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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1-41:57(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by Mark Yang   08/14/2019   Genesis

Message


창세기 제 16 강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37:1-41:57
요절: 창세기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은 인류 구속 역사를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400년 동안 연단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5:13-16) 하나님은 이 역사를 위해 요셉을 택하셨습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할 만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3대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씨를 뿌려 맺은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과 섭리를 믿고 온전히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시련의 때에나 영광의 때에나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와 함께 하셔서 승리의 인생을 살도록 하시고, 그를 생명 구원 역사에 귀히 쓰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연단하셨으며, 또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Ⅰ. 꿈꾸는 요셉(37:1-11)

37: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36장에서 에서가 세일 산에 거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야곱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하였습니다.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고 한 후 야곱 대신 요셉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야곱의 후반부의 생애가 요셉의 생애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17세 소년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요셉은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요셉이 죄를 미워하고 의롭고 진실되게 살고자 애쓰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대개 동생들은 형들의 영향력을 받고 자랍니다. 특히 좋지 못한 영향력은 쉽게 잘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들의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우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그런데다 요셉은 야곱의 노년에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특별히 사랑하여 귀족들이 입는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요셉에게는 꼭 필요한 사랑이었습니다. 요셉은 도표를 그려야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환경 가운데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였기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지고 운명적이 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변화된 야곱 즉 이스라엘의 사랑을 받고 성숙한 신앙의 영향력 아래서 성장했기 때문에 진실되고 정직하고 구김살 없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요셉을 더 미워할 일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형님들, 내 꿈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고 있는데 내 단이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이는 요셉에게는 신나는 일이었지만 형들에게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나는 일이었습니다. 형들은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번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다시 꿈을 꾸고 형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절하더이다” 이번에는 형들 뿐만 아니라 부친과 모친까지도 그에게 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들은 미움이 지나쳐 그를 시기하였으나, 야곱은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소년 요셉에게 지도자가 되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그 꿈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두 번이나 반복해서 꾸게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꿈은 무의식 세계에 잠재해 있는 갈망의 표현이라 합니다. 대개 소년 시절은 개꿈을 많이 꾸고 공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꾼 꿈은 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그를 생명의 구원 역사에 지도자로 쓰시고자 꿈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 꿈은 인간적인 야심과는 다릅니다. 인간적인 야심은 자기에게서 출발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꿈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꿈으로 앞으로 될 자기의 뜻을 보여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꿈이 반드시 다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들을 꿈으로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루터는 “나는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부터 꿈이나 환상이나 천사 보기를 원치 아니하고 다만 성경을 바로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순수하고 진실되고 충성된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기초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마음에 장차 지도자가 되는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일찍부터 하나님의 섭리가 요셉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실현되려면 하나님의 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 꿈이 크면 클수록 연단도 거세고 혹독했습니다.

Ⅱ. 고난받는 요셉(37:12-40:23)

(1)노예로 팔려 간 요셉(37:12-39:6a)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세겜에 가서 형들과 양떼가 잘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는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70Km나 되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내가 그리하겠나이다”하며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그가 세겜에 가서 아무리 형들을 찾았으나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형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줄 알기 때문에 조금 찾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맡은 바 사명을 끝까지 수행하고자 그곳에서 북쪽으로 24Km나 떨어져 있는 도단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는 작은 심부름 하나라도 누가 보나 안보나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버지께 대한 순종심과 맡은 바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작은 일에 충성하는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큰 일을 맡겨 주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같이 큰 일을 할 사람이 자질구레한 작은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합니다.(눅16:10) 큰 목자가 되려면 한 사람의 목자가 되어야 하고, 한 팀의 1대1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것에나 작은 것에나 충성심의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요셉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본 형들은 그를 죽이고자 꾀하였습니다. 시기심이 살인하고자 하는 감정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르우벤은 맏형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요셉을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다가 후에 유다의 주동으로 애굽으로 가는 이스마엘 상고들에게 은 20 개를 받고 팔았습니다. 최초의 인신매매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자기 아버지께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물려 찢겨 죽은 것처럼 속였습니다. 이로 인해 야곱은 오랫 동안 슬피 울었습니다. 형들은 동생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요셉이 눈물을 흘리며 애걸할 때도 잔인하게 이를 묵살하고 당을 지어 악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때문에 그들은 일생 동안 죄의식에 시달리며 고통해야 했습니다.(롬2:8) 요셉은 하루 아침에 낯선 이방 땅에 노예로 팔려 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아버지 집에서 채색옷이나 입고 아버지의 사랑만 받고 자랐다면 그의 꿈은 개꿈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도자가 되는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를 온실과 같은 집에서 끌어내셔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세상에 내보내어 훈련시키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훈련은 독수리 훈련이었습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키울 때 보금자리에서 끌어내어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래로 사정없이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독수리 새끼는 죽지 않을려고 날개를 파닥거립니다. 그러다가 땅바닥에 떨어져 뇌진탕을 일으키기 직전에 날개로 받아냅니다. 이런 훈련을 반복해서 시키게 되면 나중에는 날개에 힘이 생겨 힘차게 창공을 날라 다니게 되고 새의 왕자로 군림할 수 있게 됩니다. 훌륭한 군인이 되기 위해서 피나는 훈련을 받고,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 10년이 넘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하물며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38장은 유다가 어떻게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되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는 구속역사의 대를 이을 자이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도 변화되기 전에는 육신적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실치 못한 자였습니다. 다말은 비록 방법은 좋지 않았으나 기업을 잇고자 하는 사명감이 강하였습니다. 결국 유다는 다말이 자기보다 옳음을 시인했습니다(26). 마태복음1:3절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에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다만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해 줍니다.

요셉은 마침내 애굽 왕 바로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39:1). 요셉은 하루 아침에 아버지 집의 황태자에서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형들로 인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신분을 벗어날 수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 대한 그리움과 고독, 슬픔, 실의와 좌절, 장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정신 이상이 되거나 자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보면 중국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 나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요셉이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형들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눈은 형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글거려 어떻게 하면 보디발 집을 탈출하여 무술을 연마하여 복수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39:2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이 말씀은 요셉편에서 보면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가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개인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보기에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개인 신앙이 없는 자는 역경의 때에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개인 신앙이 있는 자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감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됩니다. 요셉은 역경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붙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요셉과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이 말씀은 요셉이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힘과 성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사 그의 부모가 되어 주시고, 그의 친구가 되어 주셔서 그에게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셔서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가정 총무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그 집의 복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요셉은 연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b) 요셉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요셉을 사랑하시고 그를 귀히 여기셨습니다. 주인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며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만사 형통케 됩니다.

(2)감옥에 갇히게 된 요셉(39:6b-40:23)
요셉이 가정 총무가 되어 살만하게 되자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이런 요셉에게 반한 보디발의 처가 눈짓을 하고 아양을 떨더니 마침내는 동침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여인은 끈질기게 날마다 유혹했습니다. 이 유혹은 정욕이 왕성한 20대 청년인 요셉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험이었습니다. 요셉은 여인의 말을 듣지도 않을 뿐더러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에는 아무도 없고 두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처는 요셉의 옷을 붙들고 동침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요셉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한번만 잠깐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재미도 보고 또 주인의 처를 이용하여 노예 신세도 벗어나고 출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요셉이 이 유혹에 진다면 순결을 잃고 사정없이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실 수 없게 됩니다. 또한 구속 역사에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딤후2:19-22) 요셉에게는 현재 육신의 정욕에 무릎을 꿇느냐? 아니면 이 유혹과 싸워 승리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유혹은 요셉에게 임한 큰 내적 시련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힘든 유혹을 어떻게 물리쳤습니까? 39:8,9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먼저 주인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인에게 범죄치 않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않고자 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죄와 싸웠습니다. 그는 여인과 함께 있지도 아니하고 붙잡혔을 때는 옷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온 몸으로 죄를 거부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죄의 소욕은 불과 같습니다. 불을 안고 기름에 가까이 가면 활활 타오르게 마련인 것입니다.(잠6:27,28) 젊은 시절은 무한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면, 죄의 소욕도 또한 강하여 무한히 타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순간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몹쓸 사람으로 전락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나의 의지나 힘으로 물리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도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할 수 있는가?”하는 명제로 고민하다가 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시119:9,10)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 때만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 죄의 소욕을 이기고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순결한 삶을 살 때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내적 큰 시련을 이길 수 있었지만 이 때문에 요셉은 전보다 더 비참한 상황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처는 요셉에게 거절당하자 적반하장 격으로 오히려 요셉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요셉은 지저분한 죄목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죄악 되어서 진실되게 살고자 몸부림 치는 요셉을 사정없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요셉은 지도자가 되고자 했는데 상황은 점점 더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요셉이 감옥살이 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오해와 비난이었을 것입니다. 그 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회의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금이 가기 쉬웠을 것입니다. 내가 의롭고 진실되게 살고자 하는데 왜 결과가 비참하게 되는가?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가? 이런 회의가 들면 사정없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됩니다. 이는 신앙적인 큰 위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에 조금도 요동함이 없었습니다. 세상은 그의 몸을 구속할 수 있었지만 그의 믿음은 구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을 때 감옥도 천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를 도와 주셨습니다. 39: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셔서 억울한 누명을 참고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을 주셨습니다. 또한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감옥에서도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전옥에게 은혜를 얻어 옥중 제반 사무를 맡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바로에게 범죄하여 요셉이 있는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들을 섬기게 되었는데 그는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그들의 목자가 되어 마음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어느날 아침 요셉이 그들의 얼굴에 근심 빛이 있음을 발견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동시에 각기 다른 꿈을 꾸고 무슨 뜻인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셉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40:8b)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 이야기를 듣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사흘 후에 전직이 회복될 것이라는 길한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그에게 전직이 회복되면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의 길함을 보고 자기의 꿈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악몽이었습니다. 요셉은 조금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가 사흘 안에 사형 당할 것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사흘 후에 모든 것이 요셉의 꿈 해석대로 되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전직이 회복되어 너무 기뻐 술을 많이 마셨는지 요셉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기약없이 계속해서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감옥살이는 괴로움만 당하고 무의미한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지도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겸손해야 됩니다. 또한 어떤 종류의 사람도 품고 섬길 수 있는 내면성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감정과 혈기대로 하지 않고 인내하고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 있어야 됩니다. 요셉은 밑바닥까지 낮아지므로 겸손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냄새나는 죄인들을 품고 섬기는 섬기는 종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 훈련을 받았습니다. “금은 도가니 속에서 연단되고 사람은 고난 중에서 연단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용광로 속에 넣어 그가 순수하고 강한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연단하셨습니다. 요셉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의 내면은 넓어졌습니다.

Ⅲ. 총리가 된 요셉(41장)

만 2년 후에 이번에는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바로가 하숫가에 섰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수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를 이어 흉악하고 빼빼마른 다른 일곱 암수가 올라와 아름답고 살진 소들을 다 잡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바로는 놀라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세약하고 쭉정이 이삭이 나오더니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바로는 연이어 비슷한 내용의 꿈을 꾸고 마음이 번민하여 모든 술객과 박사들을 불러 해석하도록 했으나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이 2년전의 일을 기억하고 요셉을 소개했습니다. 요셉은 그 즉시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보자 “듣자니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고 하며 요셉을 칭찬했습니다. 이때 요셉은 자기를 드러내고 바로의 인정을 받고자 애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고 하며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요셉은 애굽 온 땅에 일곱 해 동안 큰 풍년이 있을 것과 그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어 그 이전의 풍년은 다 잊어버리고 기근으로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었습니다.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그 제안을 좋게 받아 들였습니다. 바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하며 그 즉시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하루 아침에 애굽을 다스리는 실권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13년간의 긴 연단 끝에 마침내 그 꿈을 실현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볼 때 하나님은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삼상:2:6-8)

그러나 요셉은 일개 죄수에서 갑자기 총리가 되었으므로 한없이 교만해지기 쉬웠습니다. 그는 권세를 남용하여 피의 숙청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축복의 때에 하나님을 잊고 자행자지 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고난의 때나 축복의 때나 조금도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는 그가 자식들의 이름을 짓는데서 잘 나타납니다. 그는 첫째 아들 므낫세를 낳고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고 간증했습니다.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낳고는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영광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매사에 “하나님이 나로” 어떻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사고와 삶의 중심이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어이고 자기는 목적어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인정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교만을 이기고 총리직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요셉이 아버지 집에 있을 때나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나 감옥살이를 할 때나 총리생활을 할 때도 그 어디서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때 초막이나 감옥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천국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환경을 이기고 연약함을 이기고 운명을 이기고 교만을 이기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