정도로 여리고성의 25배가 되는 큰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솔 왕 야빈이 북부의 곳곳의 왕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동서편의 가나안사람,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여부스 사람, 히위사람 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대 이스라엘 연합군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때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습니다. 이때 수가 얼마나 많은 지 해변의 수다한 모래와 같고 말과 병거로 심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메롬 물가에 진을 쳤습니다. 메롬 물가는 갈릴리 바다 서북쪽 15km 지점, 갈릴리 고산 지대와 헬몬산 사이에 위치한 길이 약 25km, 너비 약 6 km 정도 되는 함몰지역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를 말합니다. 이들은 이곳에 모여 길갈까지 요단강 계곡을 타고 내려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연합 소식을 여호수아가 들었습니다. 그의 가나안 정복전쟁은 날이 갈수록 더 강하고 많은 군대와의 전투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는 이길 수 없는 전쟁입니다. 지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찾아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 하나님은 또 한번 여호수아를 찾아 오셔서 그에게 승리의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는 말은 이스라엘 너희에게는 저런 것 필요 없다. 그런 것을 의지 말고 계속 순수하게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전쟁의 승리에서 뭔가 대단한 무기가 있어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믿음만을 가지고 나가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시편 20:7은 말합니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7절을 보십시오. 승리의 확신을 덧입은 여호수아는 하솔 연합군이 내려올 때를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먼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메롬 물가를 졸지에 기습하였습니다. 그는 기습 전쟁의 명수였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행군하여 적이 예상치 못한 때에 습격을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부지런합니다. 부지런한 자가 승리합니다. 그는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읍시다. 그는 항상 먼저 다가가고 먼저 공격합니다. 그가 이렇게 담대히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솔의 북부 연합군들을 그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이에 그들은 놀라 도망갔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은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그리고 밤을 새워 동편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그들을 다 쳐죽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목표가 분명합니다. 그들을 최후까지 추격하여 진멸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는 사자같은 심장을 가지고 담대하고 거침 없으며 끝까지 추격하며 상대방을 궤멸 시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그들의 말 뒷발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하솔을 정복해버렸습니다. 왕을 쳐 죽었고 거대한 성 하솔이 완전히 토벌되고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그는 하솔만 불살랐습니다. 하솔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은 북부 지역의 머리와 힘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하고 커도 여호수아와 그 군대를 이길 수 없으며 무엇보도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하나님의 군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11장 15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 우리는 여기서 여호수아의 열정을 배웁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철저히 하나님의 명대로, 모세의 명대로 다 행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다름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열정이라 무엇입니까? 열정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열정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풀면 ‘ 하나님이 그 상황 속에 함께 계신다(God In).’입니다. 여호수아의 싸움의 특징은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전진에 전진를 거듭한 열정입니다. 그는 이런 열정을 가지고 저 남방 고센 땅에서부터 평지, 산지에서부터 저 북쪽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 바알갓까지 그 안에 있는 모든 왕을 잡아 쳐죽였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지는 여러 날이라’ 학자들은 여호수아의 이 정복전쟁이 7년 동안 치루어졌다고 합니다. 7년은 참으로 긴 시간입니다. 이 긴 시간을 그는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앞에 무엇이 있든 물불을 안가리고 과감하게 돌진하며 적을 파하고 또 파하고 추격에 추격을 거듭해 원수들을 진멸하고 또 쫓아낸 것입니다. 그는 또한 가나안 땅의 온 산지에 장대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크고 강해도, 성이 견고해도 여호수아는 무적이었습니다. 이로서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 자손들에게 주마 하신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지파별로 기업을 나누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서 전쟁이 그쳤습니다. 요단 저편 해 뜨는 곳의 땅은 모세의 의해 정복되고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에게 분배되었고 요단 이편 해지는 곳은 여호수아의 의해 이렇게 정복되었습니다. 그 땅에 거하던 왕들, 평지에 거하든, 골짜기에 거하는 산꼭대기에 거하든, 비탈에 거하든 모든 성들과 그 왕들이 멸절되었는데 12장은 그 왕들의 수가 31라고 하였습니다. 1:31의 싸움 - 참으로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해, 그 백성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싸웠습니다. 온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 넘치는 그에게 세상 나라는 통속의 물방울 하나같이 미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목표를 향해 온 몸을 날리며 달려가는 여호수아의 열정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여호수아와 같은 담대한 사자의 심장을 주셔서 태양을 향해 외치고 죄악된 세상을 향해 싸우는 용사로 만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세상의 사단의 세력은 날기 갈수로 강하고 교묘해져가는데 우리가 연애감정, 정욕적인 생각, 마음 속에 여전한 감정, 미움 등의 사소한 문제에 빠져 달려갈 바 그 목표를 잃고 방황하며 비실대고 있으면 이는 슬픈일입니다. 기도하고 결단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금년에 우리가 기도하는 데로 학생 제자 양성 100명의 환상에 사로잡혀 여호수아와 같이 이 한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한 자신의 직장에서, 또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서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도전하며 범사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세상에 fighting 없이 이루어지는 비전이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힘으로만 이룰 수 있는 비전도 없습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 비전 앞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없습니다. ” 이렇게 고백하고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다 하실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새학기 시작합니다. 우리 젊은 날의 기회, 하나님이 주신 2006년 새봄학기라는 또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와 복음을 위해 온 힘을 다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3주간의 작정 새벽기도를 통해 우리의 심령을 강건케 하시고 우리가 금년 영육간에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릴 수 있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