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 View


출애굽기 25-31장, 35-40장(내가 그들 중에 거하리라)

by Mark Yang   08/14/2019   Exodus

Message


출애굽기 제 10 강


내가 그들 중에 거하리라


말씀: 출애굽기 25-31장, 35-40장
요절: 출애굽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우리는 지난 주일 Ⅱ부 1강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신 크신 뜻과 거룩한 계명과 율례를 주신 것을 공부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막을 짓도록 하십니다. 오늘 공부할 성막과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전공 필수 과목입니다. 그러나 이를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부 내용이 주로 성막의 여러 기구들과 제사장이 입는 옷의 모양과 크기와 색깔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중심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할 처소로서 장차 성육신하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이 성막이 후에 성전이 되었고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이 가운데 숨은 놀라운 영적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Ⅰ. 성막(25-27장)

(i) 성막의 여러 기구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5:8,9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이 말씀 후에 성막과 그 기구의 크기와 모양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①궤(25:10-16)
궤는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길이가 2.5규빗(약1.45m), 넓이와 높이는 각각 1.5규빗(약75cm) 입니다. 정금으로 궤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체를 두릅니다. 금고리 4개를 만들어 네 발에 달고 채를 만들어 고리에 꿴대로 고정시킵니다. 채도 조각목으로 만들고 역시 금으로 쌉니다.
②속죄소(25:17-21)
속죄소는 정금으로 만드는데 길이가 2.5규빗, 넓이가 1.5규빗입니다. 속죄소 위에는 천사 모양의 두 그룹을 만들어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고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로 향하게 합니다. 이는 천사들이 인간의 속죄를 시중들고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속죄소는 궤 위에 얹고 십계명이 새겨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습니다.
③상(The Table)(25:25-30)
상도 역시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길이 2규빗, 넓이 1규빗, 높이 1.5규빗입니다.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릅니다. 이 상위에는 12개의 진설병을 두어 항상 있게 합니다. 진설병은 누룩 없는 거룩한 떡입니다. 신약에 와서 이 떡은 예수님으로 상징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35).
④등대(25:31-40, 27:20,21)
등대도 정금으로 만듭니다. 등대 곁에서 가지 여섯을 나오게 하되 서로 양편에서 나오게 합니다. 각 가지에는 등잔을 얹어 증거궤 앞 휘장 밖에 둡니다. 등불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켜 둡니다. 이로서 성막에는 항상 빛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조금도 어두움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성막 밖은 어두울지라도 하나님이 계신 성막 안에는 항상 밝은 빛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을 밝혀 주는 빛이 되십니다(요한8:12).
⑤성막(26장)
성막은 궤와 상과 등과 등대를 두기 위한 장소입니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집니다. 성소에는 상과 등대와 향단이 놓여지고 지성소에는 증거궤를 둔 궤와 속죄소가 놓여집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것은 장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⑥단(27:1-8)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길이가 5규빗(약2.5m)., 넓이가 5규빗, 높이가 3규빗(약1.5m) 입니다. 단은 놋으로 쌉니다. 단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 짐승을 잡아 희생 제물로 드리는 곳입니다. 제사장은 단에서 희생 제물을 잡아 그 피는 단 사면에 뿌리고 고기는 단 위에 불태워 그 향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단의 위치는 성막의 뜰 입구와 성막 사이입니다. 뉘든지 성막으로 가려면 이 단을 거쳐야 합니다. 죄악된 인생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단 위에 희생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레위기 17: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피를 흘리며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사람 대신 점없고 흠없는 양이나 염소 등 짐승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사 자신의 몸을 희생하심으로 우리는 그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⑦성막 뜰(27:9-19)
길이 100규빗, 폭 50규빗, 높이 5규빗의 세마포 포장으로 성막 주위를 둘러칩니다.
⑧향단(30:1-10)
향단은 조각목으로 만들되 길이와 넓이가 각각 1규빗, 높이가 2규빗이 되게 하고 이를 정금으로 쌉니다. 향단은 증거궤 앞 휘장 밖에 둡니다. 제사장이 아침과 저녁 등불을 끄고 켤 때마다 향기로 향을 사릅니다. 이 향은 성도의 기도를 의미합니다(계5:8).
⑨물두멍(30:17-21)
물두멍은 놋으로 만드는데 그 크기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물을 담아 둡니다. 제사장이 성막으로 가기 전이나 단에서 번제를 드릴 때 반드시 손발을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기를 면합니다. 이는 제사장이 세상에서 묻어 온 죄의 때를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성막의 여러 기구들을 살펴볼 때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기구들은 대부분 금으로 입혔기 때문에 황금의 집이라고 할 만큼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아름답고 영화롭습니다. 금은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을 나타냅니다. 이와 같이 성막은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토록 황금과 같이 빛납니다.

둘째로, 모두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성막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운반할 수 있도록 채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고정된 분이 아니심을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항상 움직여야 했습니다.

셋째로, 이 성막은 하나님이 보이신 식양대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신 것입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백성들이 임의로 생각하여 만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크기와 모양과 색깔까지 다 지시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 성막은 하나님께서 거할 장소이며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길을 열어 놓으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이신 길을 따라 나아가야 함을 배웁니다. 절대로 자기 나름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불교나 마호멧교나 무엇을 믿든지 착실히만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길이지 하나님이 보이신 길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보이신 성막만이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성막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은 성막이 되셔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요한2:21). 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14: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ⅱ)성소와 지성소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집니다. 이를 구별하는 것이 휘장입니다. 지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휘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들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과 장벽이 생겼습니다. 이 장벽은 죄의 장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운명하심과 동시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짐으로 이 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막15:38). 이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The new and living way)입니다(히10:19,20).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성소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증거궤와 속죄소가 있습니다. 25:22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우리는 휘장을 지나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거기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인간들과의 만남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참된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또 사람들의 말은 때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앗아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이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영혼이 소생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 생명과 기쁨을 줍니다.

(ⅲ)성막을 짓는 목적(25:8)
25:8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봅시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소를 짓게 하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높고 영화로운 분이십니다. 또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친히 낮아지셔서 냄새나고 추한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신 것은 그 자체가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과 멀리 떨어져 지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거하셔서 동고동락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29:45, 46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 하나님께서 나중에는 친히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요한1:14). 요한은 이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볼 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거하사 나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실 성령의 전이 됩니다(고전6:19). 그러므로 우리의 몸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도록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Ⅱ. 제사장 직분(28-30장)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제사장 직분은 어떠합니까?

(ⅰ)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직분
28:1b, 2절을 읽어 보십시오.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된 것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방적이고도 특별한 은총으로 된 것입니다. 제사장이 입는 옷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여졌습니다. 이는 아름답고 화려한 색깔입니다. 또 그 옷에는 아름다운 각종 보석을 달았으며 정금과 금사실과 금고리로 장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제사장처럼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는 없습니다. 이는 제사장 직분이 가장 영화롭고 아름다운 것임을 말해 줍니다. 또 하나님은 영화롭고 아름다운 분이심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평소의 옷과 구별된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됩니다.

(ⅱ)중보역할
제사장의 두 어깨에는 견장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 가슴에는 판결 흉패를 붙이는데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열두 보석이 있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언제나 백성을 어깨에 메고 또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그 가슴에 새기고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제사장은 백성의 중보자임을 말해 줍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에게 죄를 책임 지우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대제사장은 하나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분은 대제사장 한 분 뿐입니다. 대제사장도 1년 1차씩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대제사장은 장차 올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9:11, 12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구약의 대제사장은 자신도 죄가 있으므로 백성들의 죄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해 속죄해야 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되시기에 합당합니다. 또 구약에서 속죄의 제사는 매년 한 번씩밖에 드릴 수 없었습니다. 또 짐승의 피를 흘렸으므로 사람들의 죄를 온전히 해결해 주지 못하고 일시적인 해결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사 자신을 단번에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드린 한 번의 제사는 우리의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영원한 제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번거로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또 구약의 제사장은 죽기 때문에 자주 갈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히7:24,25). 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딤전2:5).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벧전2:9). 그러므로 우리는 양들의 죄를 담당하며 이 시대의 죄를 담당합니다. 양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지어야 할 성막과 제사장의 직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Ⅲ. 명하신 대로 행하는 모세와 백성들(35-40장)

35:1-36:7절을 보면 백성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그들은 성막에 필요한 재료들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했습니다. 그들이 드린 것을 보면 가슴핀, 귀고리, 가락지, 목걸이, 청색, 홍색, 자색실, 염소털,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 조각목, 족장들은 보석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첫째, 자기에게 있는 것을 드렸습니다. 둘째,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습니다. 본문에 마음이 감동된 자, 자원하는 자, 즐거이 드렸다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36:5절에 보면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쓰기에 남음이 있어 모세가 이를 정지시킬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억지로, 의무적으로 드리지 아니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저희들이 작년에 하나님의 전을 지을 때 모든 형제 자매님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드린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일꾼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바쳤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마음이 지혜로운 자들은 자신들의 기술과 재능을 드렸습니다.

이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짓는 것을 통해 귀중한 진리를 배웁니다.
첫째는, 자율성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성막을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 기쁜 마음으로 이 역사를 섬겼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바쳐 섬겼습니다. 눈치보거나 적당히 하지 않았습니다. 인상을 쓰며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헌금하는데 인색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역사를 감당했습니다. 여기에 천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막을 짓는 일이야말로 조금도 아까워 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 역사를 감당하는데 있어서도 이런 자율성을 가지고 감당할 때 기쁨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둘째, 순종과 합심입니다.
39:1,5,7,26,29,31,32,42,4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또 40:16,19,21,23,25,27,29,32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다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는 지도자와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합심 역사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들의 순종과 합심을 통해 마침내 성막이 세워졌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 주셨습니까? 40:34,35절을 봅시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성막에 거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그들의 인도자가 되사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나안으로 거룩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것과 같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씩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래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조급한 마음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한 걸음 한 걸음씩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