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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Ⅱ 부:마가복음 16:1-20(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by Mark Yang   08/16/2019   Mark

Message


마가복음 Ⅱ 부 제 15 강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 : 마가복음 16:1-20
요절 : 마가복음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고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구원받았으니 이것으로 다 끝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선교 사명을 주십니다. 이 사명은 우리가 일생 감당해야 할 위대한 사명입니다. 오늘날은 비전이 없는 시대입니다. 비전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은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이 시간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부활의 생명력을 덧입고 불타는 세계 선교 환상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부활하신 예수님 (1-13)

1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이른 새벽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지 사흘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갔습니다. 이른 새벽 무덤을 찾는 여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여인들은 예수님께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고 온 진심을 바쳐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여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삶의 희망이요 좌표였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처절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슬픔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여인들은 더 이상의 생의 희망도 의욕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체에 마지막으로 향품이라도 발라 드리고자 이른 새벽 어둠을 뚫고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여인들의 충성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무덤으로 가는 여인들에게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당시 유대인의 무덤은 굴로 만들고 그 입구는 돌로 막았기 때문에 여인들을 위해 돌을 굴려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마태 타이거 목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들은 어디 숨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슬픔과 걱정이 오가는 중에 여인들은 어느덧 무덤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돌이 이미 저만치 굴려져 있었습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았습니다. 여인들은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한 걸음 한 걸음 무덤 속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응당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고 대신에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은 청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너무나 놀라 소리쳤습니다. “에그머니나!” 청년은 놀란 여인들에게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He has risen!” 이는 실로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공자도, 석가도, 아인쉬타인 할아버지도 다 죽었습니다. B.C 4세기 황금 마차를 타고 세계를 휘어잡던 알렉산더나 시저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 나셨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를 뒤바꿔 놓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6b절을 보십시오. 천사는 부활의 증거로 예수님을 두었던 빈 무덤을 보여 주었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 줍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수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 총독이던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쓴 『빌라도 보고서』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에는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박멸코자 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목을 내놓고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마침내 순교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 기간에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후에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었습니다. 무엇이 이들의 인생을 이렇게 변화시킨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 외에도 요한, 안드레, 빌립, 도마, 폴리갑, 어기스틴 등 역사상 수많은 부활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의 부활이 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이요, 예수님께서도 생전에 예언한 데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 죄사함의 확증을 줍니다. 인간은 본래 에덴 동산에서 살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낙원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성을 파괴시키고 인간의 인격과 영혼을 파괴시켰습니다. 또 죄의 결과 죽음이 온 인류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인생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고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이 사실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을 확증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가장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궁극적인 승리를 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여 인생의 공든 탑을 쌓습니다. 그러나 죽음 때문에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죽음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패배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승리의 인생을 살려면 반드시 죽음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승리를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는 부활의 능력을 주십니다. 과거에는 두려움과 운명주의, 패배주의에 시달리던 자들이 이제는 승리감에 충만한 확신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패배하는 자 같으나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외쳤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57).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인생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게 된다는 소망을 줍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편하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명예와 권세를 얻어 존경받으며 남을 지배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은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결국은 죽음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세상의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이 소망은 하늘나라의 소망이요 영원한 산 소망입니다. 부활의 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자신있게 헌신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심을 제자들에게 알리라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부활 후의 방향으로 제시한 말씀입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여인들은 심히 놀라 떨며 무덤에서 나와 치마를 붙들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며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너무 무서워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부활은 이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전에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떠나지 않고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마리아야”하시며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심령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마리아는 달려가서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감격스런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나셨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그러나 제자들은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너무 충격을 받아 헛개비를 보고 헛소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매들의 증거를 받아들이자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후에 실의에 빠져 시골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기초로 부활 신앙을 심으셨습니다. 두 제자는 즉시 예루살렘에 달려가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2진 제자들이 전하는 것이라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번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이처럼 두번씩이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아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너무 큰 슬픔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믿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증거와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므로 믿고자 하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증거를 보여 주어도 믿지 않고자 작정한 사람은 믿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것은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은 완악한 마음을 회개하고 겸손히 부활의 증거를 영접할 때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그 인생이 승리의 인생을 사느냐 패배의 인생을 사느냐, 사느냐 죽느냐가 달려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Ⅱ. 세계 선교 사명을 주신 예수님 (14-20)

1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님은 열 한 제자가 함께 모여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울다가 지쳐 이제는 울 기력도 없었습니다. 또 배가 고팠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울기 위해 밥을 물에 말아 억지로라도 한 술 두 술 먹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겐 따뜻한 동정과 위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이때 나타나셔서 음식 먹은 것이 체할 정도로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책망하심으로 제자들의 불신과 완악한 마음을 깨시고 부활 신앙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세계 선교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부활 신앙을 심으신 후 세계 선교 사명을 주신 것은 부활 신앙이 없이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증거해야 할 내용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복음 증거의 대상이 온 천하 만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 천하 만민의 상태가 어떠한가 잘 말해 줍니다. 천하 만민은 누구나가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잘생긴 자나 못생긴 자나, 검둥이나 흰둥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복음을 필요로 하고 복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복음만이 천하 만민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태어나서 한번도 유대밖에 나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꿈꾸는 편협한 유다이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원수 나라인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편협한 유다이즘을 깨고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은 범세계적이요 역사적입니다.

둘째, 복음의 절대성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되,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고 믿지 않는 것은 자유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후에는 정죄와 심판을 받습니다. 그 영혼이 파멸하게 됩니다. 여기에 복음의 절대성이 있습니다. 복음은 생명과 관계된 것이므로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하며 가장 우선적으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비전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제자들의 어깨에 온 세계를 맡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비전이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현재 형편에 관계없이 그들을 보실 때 앞으로 세계를 감당할 일꾼으로 보셨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바꿀 역사 창조자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통해 온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시는 비전에 불타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전대로 이들은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위대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이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구멍가게를 한 사람은 아무리 잘 났어도 구멍가게 주인입니다. 노가다는 아무리 일 잘하고 힘이 세도 노가다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세계 선교 사명을 감당할 때 그 인생이 위대해 집니다. 아무리 쫀쫀하고 편협한 자라 할지라도 세계 선교 사명을 감당할 때 생각하는 스케일도 커지고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집니다. 세계를 품고 기도하며 세계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은 권면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명령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에 반드시 감당해야 합니다. 이 세계 선교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일 뿐 아니라 마지막 간절한 소망입니다. 우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수많은 영혼들이 죽습니다. 세계 선교는 가장 우선적으로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 갈 때 앰뷸런스는 사이렌을 켜고 교통법규를 무시한 채 가장 먼저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이와 같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러 가는 선교사는 가장 먼저 파송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 선교가 좋은 줄은 알지만 막상 내가 감당코자 할 때 두렵고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는 당장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예수님을 위해 무조건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 선교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계 선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계 선교를 마음으로 영접하고 순종할 때 지금은 부족하고 쓸모 없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우리를 구속 역사에 귀히 쓰십니다. 어떤 분은 당장에 선교사로 갈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10년 후에 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는 못가더라도 그 아들이나 손자가 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 선교 사명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능력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영적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가만있던 귀신들도 선교 사명을 영접한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벌벌 떱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방언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원시적인 아프리카 오지에 갈지라도 쉽게 그들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셋째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아프리카의 개척자 David Livingstone은 원주민과 사막의 위험과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으로 인해 수없이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사 그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다 마치시고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두루 나가 복음을 전파할 때 함께 하시고 도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계 선교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를 통해 역사를 창조하십니다. 18세기말 William Currey는 세계 선교 사명을 영접하고 단순히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순종을 받으시고 그를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우리 UBF 모임을 크게 쓰시는 이유도 세계 선교 사명을 단순히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20세기 말 한국을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고 한국 지성인들을 세계사의 주역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일본은 온 세계에 카세트를, 미국은 온 세계에 농산물을 팔고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 세계에 복음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를 살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계 선교입니다. 우리 나라를 살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세계 선교입니다. 내가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세계 선교 사명입니다. 비전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문제는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전이 없을 때 젊은이들은 용기와 패기와 꿈을 잃고 무기력하고 소시민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세계 선교 비전을 덧입을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힘이 생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주신 세계 선교 사명을 영접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