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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by Mark Yang   06/26/2022   Revelation 15:1~16:21

Message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요한계시록 15:1-16:21

요절: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요한계시록의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것은 세 가지 일곱 시리즈, 즉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심판에서 진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 심판에서는 지구의 4분의 1일 파괴되었고, 나팔 심판에서는 지구의 3분의 1이, 대접 심판에서는 땅 전체가 파괴되었습니다(6:8; 8:7; 16:1). 이 세 가지 심판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세부적으로 하나씩 더해지면서 일정한 사건을 반복하는 나선형태와 같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납니다. 그것들은 중심 주제를 반복하고 전개시키는 심포니와 같습니다.

대접 심판은 마지막 심판입니다. 땅은 모든 악인들과 함께 완전히 파괴됩니다. 동시에 짐승과 그 왕국은 어두움에 던져집니다. 이 심판은 완전하고 무섭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바로 전에 일어날 것입니다. 심판이 임할 때 우리의 첫 반응은 “너무 심하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들을 갖기 쉽습니다. “이것이 왜 필요하지?”, “이 심판은 공정한가?”, “하나님은 정말로 세상을 사랑하시는가?”, “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을 공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공부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의로우신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주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15:1-4). 이 부분은 12-14장의 막간계시를 결론지으면서 장차 올 일곱 대접 심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짐승을 이긴 자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 즉 그의 속량과 심판을 계속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3-4). 1절에서 장면이 땅에서 하늘로 바뀝니다. 요한은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마지막 재앙을 가졌는데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게 됩니다. 우리는 오래 동안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워왔기 때문에 그것이 과연 끝날 것인지 궁금합니다. 코로나의 제 2차 유행이 오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가 끝없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끝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입니다.

2절에서 요한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지상의 홍해에 대응되는 하늘의 홍해를 나타냅니다. 불은 짐승과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이제 요한은 바다의 혼란한 능력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잠잠해지는 것을 봅니다.1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짐승을 이겼습니다(12:11). 그들은 타협하도록 하는 짐승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복음 진리를 지켰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실 때 하늘에서 지켜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거문고를 가지고 승리의 특별한 노래를 부릅니다(3a).

이 노래는 하나님의 종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라고 불려웁니다. 요한은 어린 양의 노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모세의 노래와 비교했습니다. 모세의 노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수들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역사적으로 기념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15장에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래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애굽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애굽을 떠난 후, 바로는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군대와 홍해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갇혔고, 두려움에 마비되었습니다. 모세는 두려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길을 여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이를 시험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날은 이스라엘의 최후 승리의 날, 즉 V-Day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모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어린 양의 노래의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권세에서 구원하셨듯이, 어린 양 예수님의 피로 그의 백성인 교회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날은 구원의 날, D-Day입니다. 아직은 사탄의 권세가 여전히 우리에게 위협이 됩니다. 그러나 최후 심판의 때에 하나님은 사탄을 완전히 멸하십니다. 그 날은 최후의 승리의 날, V-Day이고, 우리는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노래 자체의 실제적인 내용은 출애굽기 15장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나온 것입니다. 첫째 연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입니다(3a).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하시고 놀라운 일, 즉 구원과 심판의 영광스러운 행위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실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계시록에 8번 나오고,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방법으로 그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크신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것이요, 공의로 그의 대적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없다면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탄이 멸망되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이 강력한 원수를 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큰 능력과 지혜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크신 지혜로 독생자 예수님을 대속제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능력으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둘째 연은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입니다(3b). 하나님의 길은 항상 옳습니다. 그에게는 기만이나 거짓이나 편애가 없습니다. 그는 의롭고 참되시며 완전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만민의 왕이십니다. 그는 왕의 왕이요 주의 주가 되십니다. 이것이 왜 좋은 소식입니까? 세상 지도자들은 권력을 얻으면 부패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강압적이 됩니다. 세상 지도자들은 잠시 동안 가끔 의롭고 공정할 수 있지만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데모하는 것입니다. 만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참되고 의로운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없는 겸손과 초자연적인 지혜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는 이와 같은 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만민의 통치자로서 참되고, 의롭고, 지혜로우시며 능력이 많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통치하실지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사 11:1-4a). 그리스도만이 참되고 의로우시며 전능하신 통치자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셋째 연은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입니다(4a). 하나님께서 그의 전능하신 능력과 크신 지혜와 의와 공평으로 행하신 일을 들을 때, 누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만민은 그러한 통치자를 갈구합니다. 기자들의 일 중 하나는 지도자들의 약점을 찾아내어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홀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어떤 결점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연에서 큰 반응을 봅니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4b).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참되시며 의로우시고, 거룩하심에 있어 뛰어나십니다.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드립니다!

둘째, 주의 심판은 참되시며 의롭습니다(15:5-16:21). 15:5-8절은 심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요한의 비전이 성전으로 이동합니다. 그 곳은 하늘에게 가장 거룩한 곳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하게 드러난 곳입니다. 그 성전은 증거 장막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드러내는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임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의 언약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십계명은 모든 사람의 양심에 새겨진 것입니다(롬 2:14-15).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습니다(6a). 이는 심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며 그의 종들에 의해 시행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 천사들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습니다(6b).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할 합당한 도구로서 그의 거룩함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네 생물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일곱 천사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죄를 없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두려운 것으로 하늘의 천사들조차 그의 거룩한 영광 가운데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8). 그 순간 중보의 시간은 지나가고 심판이 집행됩니다.

16:1절에서 하나님은 일곱 천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한 때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아졌는데, 이는 그가 죄인들을 위해 하신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죄인들에게 쏟아졌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행한 일 때문입니다.2 이 최후의 심판은 수없이 많은 경고를 하고 회개하도록 부르신 후에 오게 됩니다. 첫 번째 대접이 땅에 쏟아지자 악하고 독한 종기가 짐승을 숭배했던 사람들에게 났습니다(2). 갑자기 하나님을 경멸했던 잘 생기고 아름다운 유명한 모든 연예인들이 추하게 되고, 고통으로 일그러져서 카메라 뒤에 숨어서 통곡을 합니다. 두 번째 대접이 바다에 쏟아지자 바다가 피로 변하고 바다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이 죽었습니다(3). 바다는 어마어마한 양의 산소와 먹을 것을 제공하고, 지구의 기후와 그 외 더 많은 것들을 조절합니다. 바다가 오염될 때 땅에 심각한 재앙이 옵니다. 세 번째 대접이 강과 물 근원에 쏟아지자 피가 되었습니다(4). 그 결과 땅의 마실 수 있는 물 근원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인간도 생물도 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구의 생명체의 멸망을 가져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것을 볼 때 충격적입니다. 사람들은 사랑과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와 같이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가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책임지고 있는 천사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변호하였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5-6). 이 심판의 분명한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평소 물을 마시듯이 아무 생각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이제 그들은 목이 마를 때마다 그들이 마실 것은 피 밖에 없으므로 자신들이 지은 큰 죄에 직면하게 됩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은 생명의 피를 찾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죄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창 9:5-6). 그런데 그 흘린 피가 하나님의 속량함을 받은 자녀들의 피일 때 그 죄가 얼마나 더 심각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심판에 있어서 불공평하지 않으십니다. 제단도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7). 여기서 제단은 하나님의 원수들에 의해서 피를 흘린 순교자들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어 왔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6:10).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며,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다고 시인한 것입니다.

네 번째 대접이 해 위에 쏟아지자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습니다(8). 태양은 지구의 생명체에 필수적이며, 대기에 의해 차단되고 걸러질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큰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네 번째 대접은 그러한 거르는 장치를 제거합니다. 이제 태양 광선의 모든 세력이 지구 위에 그대로 쏟아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강렬한 열기에 타버리고 맙니다. 이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님이 이 재앙을 행하는 권세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저주합니다. 그들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회개하고 그에게 영광돌리기를 거부합니다(9).

다섯 번째 대접이 짐승의 왕좌에 쏟아지자 그 나라가 곧 어두움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10a). 이는 우상 숭배를 조장하고 악을 잉태하는 계획을 수립하는 짐승의 본부에 대한 전략적 공격입니다. 짐승과 그의 왕국이 강력하게 보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 버틸 수 없었습니다. 짐승을 경배한 사람들은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었습니다. 그들은 아픈 것과 종기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임을 알면서도 하늘의 하나님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것을 회개하기를 거부했습니다(11).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겪을 때, 악인들의 공통된 반응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하나님을 비방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자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2-13).

여섯 번째 대접은 “아마겟돈”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원수들 사이에 최후의 전투를 위한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12-16).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격렬하게 분노하며 하나님을 공격할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패할 것입니다. 유브라데 강은 방어선이었습니다. 이 방어선이 제거됨으로 동방에서 오는 왕들, 즉 하나님의 원수들이 최후의 전투에 유인됩니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성삼위 하나님을 모방한 것입니다. 개구리 같이 생긴 더러운 영들이 각각 그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땅의 왕들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왕들 모두가 한 곳에 모입니다. 그들은 강력하고 저항할 수 없는 세력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그들은 완전히 멸망당할 것입니다.

15절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셀 수 없고 강력한 대규모의 하나님의 군대와 함께 갑자기 예기치 않게 오실 것입니다. 이는 그와 그의 백성들에게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날에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즈음 우리는 “집에 있으라”는 명령에 매우 익숙합니다. 우리가 비록 집에 있을지라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귀신의 영과 그들이 행하는 표적으로 인해 속지 말아야 하며, 두려워 하거나 믿음을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카운슬링하셨듯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3:18).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귀신들과 땅의 왕들은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마겟돈”이라는 장소에 모입니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로 “므깃도 산”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의 큰 왕국들 사이의 주요 통로를 따라 있던 중심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기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체험했습니다(삿 5:19; 대하 35:20-22). 그래서 그 곳은 결정적 전투를 할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상징적이므로 지리적 위치나 어느 나라 군대의 군사 작전인지에 대해 추측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곳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원수들이 싸우는 최후 전투의 장소입니다.

일곱째 대접은 전 세계의 최후의 파멸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을 말합니다. 일곱째 대접이 공중에 쏟아졌을 때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17). “되었다!”(It is done!)라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신 말씀을 떠 올리는데, 둘 다 똑같은 헬라어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첫 번째 외침은 “하나님 나라가 열리는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최종 속량 뿐만 아니라(계 21:1-22:5)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힌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심판이 있을 때, 두 번째 외침이 완성됩니다.”3 하나님의 심판은 이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그 때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었고, 또 큰 지진이 있었는데 그것은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었습니다(18). 그 결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 심지어 큰 성 바벨론도 무너졌습니다(19).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었습니다(20). 또 무게가 한 달란트(약 60킬로그램)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떨어졌습니다. 이는 단지 자연 재해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마지막 순간에서조차도 사람들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저주했습니다(21).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왜 필요한지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에게 진노를 쏟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에 기초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둠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고 그의 통치에 저항하는 회개치 않는 반역자로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출 34:6).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최후의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신다면 불의와 악이 만연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주권자가 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그의 의로운 기준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고 참되고 공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은혜를 영접하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은 크고 놀라우시도다”라고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Beale, G.K. and Campbell, David H., The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Revelation A Shorter Commentary (Grand Rapids, MI: Eerdmans Publishing Co., 2015), p.317.

  2. MacArthur, John, The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Revelation 12-22 (Chicago, IL: Moody Publishers, 2000), p.133.

  3. Beale, G.K. and Campbell, David H., The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Revelation A Shorter Commentary (Grand Rapids, MI: Eerdmans Publishing Co., 2015), p.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