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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25(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by Mark Yang   08/14/2019   Genesis

Message


창세기 제 1 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1:1-25
요절: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시작의 기록’이란 뜻으로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인류의 기원, 죄의 기원, 복음의 기원, 문화.언어의 기원, 민족의 기원 등 모든 것의 기원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 안에는 모든 진리가 배종(胚種)으로 숨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구씨 안에 장차 살구가 될 요소가 숨어 있는 것과 같이, 앞으로 나타날 모든 계시의 뿌리가 창세기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창세기 3:15절에 원시복음으로 나타나고, 창12:2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시편과 선지자를 통해 더 선명한 계시가 나타나다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복음이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의 기원 문제와 진리의 근본을 알 수 없게 됩니다. 볼링거 박사는 “창세기는 모든 책의 모판이다. 모든 부분을 이해하는데 근본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공부를 통해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인생 기초를 쌓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창세기 제 1장에서는
(a) 천지 만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b)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Ⅰ. 천지 창조(1:1)

성경 첫머리에 나오는 창세기 1:1절은 놀라운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을 선포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심을 말해 줍니다. 여기서 ‘태초’는 ‘맨 처음’으로서 천지를 창조한 시간의 출발점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1절에 나타난 ‘태초’는 천지창조 이전의 상태, 즉, 영원을 의미합니다. ‘천지’에서 ‘천’은 히브리어로 “하샘마임”( =the heavensaa)으로 하늘들 즉 광대한 우주 공간을 가리킵니다. ‘지’는 지구(the earth)를 말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원초적인 창조를 말합니다. 여기서 창조는 “바라( =to creat)로서 “아사”( =to make) 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아사”는 기존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바라”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무(無)로부터의 창조는 바벨론 신화나 플라톤의 철학이나 중국의 신화 등 다른 어떤 곳에도 찾아볼 수 없는 성경에만 있는 독특한 것입니다. “바라”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볼 때 천지는 우연히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초지능의 힘과 무한한 지혜로 창조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고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또 그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끊임없이 사고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갖가지 신화가 생겨나고, 또 자연 발생설, 폭발설, 진화론과 같은 이론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점점 발달하여 우주의 신비가 벗겨질수록 진화론의 허구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확실한 과학적 진리로써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현대 과학의 기본 법칙은 창조와 통합의 법칙이 아니라 보존과 타락의 법칙입니다. 여기에는 열역학 제 1법칙과 제 2법칙이 있습니다. 열역학 제 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에너지가 형태는 변할 수 있으나 창조되거나 파멸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창조는 과거의 사건으로서 현재 창조 중에 있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열역학 제 2법칙은 모든 물질적 체제는 그대로 두면 질서를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건물은 낡게 되고 유기체는 늙어 죽게 됩니다. 외부 세계로부터 에너지가 투입될 때만이 질서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우주는 태엽이 풀려지고 있는 시계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 예로 지구의 자력은 100년마다 5%씩 감소하고 있으며, 태양은 매초당 약 400만톤씩 그 무게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에 최초에 강력한 에너지가 투입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주의 태엽이 풀어지고 있다면 최초로 이를 감은 창조적 초지능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인쉬타인은 이를 가리켜 “이해를 초월하는 무한한 우주 안에 나타난 무한한 초이성의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적 물리학자 Kelvin경은 “충분히, 그리고 깊이 생각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과학적인 입장에서 아니 믿지 못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논쟁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 의심할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이듯이,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살기 위해 고의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자들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시14:1).

그러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을 물, 불, 공기 또는 궁극적인 실체, 제 1원인자 등 여러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격이 없는 무기물질이나 또는 논리의 귀결상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념상의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천지를 창조한 인격적인 실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1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자존자, 근원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존재케 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시는 원인자가 되십니다. 이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분으로서 항상 현재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로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영원토록 계실 분이십니다(계1:8). 하나님의 본질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인간의 사고로 이해할 수도 없는 초월적 신비에 속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실 때만이 가능합니다(엡1:17).

둘째로,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으로서 절대 주권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만들 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고 또 그 만든 물건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만든 사람의 권리입니다. 이와 같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창조자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권리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속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때도 사람을 택하시고 주권적으로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케 하실 자는 강퍅케 하십니다(롬9:15-18).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그 뜻대로 창조하신 절대 주권자가 되시기 때문에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께 불만을 품거나 대들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20,2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하나님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섬길 분이십니다. 우리가 창1:1절의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영접하지 아니할 때 우리의 삶은 창1:2절에 있는 대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영접할 때 내 인생에는 분명한 질서가 생기고 신비스러운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필연적인 뜻 가운데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란 단어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지으실 때 완벽한 계획 하에 필연적인 뜻 가운데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운명이나 허무, 우연이 없습니다. 들판에 피는 꽃 한 송이나 풀 한 포기에도 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하나님의 깊은 뜻이 없겠습니까? 이 세상이 우연히 생기고, 나도 우연히 생겨났다고 생각할 때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허무해집니다. 우연히 부모님들이 만나서 나를 안 낳으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실수하여 우연히 나를 낳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 깊은 허무주의의 심연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또 허무주의는 쾌락주의를 낳아 인생을 되는 대로 살게 됩니다. 이처럼 ‘우연’이 우리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치명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필연적인 뜻 가운데서 나를 포함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영접할 때 그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모든 삼라만상이 뜻이 있고 내 인생도 절대적인 뜻이 있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더 이상 허무나 운명에 시달리지 않고 매사에 감사함으로 확신에 찬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어떤 역경에 부딪히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요셉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뜻있는 섭리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실로 흔들릴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철학이나 과학 등 모든 것의 기초가 됩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에 기초하여 인생의 집을 지을 때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인생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Ⅱ. 만물 창조 (1:2-25)

2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창조된 땅의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혼돈이란 일정한 형태가 없이 거칠고 무질서한 상태를 말합니다. 공허란 텅빈 상태로서 생명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흑암은 빛이 전혀 없는 캄캄한 상태를 말합니다. 땅은 물로 뒤덮여져 있었습니다. 지구는 모양도 없고, 생명도 없고, 빛도 없는 상태에서 무서운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운행하다’의 뜻은 ‘배회하다, 진동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하나님의 영이 물로 뒤덮인 지구 위를 배회하고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신32:11,사31:5). 또한 암탉이 알을 품고 부르르 떨면서 병아리를 까는 것처럼, 지구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사를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은 생명의 원인자가 되십니다. 창세기 2:7절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신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또한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 거듭나는 영적 생명의 창조도 성령의 역사입니다(요한3:5).

3절부터 창조의 역사는 구체적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깊은 흑암 가운데서 찬란한 빛이 생겨났습니다. 이 빛은 넷째날 창조한 발광채와는 달리 모든 생명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에너지의 근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첫째날 빛을 만드심으로 역사 창조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둘째날에는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궁창은 히브리어로 ‘라키아’( )로서 ‘확장’ 또는 ‘얇게 펼침’을 뜻하는데 우리말로는 ‘공간, 공기’ 혹은 ‘대기’의 뜻입니다. 궁창에는 모든 생명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으며, 또 태양에서 오는
살인광선을 막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어 모든 생명체를 보호합니다. 또한 매일 초속 30마일로 지구 위에 떨어지는 2천만 개의 운석들을 산화시켜 버립니다. 이 대기권이 없다면 생명체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날에는 땅과 바다를 나누시고 땅에는 각종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과목으로 아름답게 단장하셨습니다. 넷째 날에는 신랑과 같이 힘찬 태양과 수줍은 새색시와 같은 달, 밤하늘을 총총히 수놓은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이로 인해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새와 물고기를 그 종류대로 만드심으로 하늘과 바다를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육축과 각종 곤충류와 짐승들을 만드시고 최후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혼돈의 세계에서 질서의 세계로, 공허의 세계에서 충만의 세계로, 흑암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 역사를 하실 때 무계획적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완벽한 설계 아래 아름답고 조화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드시고 점점 세부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또 무생물→생물→하등동물→고등동물 순서로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도록 조화있게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세상은 궁극적으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사45:18). 달에는 공기도 없고 비옥한 땅도 없어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온도도 125℃-160℃로서 온도차가 심합니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이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Ⅲ. 창조의 목적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4, 10, 12, 18, 21, 25절에는 하나님께서 각 날에 창조하실 때마다 하신 중간 평가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로, 세상은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과 육신은 악의 근원이기 때문에 세상은 악하게 창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인간의 죄로 인해 더러워진 것이지 본래는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되었습니다. 딤전 4:4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아침이면 동편 하늘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 밤이면 밤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듯 초연하게 비추이는 달, 금방 이라도 쏟아질 듯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밤하늘의 별들, 파랗고 높은 하늘, 노래하는 시냇물, 우뚝 솟은 산과 푸른 초원, 산야를 배회하는 들짐승들, 지저귀는 새,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롭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계신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이 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추하고 슬프고 운명적이고 살기 지겨운 세상이 됩니다.

둘째는, 피조물의 존재 목적입니다. 피조물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시편 19:1절은 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산의 바위는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냅니다. 새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고 들의 백합화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이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Ⅳ.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a) 빛되신 하나님
3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빛이 있으라!” 이는 지상에 최초로 울려 퍼진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자 어두움을 가르고 찬연한 빛이 생겨났습니다. 이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서 약 30만 종류가 있습니다. 빛은 에너지를 나타냅니다. 빛은 생명을 창조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물리칩니다. 빛은 인도자가 됩니다. 빛은 따스함을 줍니다. 빛은 희망을 줍니다. 빛은 아름다움을 가져다 줍니다. 이 빛을 만드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또 시104:2절은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셨다”고 합니다. 딤전 6:16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안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에너지의 근원이십니다. 아인쉬타인은 E=mc2(에너지=질량×광속제곱) 공식으로 에너지와 물질은 서로 바꾸어질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무한한 힘을 소유하신 분으로서 보이는 이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심을 말해 줍니다.

또한 빛되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모든 식물은 빛으로 광합성 작용을 함으로서 생명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숨을 쉬는 동물이나 인간도 빛이 없이는 생명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 생명도 빛되신 하나님이 있을 때만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또한 빛되신 하나님은 어두움을 물리쳐 주십니다. 어두움은 하나의 세력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미움과 시기와 욕심과 음란과 같은 죄와 불평 불만과 부정적이고 슬픈 마음과 운명주의와 같은 것들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의 세력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죄의 세력은 강하여서 우리의 힘과 의지로 물리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남을 미워하고 시기해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 그 세력에 붙잡혀서 원치 않게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빛이 비추일 때 내 마음에 역사하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고 생명의 빛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8:1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도 바울은 고후 4:6절에서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하나님은 죄로 어두워진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입니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과 생명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b) 권능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무엇으로 창조하셨습니까? 1장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 (3, 6, 9, 11, 14, 20, 24)란 말과 “그대로 되니라” (7, 9, 11, 15, 24)는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지으셨음을 말해 줍니다. 히11: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에는 인격이 있습니다. 요한1:1-3절은 이 말씀이 바로 창조주 예수님임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의 권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를 질서와 충만과 빛의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히4:12) 세상의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몹쓸 자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새 사람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Elohim( )으로서 권능자란 뜻입니다. 1장에서만 30회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17:1)고 하셨습니다. 또 경수가 끊어져서 아이를 낳지 못해 체념하고 쓴웃음을 짓고 있는 사라에게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창18:1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초월한 기적의 역사가 많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고 마른 막대기에서 꽃이 핍니다. 또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고 38년 된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납니다. 우리는 이런 기사를 읽을 때 소설에 나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같이 들리고 우리의 이성은 이를 믿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 한 마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을 믿을 때 이 모든 것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능히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또 장차 우리 육신을 썩지 않고, 강하고, 신령하고, 영화로운 형체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연약함과 한계를 극복하고 강하고 능력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c)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
만물이 창조되기 전 땅의 상태는 혼돈(Chaos)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 역사를 해 나가심에 따라 이 세계가 질서(Cosmos)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세계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가 있습니다. 세계는 이 창조의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태양 주위를 돌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들도 창조 이래 한 번도 서로 충돌 없이 그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질서를 어기고 그 궤도를 이탈하게 되면 우주에는 대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주는 창조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습니다. 광대한 우주의 세계 뿐만 아니라 미세한 원자의 세계에서도 양자와 중성자들이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질서를 자연법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으로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고 계십니다.(히1:3) 이 자연법칙을 어길 때 생명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조화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각 날에 창조하실 때마다 기뻐하시고 모든 것을 다 만드신 후에는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아름다운 예술가이십니다. 이 아름다움은 모든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신 데서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단조롭게 만들지 아니하시고 다양하고도 colorful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셋째날 만드신 채소와 과목을 보십시오. 시장에 가면 배추, 무, 상추, 시금치, 미나리, 부추, 오이, 당근 등의 채소가 주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봄이면 자두, 앵두, 딸기, 여름이면 수박, 참외, 버찌, 살구, 가을이면 사과, 배, 포도, 복숭아, 감, 밤, 무화과, 대추, 또 열대지방에서만 나는 바나나, 파인애플, 파파야, 망고, 망고만 해도 50여종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싱그러운 과일들이 철따라 우리 입을 즐겁게 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꽃의 세계를 보십시오. 봄에 피는 라일락, 벚꽃, 철쭉, 튜울립, 함박 웃는 함박꽃, 희한한 히야신스, 오 내 사랑 목련, 여름에 피는 봉숭아, 채송화, 해당화, 나팔을 잘 부는 나팔꽃, 늘 해를 사모하는 해바라기, 가을에 피는 하늘하늘 코스모스, 맨들 맨들 맨드라미, 수수한 국화, 페튜니아, 달맞이꽃, 궁궁이, 고들빼기, 겨울에만 피는 동백꽃, 매화, 복수초, 등 실로 그 종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희귀한 꽃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습니다. 선인장만 해도 거인 선인장, 공작 선인장, 개발 선인장, 쥐꼬리 선인장, 부채 선인장 등 4천 종류가 있습니다.

또한 다섯째 날에 만드신 새와 물고기 종류를 봅시다. 봄이면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지저귀는 종달새, 부부 싸움하는 자들이 배워야 할 잉꼬부부, 쉴 새없이 재잘거리는 참새, 하늘의 왕자 독수리, 고고한 학, 슬피 우는 뻐꾸기, 연미복의 멋쟁이 신사 펭귄, 부리가 긴 딱새, 휘파람 잘 부는 휘파람새, diet고기 칠면조, 시속 145km로 달리는 타조, 말똥가리, 흰털발제비, 붉은 가슴 물새, 제주 오목눈이, 두견이, 소쩍새, 개똥지빠귀, 물총새, 따오기, 해오라기 등 수 많은 종류의 새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밥상에 잘 오르는 고등어, 조기, 갈치,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 작지만 뼈대가 있는 멸치, 5공화국 때 숨어 지낸 문어, 등이 굽은 새우, 바다의 잉꼬 해마, 식인어 피라니아, 옆으로만 가는 게, 조그만 일에도 잘 놀래는 놀래기 고기, 세상 살기 싫다고 항상 거꾸로만 사는 슈림프 피쉬, 모래 바닥에 사는 주둥치, 짱뚱어, 넙치, 가자미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여섯째 날에 만드신 곤충과 짐승 종류는 어떠합니까? 일 잘하는 개미, 점 잘치는 무당벌레, 딱정벌레, 시원한 매미, 우리를 귀찮게 하는 파리, 모기, 바퀴벌레, 나비만 해도 15,000 종류, 개미만 해도 5천여 종이 있다고 합니다. 또 밀림의 왕자 호랑이, 초원의 왕 사자, 미련한 곰, 충성스런 게, 베드로를 슬프게 한 닭, 정의의 투사 코뿔소, 우둔한 방랑자 하마 등 얼마나 많은 종류의 짐승이 있습니까? 오늘날까지 발견된 것만 해도 식물은 23만종, 동물은 100만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종류들은 모두 다 모양, 크기, 색깔, 결, 향기 등 각기 독특한 개성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colorful하게 창조하심으로 세상을 아름답고 조화있게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2)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최고의 예술가이시며 그 지혜가 무궁무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웅장하시고 또 섬세하시고 다양하시고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실로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드립니다.

결론: 하나님은 그 뜻대로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이 창조의 주권을 영접할 때 인생의 견고한 기초가 생기고 삶에는 질서가 생기고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에 기초하여 견고한 인생 기초를 쌓고 필연적인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