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 View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by Mark Yang   06/26/2022   Revelation 20:1~15

Message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1-15

요절: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우리가 살펴본대로, 계시록은 그리스도와 사탄의 우주적인 영적 갈등에 대해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때까지 사탄은 세상에서 악을 행하기 위해 바벨론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그의 권세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17-20장은 이런 악의 세력들이 어떻게 하나씩 하나씩 심판을 받고 멸망받는지를 말해줍니다. 바벨론의 몰락은 17-18장에서 서술되었습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19장에서 유황불 붙는 못에 산채로 던져졌습니다. 이제 20장에서 하나님은 악의 근원인 사탄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십니다. 사탄이 제거되고 난 후 하나님의 완전한 왕국이 세워집니다. 거기서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과 거짓과 불화와 부패와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살고자 아둥바둥대면서 좌절과 분노와 우울증에 빠집니다. 지난 주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 폭력의 혼돈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로나 19 위기가 가족들을 집에 갇혀 있게 한 이래, 배우자 폭력(IPV)이 20% 증가했는데, 이는 1500만의 추가 건수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코올 판매는 243%나 급상승하였습니다1. 이는 사탄이 통치하는 곳에서 발생합니다.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곳에서는 완전히 다릅니다. 사랑과 이해, 기쁨과 평화, 진리와 정의와 공의가 다스리는 세계를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 세계의 축복을 위해 함께 일하는 세계 말입니다. 이는 동화와 같이 생각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현재 우리는 가족과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의 통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와 죽음과 사탄의 방해 때문에 일시적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낮은 몸이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될 것이고, 사탄은 영원히 제거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 통치의 완전한 축복과 특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축복과(1-6) 사탄과 죽은 자의 심판(7-15)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공부해 보겠습니다.

첫째,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축복(1-6). 1-3절은 사탄이 어떻게 결박되고 갇히게 되는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1). 무저갱은 악한 영들이 매여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그들의 마지막 운명이 될 불못과는 다릅니다. 사탄은 “용”, “옛 뱀”, “마귀”라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2. 사탄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이런 가명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깁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천사는 큰 사슬로 묶어서 그를 무저갱에 던졌습니다(2-3a). 사탄은 과거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람을 속이고, 미혹시키고, 고소하고 고통을 주었습니다(욥 1:7; 계 12:10b).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 사탄은 갇쳤고, 무저갱이 그 위에 인봉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천 년이 지날 때까지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잠깐 놓이게 될 것입니다(3b).

4-5절에서 요한은 보좌들을 보았는데,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또한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타협하지 않았고,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합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되었습니다. 신자는 부활에 있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입니다(롬 6:5).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이는 영혼의 영적 부활입니다. 이는 사람이 거듭날 때 시작됩니다. 육신이 죽을 때 우리 영혼은 하늘에 계신 주님께로 갑니다. 우리의 육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부활할 것입니다. 첫째 부활의 기간은 새로운 영적 탄생부터 부활의 몸을 받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오직 믿는 자만이 첫째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나머지인 불신자들은 이에 포함되지 않습니다(5). 오히려 그들은 11-15절에 언급되었듯이 심판받기 위해 악한 자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행 24:15).

이 구절에서 핵심 단어는 “천 년”입니다. 이 말은 여섯 번 나옵니다(2,3,4,5,6,7). 이는 사탄이 갇혀 있는 기간과,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통치하는 기간을 나타냅니다. 이는 또한 라틴어로 “천 년”이란 뜻의 “밀레니엄(millennium)”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 년은 성경에 이곳에만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시록의 맥락 속에서 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가장 논쟁이 심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3

전천년설 견해. 전천년설은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 전천년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천 년이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시작된다는 주장입니다. 사탄은 결박되고 그리스도는 지상의 평화와 번영의 기간을 시작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천 년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긴 기간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믿는 자들은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부활의 몸을 받게 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은 천년왕국이 끝날 때 행해집니다. 그 후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입니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7년 대환난 바로 전에 오셔서 휴거의 방법으로 신자들을 하늘로 들어 올리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문자 그대로의 유대인의 왕국을 천 년 동안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는 가장 지지 받지 못하는 견해입니다.

후천년설 견해.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천 년 후에 오실 것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 전에 크게 확장될 것을 믿습니다. 어떤 후천년설주의자들은 문자 그대로의 천 년을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상징적인 것이고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무천년설 견해. 그들은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현재적 통치의 상징이고, 문자 그대로의 천 년의 통치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와 그의 부활을 통해 이미 결박당했습니다(요 12:31; 골 2:15). 첫째 부활은 거듭남으로 시작됩니다. 전체적인 부활과 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일어날 것이고,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오게 됩니다.4

각 견해는 다 장점이 있고 성경에 의해 뒷받침되지만, 무천년설 견해를 선호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천년설주의자들은 연대순으로 20장의 사건을 19:11-21절의 사건 이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의 구조적 입장에서 보면, 20장을 일곱 번째 심판이요 심판의 마지막 순환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계시록은 연대기적 순서가 아니라 반복되는 나선형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곱인과 일곱 나팔, 그리고 일곱 대접은 연대기적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점점 더 맹렬하고 정확하게 임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일곱 시리즈 각각은 예수님의 재림과 그의 통치로 끝납니다(7:17; 11:15; 14:14-20; 19:11-16). 20:7-10절의 최후의 전투는 동일한 선상에서 16:14,16; 17:14; 19:11-21의 최후의 전투와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20:10절에서 사탄의 심판은 바벨론의 심판(17-18장)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심판(19:11-21)과 평행구조를 이룹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원수들 모두가 19:11-21절에서 멸망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20:1-6절이 19:11-21절보다 나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20:3절에서 사탄이 미혹하려고 하는 만국이 왜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어떤 견해를 취하든 천년왕국에 대한 교리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필수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일에 대한 신비가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며, 핵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는 사탄이 최후에 멸망당한다는 것과, 그 동안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시며 그들을 축복하셔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과 승리감과 모든 환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줍니다.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이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가지 축복 중 하나입니다 (1:3; 14:13; 16:15; 19:9; 20:6; 22:7,14). “복이 있다”는 말은 “최고의 행복”을 의미입니다. “거룩하다”는 단어는 죄가 완전히 제거되었기 때문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그들은 순결하고 흠이 없습니다. 그 축복들은 “그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이는 이 세상에 있을 때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킨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연합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하늘의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그들은 용과 짐승을 이긴 승리자들입니다.5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어떤 복이 주어집니까? 첫째로, 그들은 둘째 사망을 면하게 됩니다. “둘째 사망”은 첫째 사망을 암시합니다. 첫째 사망은 아담의 죄로 시작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1절은 말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첫째 사망은 육체의 죽음 뿐만 아니라 영적인 죽음,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가리킵니다. 육체의 죽음은 첫째 사망의 증상입니다. 둘째 사망은 유황불 붙는 못에서 겪는 영원한 정죄입니다(21:8). 둘째 사망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세력을 떨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에 대해 걱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부끄럽게 하실 것을 상상합니다. 우리는 심판을 받기 전에 부지런히 우리의 모든 죄를 고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히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더 이상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 8:12). 더욱이 우리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혼인잔치와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 분의 신부로 준비시키기 위해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을 덮어주시고, 죄를 없이 하시며,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며,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빛나는 신부로 준비하십니다(19:7-8; 엡 5:25-27). 이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는 확실히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로 인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를 간절히 기다리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이유입니다(빌 3:20; 딤후 4:8). 이 큰 축복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옵니다.

또 다른 큰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6절에서 요한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5:10절,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라는 말씀에서 확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은 우리 하나님을 섬기고 땅에서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는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기 시작합니다(엡 2:6). 그의 통치는 그가 다시 오실 때 완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통치”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치”라는 단어를 들을 때 무엇이 떠오릅니까? 그것은 높은 위치에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이는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사실 통치는 하나님의 세계를 다스리는 자요, 청지기로서의 우리의 원래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 형상을 따라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그가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 1:27-28).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사랑으로 돌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한 이후 “다스리다” 또는 “통치하다”의 의미가 왜곡되었습니다. “통치하는 것”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과 세상을 착취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세상의 분쟁과 갈등과 파괴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위엄과 목적을 상실하였습니다. 사실 이는 인간의 죄에서 기인한 사탄의 통치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이 전 세계를 통치하는 것을 뒤집고, 잃었던 것을 회복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2:5-9절은 그것이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늘의 영광과 존귀를 버리시고 인간이 되시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시간과 공간 속에 가두어 두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와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는 온갖 종류의 죄인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는 위대한 주요 선생이셨지만, 자기 자신을 낮추시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의 종의 리더십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기꺼이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하였습니다(5:12). 이것이 “통치”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그와 함께 한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실 때, 우리도 또한 그와 함께 왕 노릇 합니다(딤후 2:12). 이는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원래의 통치의 회복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승급된 지위를 받는 것으로 그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사탄과 죄와 사망의 권세에 취약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임기의 제약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할 것입니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피조물들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번영할 것입니다.

우리는 19장에서 사용된 혼인의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것”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혼인은 신부와 어린 양의 완벽하고도 영원한 연합입니다. 이 어린 양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왕의 왕이요 주의 주로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그의 신부로서 그의 통치에 참여합니다. 이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또한 이 땅에서 그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불렀고, 우리는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롬 8:17b).

둘째, 사탄과 죽은 자에 대한 심판(7-15). 상징적인 천 년이 지나면 사탄은 그의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일 것입니다(7-8a). 곡과 마곡은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한 은유입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결박을 당했을 때, 미혹하는 그의 권세는 오래 동안 제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바로 전에 잠깐 동안 놓임을 받아 만국을 미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짓 메시아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 심지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을 예언하셨는데, 여기서 바로 이를 언급하신 것입니다(마 24:24).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6-12절에서 이를 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 중에서 2:9-10절을 보겠습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하나님께서 사탄을 풀어주는 목적은, 교회를 정결하게 하고 그의 대적들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대적들을 함께 모아 지면에 널리 퍼져 진군하게 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에 있는 그의 백성들의 진을 에워쌀 것입니다(8b-9b). 그러나 하나님은 결정적인 심판으로 하늘에서 불을 비 같이 내려 그들을 태워버릴 것입니다(9b). 그 때 그들을 미혹했던 마귀는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질 것인데, 그곳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던져진 곳입니다. 그들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을 것입니다(10). 그들은 서로 비난하고 저주하고 공격하기를 영원히 반복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거기로부터 빠져나올 희망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

11-15절에는 또 다른 심판이 있습니다. 요한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11a). 크고 흰 보좌는 심판의 주 하나님의 순결과 거룩하심을 나타냅니다(4:2-3; 단 7:9). 이곳은 법정으로서, 큰 자나 작은 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부활의 몸이지만 영광스러운 몸이 아니라 좀비 같은 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부활, 즉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28-29절은 말합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곳에는 죄인들이 거하거나 숨을 장소가 없는데, 이는 하늘과 땅이 사라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11b).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그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2; 롬 2:6). 그 책에는 그들이 인생을 살면서 생각한 것, 말한 것, 행한 것들이 모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고, 아무도 진실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변명할 수 없습니다. 바다와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줍니다(13). 마지막 원수들, 곧 사망과 음부는 불못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14; 고전 15:26).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져서 영원히 심판을 받습니다(15).

본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통치와 사탄의 지배 사이의 큰 대조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통치하느냐 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생과 사의 문제요, 행불행의 문제입니다. 사탄의 통치는 사람들을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고 사악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주변 여러 곳에서 사탄의 통치의 징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2020년 5월 25일), 한 백인 미니엘라폴리스의 경찰관이 작은 범죄를 저지른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조오지 플로이드를 체포하였습니다. 그 경찰관은 플로이드 씨에게 수갑을 채우고 땅에 엎드리게 한 후 자신의 몸무게를 이용하여 그의 목을 무릎으로 누름으로써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귀한 인간의 생명을 완전히 멸시하는 것을 보여주는 비정한 살인이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인종차별의 사회구조적인 부당함을 또 다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분노하였고 심각한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근저에 인종차별이라는 죄를 통해 사탄이 역사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와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우리는 사탄의 세력을 막아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복음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역사한 아름다운 실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트 밀러드는 아버지로부터 폭력적인 학대를 받은 피해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가가 되고자 하는 깨어진 꿈으로 인한 심한 좌절감 때문에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바트가 음악가가 되는 꿈을 추구하는데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한번은 바트가 심하게 폭행을 당하여 죽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바트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가출하였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말기 암을 진단 받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통치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트가 돌아오기를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를 응답하셨습니다. 바트는 고통스러운 갈등 끝에 아버지를 용서했고, 그들은 진정으로 화해했습니다. 아버지는 죽기 바로 전에 바트에게 일생 동안 모은 돈을 주면서 그가 음악 분야의 경력을 쌓아나가는데 사용하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바트는 말했습니다. “복음이 아버지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복음은 누구나 변화시킬 수 있다. 아버지는 괴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나의 좋은 친구이며,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바트는 영감을 받아 “I can only imagine”이라는 복음송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아버지께서 바쳤습니다. 이 노래는 250만부가 팔렸습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낳습니다(갈 5:22-23).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오늘날과 같이 소란한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사람과 가족들과 공동체와 도시와 나라와 전 세계를 통치하시도록 기도합시다.

  1.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making-sense-chaos/202005/why-the-increase-in-domestic-violence-during-covid-19

  2. See the manuscript, Triumph by the Blood of the Lamb, on 12:1-13:18 for a fuller description.

  3. Poythress, Vern S., The Returning King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00), pp.177-179.

  4. Gregg, Steve, Revelation: Four Views, Revised and Updated (Nashville, TN: Thomas Nelson, Inc., 2013) p. 515.

  5.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08), p. 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