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의 피로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12:1-13:18
요절: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 경제 침체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듣지 못하는 더 심각한 전쟁이 있는데 이는 악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의 관심은 육의 영역에 매이게 됩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라떼를 사먹지 못해 매우 아쉽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위기의 때에 왜 그것이 일어났으며, 우리의 진정한 싸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6:1-11:19에서, 일곱 인과 일곱 나팔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의 첫 두번의 순환을 살펴보았습니다. 15-16장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이 쏟아지면서 심판의 세 번째 순환이 진행됩니다. 12-14장은 하나님의 백성과 이 세상 사이의 영적 갈등의 근원적 원인을 드러내는 배경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상징적 등장인물은 여자와 남자 아이, 용과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 그리고 어린 양과 144,000명입니다. 이 상징적인 인물들은 우주적인 영적 전쟁의 양측의 세력을 나타냅니다.1 이전의 심판의 순환과 같이, 오늘 본문도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비전으로 끝납니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보이는 세계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고, 거기에 있는 것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방법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과학은 이 보이는 세계가 어디서 왔으며, 많은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왜”라는 질문은 “어떻게”라는 질문보다 우리 삶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사람들은 대개 “왜”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세계관, 즉 현실에 대해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신념에 기초하여 대답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인지 말해 줍니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와 갈등의 깊은 뿌리에는 사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원수는 사람이나 나라가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탄입니다. 에베소서 6:12절은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오늘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세계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은 영적 전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12장은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는 원천이며, 이 사탄이 어떻게 세상에 던져졌는가를 말해 줍니다. 13장은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기 위해 첫 번째와 두 번째 짐승을 통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12장이 하늘에서의 전쟁을 다룬 것이라면, 13장은 땅에서의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하늘에서의 전쟁(12:1-12). 1-12절은 하늘에서 일어난 영적 갈등에 관한 배경 이야기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 한 큰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습니다(1). 이는 우리에게 창세기의 요셉의 꿈을 상기시켜 줍니다(창 37:9). 이 여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구약의 첫 이스라엘과 또한 새로운 언약 공동체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여자가 아이를 해산할 때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었습니다(2). 이는 그들이 메시아의 오심을 갈망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긴 기다림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였는데,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을 쓰고 있었습니다(3). 용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은 그의 억압적인 권력의 완전함과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나타냅니다. 왕관은 그리스도에게 적대적인 우주적인 권세를 가졌다는 마귀의 거짓 주장을 가리킵니다. 그 용은 너무 강력해서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습니다(4a).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 서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아이를 삼키고자 하였습니다(4b).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사악한 헤롯 왕이 메시아를 죽이려고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역의 2살 아래의 모든 아이들을 살해하고자 했습니다(마 2:16). 여자는 용의 공격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도 약하고 취약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와 아이를 보호하셨습니다. 마침내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여자를 통해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갈 4:4). 이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것입니다”(5a; 시 2:7-9). 만국의 통치자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사탄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는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갔습니다(5b).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는 만유의 주권자가 되셨습니다. 그는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교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6절을 보면 그 여자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서 1,260일 동안 양육을 받습니다. 이는 사탄이 여러 방법으로 교회를 멸하려고 시도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그의 교회를 보호하심을 의미합니다.
7-9절은 용이 누구인지, 그가 왜 땅으로 던져졌는지,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해 줍니다. 7절은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라고 시작합니다. 계시록은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몇몇 구절, 즉 이사야 14:12-15, 에스겔 28:11-19, 유다서 6절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사로 하나님을 수호하는 그룹이었습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도록 아름다움과 지혜로 단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특권과 축복들이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인 줄 생각하고 자기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교만하여져서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사 14:14). 그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추락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5:5b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사탄은 그를 따르던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이 되었습니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은 이 원수들과 싸웠습니다(7). 이 원수들은 이기지 못하여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상실하였습니다(8).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겼습니다(9).
용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옛 뱀”인데, 이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뱀과 동일한 존재입니다(창 3:1). 그는 자신을 첫 인간의 친구로 가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회의를 심었고, 교만을 부추겼으며, 그들을 타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살인을 하기 위해 거짓을 이용하였습니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헬라어로 “디아볼로(diabolos)”인데, 이는 “비방자”, “모욕하는 자”, “거짓 참소자”라는 의미의 “마귀(devil)”로 번역됩니다. 또 다른 이름은 “사탄”인데 이는 히브리어에서 기원한 이름으로 “대적”이란 뜻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 속임수를 써서 온 세상을 그릇된 길로 가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는 요한이 살던 시대에 거짓 선생들을 통해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를 혼란스럽게 한 것처럼, 이단으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합니다(2:14-16,20).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부르셨습니다(요 8:44).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이 땅으로 내쫒겼을 때 하늘에서는 큰 축하가 있었습니다.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10a). 사탄이 내쫒긴 것은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능력과 권세가 메시아에게 회복됨으로써 이제 구원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탄의 머리가 박살났습니다. 그는 결코 회복될 수 없고, 오직 능력의 흔적만이 잠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를 2차 세계대전에서 D-Day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변을 탈환했을 때, 이는 승리의 확신을 주는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V-Day라고 일컬어지는 최후의 승리를 이루기 전에, 여전히 유럽에 남아 있었던 나찌 세력의 잔당들을 쳐부수어야 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D-Day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고, V-Day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오게 될 것입니다.
10b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기뻐해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그들은 사탄이 참소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풀타임으로 하는 일은 사람들을 참소하는 것이며, 그는 휴가도 없이 밤낮으로 일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약함과 죄를 찾는데 실패함이 없으며, 가차없이 하나님 앞에 기소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를 무시할 수 없으시며, 죄인들을 죽음의 정죄에 처하게 할 수밖에 없으십니다. 아무도 사탄의 참소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 정죄받는 것은 감당하기 힘듭니다. 자기 정죄는 더 감당하기 힘듭니다. 이는 우리에게 큰 불안과 심지어 절망을 안겨 줌으로써 우리 영혼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는 수많은 비극의 뿌리입니다. 믿는 자들에 대한 사탄의 참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당신의 죄는 너무 끔찍해서 용서받을 수 없어. 2) 당신은 반복해서 죄를 짓고 있지 않은가, 이제 포기해. 3) 당신의 말과 행위는 성숙하지 못해, 그러므로 당신은 예수님과 교제할 자격이 없어. 4) 당신의 계속되는 의심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야. 5) 당신의 사역은 열매가 없으므로 당신은 쓸모없는 자야. 6) 당신은 자녀 양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패배자야. 우리가 어떻게 사탄의 이런 참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선한 행위를 한다고 가능할까요? 자신을 학대하면 될까요? 아니면 그것을 잊으면 될까요? 우리가 그 어떠한 노력을 한다해도 소용 없습니다. 그러나 길이 있습니다.
11절은 읽어 보겠습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첫째로, 우리는 어린 양의 피로 사탄에 대해 승리했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마땅히 죽음의 형벌를 받아야 하는 우리의 죄를 고소함으로써 죄인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우리를 위해 값을 치러준다면, 우리는 사형 선고와 영원한 정죄로부터 놓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값을 치를 수 있을까요? 선하고 고결한 사람이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고자 한다면 구원은 가능할지 모릅니다. 문제는 세상에 의인이 없다는 것인데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자기 죄로 죽어야 합니다(롬 3:23; 6:23).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우리 죄값을 지불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꺼히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제물로 드리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요 1:29). 그의 피는 우리 죄를 용서하고, 우리 영혼과 양심을 깨끗하게 하며, 우리에 대한 모든 사탄의 참소를 무효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히 9:14).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를 확신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자신이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며, 그의 약속은 신뢰할만한 것임을 증명하셨습니다. 로마서 4:26절은 말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사도 바울은 선언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고, 심지어 나 자신조차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로, 우리는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사탄을 이깁니다. 예수님께서 고귀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완전히 치르셨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자 하는데 우리가 받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그 선물의 유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영생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증거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요 주가 되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물은 매우 고귀한 것이어서, 우리는 기꺼이 그를 위해 무엇이라도,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5:5절은 말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승리는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로 즐거워하게 합니다(12a). 그러나 마귀는 하늘에서 쫒겨나고, 이로 인해 땅과 바다는 화가 있게 됩니다.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었습니다(12b). 이제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큰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까지 땅에서 전쟁을 벌이기 위해 그의 모든 능력을 집중시키십니다.
둘째, 땅에서의 전쟁(12:13-13:18). 12:13-17절에서, 우리는 땅에서 사탄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의 갈등의 이야기를 말해 주고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였습니다(13). 이는 사탄이 그리스도를 멸하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하자 교회를 파괴시키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독수리의 두 날개로 받아 인도하신 것과 같이, 그의 교회를 안전하게 옮기시고 교회를 돌보시고 양육하셨습니다(14). 하나님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그의 교회를 강하게 하시고 양육하십니다. 다니엘 7:25절과 관련하여 이 기간은 성도의 고통은 잠시 뿐이고, 박해자의 권세는 끝날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뱀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뱀은 여자의 뒤에서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였습니다(15). 이 강은 교회를 실족하게 하려고 사탄이 고안한 거짓 가르침과 거짓말을 상징합니다. 역사 이래 거짓 가르침과 거짓말은 교육자, 웅변가, 정치인,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책이나 미디어와 같은 것을 통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멸망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물의 넘침으로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서 삼켰듯이, 하나님은 마귀의 거짓말과 거짓 가르침을 흩으십니다(16).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기독교와 성경을 대적하여 글을 썼는데, 그는 1776년에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앞으로 100년 후에는 호기심 많은 골동품 수집가가 찾는 것 외에는 성경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은지 100년 후, 프랑스 성서공회는 볼테르가 파리에 살던 집에 본부를 세웠습니다.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볼테르가 사용하였던 바로 그 인쇄기가 성경을 인쇄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은 여전히 최고의 베스트셀러입니다. 메시아와 그의 어머니를 죽이고자 실패한 용은 좌절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대대로 이어온 교회와 더불어 싸우려고 합니다(17).
13장은 사탄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굳게 붙잡은 자들을 어떻게 핍박하는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두 짐승을 이용합니다. 첫 번째 짐승은 강력한 국가를 나타내고, 두 번째 짐승은 거짓 종교를 가리킵니다. 이 짐승들은 온 세상이 사탄을 숭배하도록 합심해서 일합니다. 첫 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나옵니다. 이 짐승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인데,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었습니다(1).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았습니다(2a). 그 짐승의 모습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여러 짐승들을 혼합시킨 형태와 같이, 여러 특징들을 혼합시켜 놓은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사나움과 혐오스러움을 보여줍니다(단 7:1-8; 17-27). 이 짐승은 용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2b). 이 짐승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는 강력한 제국을 상징합니다. 3절에서 짐승의 머리 중 하나는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았습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치유의 역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모방한 것입니다. 이는 사악한 정권의 흥망성쇠를 상징하는 것인데, 사악한 정권은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이나 파시즘, 공산주의, 그리고 어떤 정권이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정권을 말합니다. 특히 요한의 시대에는 모든 위협에서 살아남은 로마 제국이 영원하고 그 어떤 것보다 숭배하기에 매력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온 세상이 매혹되어 짐승을 숭배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4) 사실 그들은 온 세상이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게 하는 사탄의 속임수에 기만당한 것입니다.
그 짐승은 매우 교만한 말과 신성 모독을 하는 입을 받았으며, 또 마흔 두 달 동안 그 권세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5). 짐승의 거짓 성격은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곧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장막과 하늘에 살고 있는 자들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은 대단하지만 제한되어 있습니다. 짐승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과 싸워 이기는 권세를 부여받습니다(7a). 이는 현재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점점 증가되고 있습니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중국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전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새로운 행정조치를 시행하면서 “종교의 자유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가했습니다.2 그들은 교회를 멸하기 위한 본보기로 우한을 설정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바로 그 때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이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짐승의 출현은 역사이래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짐승은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 사람들의 동맹을 우주적으로 지배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7b). 그 짐승은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합니다(8a). 그때가 되면 중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편에 서든지, 짐승에 편에 서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리에 이르는 데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로 부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섬기느냐, 사탄을 섬기느냐, 이 두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은 그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짐승을 경배하지 않는다고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사탄을 경배하는 자들은 잠시 동안은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8b).
요한은 생명책에 “창세 이후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라는 구절을 덧붙였습니다. 이 구절은 어린 양의 죽음을 통한 최후의 승리와, 경배를 강요하는 짐승의 강압적이고 일시적인 권력과 대조됩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탄의 속임수와 영적 죽음로부터 보호하시고,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에게 승리의 확신을 주십니다. 9-10절은 사로잡히거나 칼에 죽임을 당할 신자들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인내하고 신실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 갈등과 위기의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예수님에 대해 증언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11-18절은 거짓 선지자라고 불리우는 둘째 짐승에 관해 말해줍니다(16:13; 19:20; 20:10). 그 짐승은 첫째 짐승의 홍보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둘째 짐승은 땅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는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였습니다(11). 첫 번째 짐승이 그리스도의 모조품인 것처럼, 두 번째 짐승은 성령님의 모조품입니다.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받아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했습니다(12). 그는 큰 이적을 행할 수 있는데, 심지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할 수 있었습니다(13). 그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이런 미혹은 매우 강력한 무기로써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첫 번째 짐승을 기리는 형상을 세우도록 강요했습니다(14). 그는 짐승에게 생기를 주었고,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이게 했습니다(15). 그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16-17).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거나, 혹은 그 이름의 수인 666이었습니다(18b). 이 표는 짐승의 소유권과 그들의 충성의 표시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소유권과 하나님의 인, 곧 성령님의 모조품입니다.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께 대해 기꺼히 충성하고 신실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동안 짐승의 표와 숫자를 해석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이로 인해 본문의 핵심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666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이 곳에만 나옵니다. 666은 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의 숫자인 7과 대조시켜 말한 것으로 미완성과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상징합니다. 계시록은 영리함을 요구하지 않고, 영적 통찰력과 분별력을 요구합니다(18a).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영적 전쟁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주 원인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였지만 아직도 여전히 강합니다. 그는 거짓말을 퍼뜨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린 양의 피로써 이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고, 오직 자유와 평화와 승리 뿐입니다. 우리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시련의 때에 예수님을 증언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