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 View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by Mark Yang   06/26/2022   Revelation 22:6~21

Message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6-21

요절: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제 우리는 계시록 마지막 본문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원수들 사이의 영적 전쟁을 반영하는 분명하고도 두드러진 운율을 가진 장엄한 심포니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소외받고 취약합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원수들은 강하고 사납습니다. 복음 진리를 붙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에 의해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쉽고 타협하기 쉽습니다. 이런 영적인 전쟁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을 완전하고도 영원히 멸하실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영원히 거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이제 이 심포니는 예수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라고 반복해서 하신 약속으로 최고조에 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22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둘째는, 계시록 공부의 핵심적인 포인트로서 이 메시지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약속: “내가 속히 오리라!” 오늘 본문은 계시록을 마치는 북앤드로 1장의 시작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1장은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라는 주제로 시작하고, 예수님이 “알파와 오메가”이심을 말해 줍니다(1:7-8). 22장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는 같은 주제로 결론을 맺고, 예수님이 역시 “알파와 오메가”이심을 말해 줍니다(7a,12a,13,20a). 본문의 시작과 마지막 사이에 예언의 말씀들이 두루마리에 계시됩니다.

이 책은 1:1a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라는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1-22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계시하셨습니다. 22:6절에서 “이 말”은 계시록 전체를 가리킵니다. 천사는 요한에게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이 말”이 인간의 말이 아니라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6b). 계시록의 말씀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너무 환상적이어서 믿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상한 생각을 퍼뜨리기 위해 계시록을 잘못 이용해 온 것으로 인해 경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세속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악한 욕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수님의 재림의 소식에 대해 조롱합니다(벧후 3:3-5).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께서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기 때문입니다(3:14; 19:11). 그는 속히 되어질 일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6b). 우리는 그가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헬라어 본문에서는 7절이 “그리고(kai)”로 시작합니다. 이는 화제가 천사에서 예수님 자신으로 전환이 이루어짐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가 오실 것을 주목하기를 원하심을 말해 줍니다.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으려고 경합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정치인들과 광고주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목적을 위해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합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에 대해 관심이 없고, 오직 우리의 표를 얻고 우리에게서 돈을 벌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순수하게 우리의 구원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크신 사랑과 긍휼로 우리의 마음에 참 소망을 심기를 열망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그의 재림에 우리의 눈을 고정해야 합니다. 이는 그의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7b). 이것은 계시록의 일곱 가지 복 중에 여섯 번째입니다.

이 복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1:3).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14:13).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16:15).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19:9).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20:6).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22:7).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22:14). 복은 수고로부터의 영원한 안식을 말하며, 자신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특권을 말하고,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과, 둘째 사망을 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복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와 함께 더불어 왕노릇하는 것을 말하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고, 영원한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권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자기 백성을 축복하는 것이고, 그 복은 풍성하고 넘칩니다. 이 복은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키다”는 말은, 주의 깊게 듣고, 그 의미를 묵상하며,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제 삶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축복이 우리에게 오고, 우리의 삶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요한이 천사를 통해 예언의 말씀과 환상을 듣고 보았을 때, 그는 너무 황홀하여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습니다(8). 우리는 쉽게 하나님이 주신 환상에 압도됩니다. 위대한 사도 요한조차도 유혹을 받아 천사를 경배하고자 했습니다. 천사는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하면서 즉시 그의 잘못을 고쳐 주었습니다(9). 인간이나 성인이나 천사가 아무리 카리스마가 있고 환상적인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합당하십니다. 4:11절은 말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또 어린 양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5:12절은 말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 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께 경배합시다.

천사가 요한에게 말했습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그리스도가 오시기 약 600년 전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묵시적 예언을 주시면서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명하셨습니다(단 12:4).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완전히 계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때에는 하나님의 계획은 확실히 정해졌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듯이, 우리는 이 세대의 종말의 징조들, 즉 전쟁과 전쟁의 소문, 지진과 전 세계적인 유행병 등 많은 징조들을 보고 있습니다. 올해 많은 저명한 과학자들과 세계의 지도자들이 운명의 날 시계를 자정 100초 전으로 앞당겼는데, 이는 세상 끝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이 기후변화와 핵과 사이버전쟁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하면, 이는 세계 종말 전에 부패와 사악함의 증가 때문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 복음을 부지런히 전파해야 합니다.

예언의 말씀이 선포될 때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납니다. 11절은 말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여기서 악인과 성도의 두 집단의 사람이 나옵니다. 각 집단은 하나님의 심판의 기초가 되는 행위와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행위의 유형이, 불신에 의한 것이든, 믿음에 의한 것이든, 그 행위는 결국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삶에서 복음 진리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들이 생을 마감하거나 혹은 주님의 재림이 임할 때, 그들의 특징은 불변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7-8a).

12절에서, 화자가 천사에게서 다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바뀝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실 때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같은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나중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일한 자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3:20). 우리는 즉시 응답해야 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12b). 예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 이 신적 이름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말해 줍니다. 즉, 예수님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신실한 자는 상 주시고, 악한 자는 벌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14-15절에서 “복이 있다”와 “성 밖에 있다”는 대조되는 말 속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옷을 씻은 사람들, 즉 그가 보혈을 흘리심으로 그들의 죄가 씻음 받은 것을 영접한 자들에게는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을 권리를 받을 것이며,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성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정말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와 대조로, 하나님은 거룩한 성에서 악인을 제외시키시고, 그들을 심판하여 성 밖으로 쫓아내십니다. 그 목록의 첫째 사람은 반려견이 아닌 거짓 선지자로 상징되는 개들입니다. 또한 마술을 행하는 사람들, 음행하는 자들, 살인자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모든 자들이 그 목록에 있습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밤낮으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21:8).

16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교회들에게 이 메시지를 보낸 자임을 확증하셨습니다. 누가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는 것은 받은 사람에게 중요합니다. 보내는 사람이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듣겠지만, 권세가 없으면 무시해 버립니다. 예수님은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밝히셨습니다(16).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다윗의 뿌리로서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속하신 메시아요 다윗의 씨로 이 세상에 오셔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의 나라의 최종적인 완성에 관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십니다. 밤이 거의 끝날 때 샛별이 떠오릅니다(벧후 1:19). 예수님은 새로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십니다. 이제 그의 재림이 가까이 왔습니다.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고 밝은 새로운 날이 다가옵니다.

17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반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 즉 교회가 말씀하기를 “오라!” 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갈망하며 그분의 오심을 환영합니다. 그들은 함께 세상에 대해 증인이 됩니다. 성령의 증언이 없으면 교회는 힘을 잃고, 교회의 증언이 없으면 성령께서는 침묵하십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께로 와서 구원을 얻으라고 촉구함으로써 함께 효과적인 증인이 됩니다.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오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함께 영접하도록 요청받습니다. 목마른 자들은 예수님께 오라고 초청을 받습니다. 영적 소원이 있는 자들은 생명수 선물을 값없이 받으라고 초청을 받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 마지막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은혜로우시고 마음이 넓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벧후 3:9).

18-19절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 대한 마지막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예언의 말씀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빼서 왜곡시킨다면 심각한 결과를 겪게 될 것입니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사람들은 예언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외하지 않고 인간의 말로 여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만하여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을 그들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실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입니다. 우리는 요한과 같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해야 합니다(20). 이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요 기도입니다. 계시록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는 마지막 인사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21).

둘째,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 우리는 계시록 공부의 결론을 내리면서, 이 책의 중심 메시지를 붙들기 위해 전체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왜 그것이 기록되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요한도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곳에서 계시록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1장에서 요한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2-3장은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4-5장에서 요한은 하나님과 어린 양을 예배하는 하늘의 예배에 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한 심판을 실행할 권세를 부여 받으셨습니다. 어린 양은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고, 심판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쏟으십니다. 세가지 연속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6:1-8:5절에는 일곱 인, 8:6-11:19에는 일곱 나팔, 15:1-16:21에는 일곱 대접이 그것입니다. 12-14장은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에 의해 다스림받는 이 세상 사이의 영적 갈등을 설명합니다. 17-18장은 바벨론의 몰락을 서술합니다. 19:1-10절은 바벨론의 몰락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선포를 축하합니다. 19:11-21절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완전하고도 영원히 심판하시는 만왕의 왕으로서 그리스도를 묘사합니다. 20장은 하나님께서 악의 근원인 사탄에 대해 최후의 심판을 행하십니다. 21:1-22:5절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더불어 거하시는 거룩한 성에 대해 말해 줍니다. 계시록은 우주적인 이미지와 상징들과 은유를 포함한 묵시 문학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분명히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메시지들은 칭찬과 책망, 카운슬링과 상급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이 서신의 중심 주제인 “내가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약속은 1:7절에서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3:11절에서 그리스도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2:7절과 12절에서, 그리스도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2:2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약속을 확증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반복의 중요성, 특히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반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부정과 폭력, 부패와 다른 많은 악한 행위들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각종 질병과 자연재해, 정치적 소요와 전쟁과 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끊임 없이 일어나며 사람들의 영혼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말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사탄과 모든 악인들을 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이고, 우리는 낙원에서 영원히 그를 즐거워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가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규칙적으로 이 약속을 기억할 필요가 있고, 또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시련 가운데서도 이 약속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내가 오리라”는 약속은 주로 그리스도의 최후의 나타나심을 언급한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각 세대에게 그가 속히 오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에 앉아 계셔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1장에서 계시하였듯이, 예수님은 그의 성령을 통해서 땅에 있는 교회 사이를 거닐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끊임없이 역사하셔서 그의 교회를 유지하시고 양육하시며 인도하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약속을 지키는 자들에게 상주시고 악인을 벌하십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4-5). 예수님은 또한 니골라 당의 거짓 가르침과 타협한 버가모 교회 사람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6). 반면에 예수님은 복음 진리를 굳게 붙든 빌라델비아 신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3:11).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이 최후의 승리는 이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요 왕으로 영접하는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하고 타락한 세상에 살면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타협하여 미지근한 신앙 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박해가 있을 때 두려움에 빠져 움츠러들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교회를 어떻게 격려하십니까? 그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2:10). 하나님의 복과 상급을 받을 자는 오직 이기는 자 뿐입니다. “이긴다”, “승리한다”는 말은 신자들에게 10번이나 적용되었습니다(2:7,11,17,26; 3:3,12,31; 12:11; 15:2; 21:7).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12:11절은 말합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우리가 생명이 다하기까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러면 우리는 응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