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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5:19-28:5(이삭을 축복하신 하나님)

by Mark Yang   08/14/2019   Genesis

Message


창세기 제 13 강


이삭을 축복하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25:19-28:5
요절: 창세기 26:3a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우리는 지난 강의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종의 충성심을 통해 이삭의 가정을 세우시고, 축복의 역사를 계승할 그릇을 형성하셨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의 3대 조상 중의 하나인 이삭이 나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개척한 믿음의 터전 위에서 좋은 믿음의 영향력을 받고 자랐기 때문인지 그의 생애는 별문제가 없이 순탄하기만 합니다. 그는 들에 나가서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사냥한 고기를 먹기를 좋아하고, 아내 리브가를 지극히 사랑하는 애처가였습니다. 그는 아비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축복을 누리며 평안히 지내다가 야곱에게 축복을 물려주는 것으로 일생을 마칩니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게 큰 일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잘 감당하고 이를 잘 계승한 위대한 내면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우리는 이삭을 통해 축복을 감당하는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이삭의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잔잔한 은혜의 강가로 인도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배웁니다.

Ⅰ. 기도하는 이삭(25:19-22)

이삭은 40세에 믿음의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 리브가는 시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1, 2년 10년, 15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삭은 독자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계승되어야 했기 때문에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리브가를 가리켜 천만인의 어미라고 하지만 자식 하나 못 낳는데 무슨 천만인의 어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인들은 다산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불임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첩의 자식인 이스마엘은 12아들을 낳았는데 이삭은 오랫동안 자식 하나 없으니 여간 큰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이때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불신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리브가가 아이 낳지 못하는 것을 운명적으로 생각하고 당시 풍습을 좇아 첩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이삭은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그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그가 60세 때 자식을 낳은 것을 보면 근 20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식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축복의 때나 환난의 때나 아내 리브가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위로하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이삭의 위대한 내면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동역자에게 사랑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남편의 권위를 부리고 감정을 부리고 그러다가 안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때리는 졸장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넓고 온유하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대장부였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요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기도의 노동을 감당키 위해 남모르게 얼마나 자신과 싸우고 사단의 고소와 많이 싸웠을까 생각됩니다. 마침내 그는 기도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낙망치 않고 끈질기게 간구하는 그의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리브가로 잉태케 하셨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 아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이 지연될 때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도하는데도 기도가 쉽게 응답이 되지 않을 때 낙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이 지체되는 데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의 노력이나 자연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함에 있습니다. 둘째는, 이삭을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시키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양문제를 통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하십니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였는데 아이들이 뱃속에서 레슬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리브가는 염려가 되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들이 복중에서부터 이렇게 싸우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를 볼 때 리브가는 평소 조그만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기도하는 부부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삭(26:1-15)

아브라함의 때에 첫 흉년이 들었는데 그 땅에 또 흉년이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지중해성 기후와 아열대성 기후 및 사막 기후가 교차되는 곳으로서 1년 강우량이 200mm 안팎입니다. 당시는 관개 시설이 발달되지 않아 가뭄이 들어 비나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이삭은 현실적으로 큰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랄로 갔다가 흉년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약속의 땅을 등지고자 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지만, 이삭에게는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다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과 같이 이삭도 흉년의 때에 그 땅에 거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는 현실적인 아픔이 따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까? 이는 순종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주시기까지 축복하시면서 단 한가지 요구한 것도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 사이에 창조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게 됩니다. 불순종할 때 영적 질서가 파괴되고 축복이 저주로 변하게 됩니다. 순종하는데는 아픔이 따르지만 순종할 때 믿음의 비밀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국에는 순종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순종만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순종에 따르는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고자 하시는 근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볼 때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우리 후손의 하나님이 되사 친히 돌봐 주시고 축복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당대 뿐만 아니라 후손도 축복받는 길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릴에 거하였더니”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삭은 그랄에 거하면서 그 땅의 강포가 두려워서 부전자전으로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 왕이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창으로 내다봄으로써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삭은 불신자인 아비멜렉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특별 보호령을 내리게 하심으로 이삭과 리브가를 그 땅의 강포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모든 위험과 재난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생명싸개 안에 보호해 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으로도 풍성하게 축복하셨습니다. 12,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하시되 흉년 중에서도 100배나 수확을 얻도록 풍성하게 축복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블레셋 사람이 시기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되 화끈하게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때 흉년 중에서도 풍년이 들고, 불황 중에서도 호황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 받을 만한 내면성만 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이 축복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축복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노력과 성실로 신앙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성실은 한계가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못해 정력이 쇠하여져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 동안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근심이 가득찬 소리로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민11;21, 22)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책망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11;23) 결국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불게하여 메추라기를 바다에서부터 몰아 진 사면에 덮히게 하셨습니다(민11;31). 인간의 노력으로 하는 것은 메추라기를 새총이나 공기총으로 한 마리 한 마리 잡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축복은 바람을 불어 메추라기를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 때 일시적으로는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국 축복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축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Ⅲ. 우물 파는 이삭(26:16-36)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이삭이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이 이를 시기하여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습니다. 팔레스틴 지방의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우물은 가장 큰 재산에 속했습니다. 우물을 막는 것은 일종의 선전포고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므로 이삭은 그들과 싸움으로 그 땅을 사수하느냐, 아니면 양보하느냐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결국 전쟁보다 평화를 선택하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였습니다. 이삭은 그들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그 곳에서 우물을 파서 샘 근원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그랄 목자들이 이 우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며 이삭의 목자와 다투었습니다. 이때 이삭은 그 다툼을 인하여 우물 이름을 에섹, 즉 ‘다툼’이라 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서도 우물을 팠는데 또 다투므로 ‘싯나’, 즉 ‘대적함’이라 하고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싸움 한 번 해보지 않고 양보만 하고 이리저리 억울하게 쫓겨다니는 이삭을 보면 꼭 병신같이 보입니다. 이삭은 뼈도 없고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생각됩니다. 그가 힘이 없어 싸우지 못한 것입니까? 그가 크게 강성한 것을 보면 힘이 없기 때문에서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22). 이삭은 흉년 중에서도 믿음으로 살 때 넘치도록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기하고 헐뜯고 싸우는 험한 사회에서 믿음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감당하는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축복을 받고 축복 자체에 얽매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축복의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양보하며 가는 곳마다 열심히 우물 파는 생활을 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축복을 받게 되면 마음이 부요해져서 안일해지거나 교만해져서 쓸모없게 되어 버립니다. 힘써 믿음의 투쟁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감당키 힘든 것은 축복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축복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 축복 받기 전보다 더 비참하게 되어 버립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감당하기 위해 계속해서 우물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가 우물을 양보하고 계속해서 힘들게 우물을 판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암석과 석회질로 되어 있는 땅을 파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이삭은 자신의 감정과 안일과 싸우느라 더 많은 투쟁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그도 사람인 이상 이유없이 우물을 빼앗길 때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이때 감정대로 싸우기는 쉬워도 감정을 억제하고 참는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믿음으로 자신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는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그의 내면은 깊은 우물과 같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온유한 자요 평화의 사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마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자가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을 얻고 번성합니다.

이삭은 대적이 심한 사회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웠지만 그 내면에 두려움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삭에게 나타나 그를 위로하시고 힘주셨습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24)” 그러자 이삭은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우물을 팠습니다.

26-33절에는 이삭의 믿음의 영향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삭이 양보하고 손해 보는 생활만 하는데도 갈수록 번성하자 불신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쫓아낸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 비골을 데리고 이삭과 불가침조약을 맺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이삭에게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이삭의 생활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삭의 삶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산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좋은 영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이삭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주고 평안히 보내었습니다. 그날에 이삭은 또 우물을 파서 샘 근원을 얻었습니다. 이를 볼 때 이삭은 가는 곳마다 계속해서 우물을 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파서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풍성케 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파야 할 우물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물질 문명과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그 어느 시대보다도 풍요를 누리며 편리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면 이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영적 기근이 심한 시대입니다. 오늘날은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의 영혼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는 이 시대를 가리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이 시대는 무엇보다 말씀의 기근이 심한 시대입니다. 젊은이들조차 피곤한 것은 그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의 샘을 파서 이 시대 갈한 영혼들에게 생수를 마시게 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고, 우리 영혼에 참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고 영생의 소망을 줍니다.

Ⅳ. 야곱에게 축복을 계승한 이삭(27:1-28:5)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지게 되자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맏아들 에서를 불러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먹고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눈이 어두워지자 분별력을 상실하고 별미 때문에 에서를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뜻을 두셨으며 또 에서가 육신적이어서 축복 받을 만한 내면성이 없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별미를 좋아하다가 영적 분별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도움으로 야곱에게 축복을 계승할 수 있었습니다. 27-29절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내용입니다. 이는 풍성한 결실의 축복과 열국을 다스리는 만민의 주가 되는 것과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28:3,4절을 보면, 이삭은 야곱을 외조부 브두엘의 집으로 보내면서 믿음의 결혼을 할 것을 부탁하고 그를 새롭게 축복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의 생애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은 바 축복을 잘 누리다가 이를 그대로 아들 야곱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삭의 위대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역사 계승의 위대한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국은 청교도 정신을 가진 선조들이 피땀을 흘려 개척함으로써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이 축복을 잘 감당치 못함으로 이제는 섹스와 마약과 강포가 충만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순수하고 절대적인 믿음과, 말씀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순수 복음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또한 캠퍼스 복음화를 통해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고 세계 선교의 개척 역사를 섬기는 위대한 사명을 물려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 축복을 잘 누리다가 이 축복을 변질시키지 않고 이를 후배들과 후손들에게 계승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삭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삭의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시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삭은 연약하여 대적이 심한 험한 사회에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살아나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 아브라함으로 인해 이삭을 축복하시고 그를 여러모로 도우사 그의 인생 길을 순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아브라함의 종을 통해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또한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잘 계승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신 세상에서 그가 승리의 인생을 살도록 그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시시때때로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이삭이 잔잔한 가운데 순탄한 인생을 살았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우리를 넘치도록 축복하시고 잔잔한 은혜의 강가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