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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5:1-11:10(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by Mark Yang   08/14/2019   Exodus

Message


출애굽기 제 3 강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말씀: 출애굽기 5:1-11:10
요절: 출애굽기 7: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
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우리는 이때까지 하나님께서 바로의 권세 아래서 고통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 한 사람을 키우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를 애굽으로 보내신 것을 배웠습니다. 이때부터 모세와 바로 간에는 12라운드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좀처럼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세력은 강하고도 끈질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바로에게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최후에는 장자 재앙을 내리심으로 바로를 완전 KO패 시키시고 장엄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단번에 고통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 시키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신 후에야 출애굽 시키신 것입니까? 여기에는 3중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애굽의 모든 신들을 심판하고자 하심이요,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영적 소원을 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계시하시고자 하심이요, 셋째는, 모세의 믿음을 키우셔서 출애굽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의 역사를 통하여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계시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살펴 보고자 합니다.

Ⅰ. 재앙의 역사

첫째, 재앙의 준비(5:1-7:7). 5:1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아론과 함께 바로에게 가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그러자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노예의 신으로 생각하고 우습게 여겼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하나님께 대한 영적 무지는 필연적으로 교만을 낳았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적 무지를 이상히 생각지도 않고 교만을 부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7b, 8절은 말합니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게을러서 일하기 싫기 때문에 그런 헛생각을 한다고 생각하고 고역을 더 무겁게 하였습니다. 짚도 주지 않고 전과 같이 벽돌을 만들도록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로는 그들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그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못하도록 관계성을 파괴시키고 출애굽하고자 하는 소원을 뿌리 채 뽑고자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으로 인하여 상태는 전보다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바로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였다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21). 이처럼 한 영혼이 출애굽의 필요성을 깨닫고 출애굽하고자 하면 사단은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여 상태가 전보다 더 악화되게 만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잃고 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 출애굽의 소원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초반에 두려움을 심음으로 출애굽의 소원을 꺾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단의 궤계에 말려들어 낙심하고 포기한다면 출애굽 역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첫 번 도전에 실패한 후 실의와 낙심 가운데 빠져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22,23). 모세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내면이 연약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 시키는 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은 강인한 내면성과 줄기차게 도전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출애굽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6:1절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쫓아내리라.”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으로 바로에게 손 좀 봐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손 보실 때 제 아무리 강한 바로일지라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혹시’나 ‘아마’라는 단어가 없고 ‘반드시’ 뿐입니다. 이사야 46:10b절은 말합니다.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2-8절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하고자 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나는 여호와로라.” 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여호와로는 알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나오지만 실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계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시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무거운 짐에서 빼어내시며, 그 고역에서 건지시며, 그들을 값주고 사심으로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어 사명의 터전으로 삼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무거운 죄의 짐에서 건져내시고 예수님의 보배 피로 값주고 사시고 구속하사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삼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두신 구속 계획은 완벽합니다. “나는 여호와로라.” 이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놀라운 구원 계획을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했습니다(9). 하나님은 낙심하고 있는 모세에게 바로에게 들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10).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도 자기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하며 계속 입 탓을 하였습니다(11,12,28-3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는 출애굽 역사는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임을 말해 줍니다. 14-27절에는 족보가 나옵니다. 내용의 전환기에 족보를 정리하는 것은 성경의 관례입니다. 저자는 출애굽 역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에 앞서 족보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는 레위 지파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출애굽 역사의 주인공인 모세와 아론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7: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역사를 위해 모세를 세상 지도자보다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큰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신 후에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내겠다고 하십니다. 그때에야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5).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습니다(6). 그때 모세의 나이는 80세였고 아론은 83세였습니다(7).

둘째, 10재앙(7:8-11:10). 7:8절부터 재앙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오픈 게임으로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렸습니다. 당시 뱀 특히 코브라는 애굽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의 권세 앞에 바로의 권세가 감히 대항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듣지 아니했습니다.

첫번째 재앙은 지팡이로 하수를 쳐서 물이 피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일강은 애굽의 문명을 번성시킨 젖줄기로서 식수 뿐 아니라 농사를 짓는 원천이었습니다. 또 이 곳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있어 애굽인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나일강은 풍요와 다산 등 모든 축복의 근원으로서 그들에게 생명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신들의 거주지로 생각하고 최고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 강물이 피로 변하고 고기는 모두 죽고 물에서는 악취가 났습니다. 이로 인해 하수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자 거국적으로 우물 파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두번째는 개구리 재앙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개구리를 풍부와 다산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신성한 동물로 숭배했습니다. 개구리 신을 ‘헤카’라고 하는데 이는 개구리 머리를 달고 있는 여신으로서 백만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개구리들이 하수에서 무수히 올라와 개굴개굴하며 바로의 궁과 왕의 모든 신하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잠자는 침실에도 들어가고 화덕과 떡반죽 그릇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무법자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무적의 백만 대군과 같았습니다. 온 애굽이 개굴개굴 개굴 개구리로 들끓었습니다. 그들은 잠을 잘 수 없었고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는 너무 괴로워서 개구리를 떠나 보내도록 모세에게 기도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숨을 통할 수 있게 되자 마음을 완강케하여 듣지 아니했습니다.

세번째는 이 재앙입니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 잡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바로 왕도 몸이 너무 가려워서 왕으로서의 모든 체면을 던져 버리고 옥좌에서 내의를 벗어서 열심히 이를 잡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똑똑’하며 이 잡는 소리가 났습니다. 술객들은 이때까지 권능을 행하다가 이것은 행할 수 없게 되자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며 바로에게 고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그들의 종교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제사장들은 신성한 직임을 이행하는 동안 몸을 정결케 하기 위해 매 3일마다 머리와 몸을 면도하며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깨끗한 짐승을 잡아 각종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그들이 이 재앙으로 말미암아 제사장들과 짐승들이 다 더러워지고 온 몸에 상처가 났으니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번째는 애굽 전국에 파리가 있게 했습니다. 이 파리는 일반적인 집파리가 아니라 홍수 후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특종 파리로서 짐승들과 사람을 쏘고 특히 눈꺼풀에 붙어 안질을 일으키고 또 디프테리아나 악성 종기를 일으키는 등 무서운 고통을 주었습니다. 파리떼로 인해 애굽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파티를 할 수 없었습니다. 파리떼로 인하여 땅이 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악질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생축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우상으로 섬기던 황소나 암송아지나 염소들도 심한 악질에 걸려 다 죽었습니다. 여섯번째는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이 발하게 하셨습니다. 술객들도 독종으로 인하여 모세 앞에 서지 못했습니다. 일곱번째는 우박 재앙으로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를 쳤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농사가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여덟 번째는 메뚜기 재앙입니다. 메뚜기는 우박으로 인하여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열매를 다 먹어 버림으로 푸른 것은 하나도 남지 아니했습니다. 아홉번째 재앙은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을 뒤덮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한치 앞을 볼 수 없어 중풍병자처럼 꼼짝없이 자리에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습니다. 열번째는 장자 재앙으로서 애굽의 머리를 치는 것입니다.

첫번째 재앙부터 세번째 이 재앙까지는 애굽인의 생활의 안락을 훼방하는 것으로서 쾌락과 안락을 사랑하는 그들의 죄악된 생활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네번째부터 아홉번째까지의 재앙은 소유에 대한 심판으로 물질을 사랑하는 그들을 치신 것입니다. 마지막 장자 재앙은 생명을 치는 것으로서 죽음의 심판을 말해 줍니다. 이는 모든 재앙 중에서 가장 무서운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번째 파리 재앙부터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으로부터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구별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우상숭배의 땅에 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애굽의 신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마 그들은 선진국 애굽의 신들을 부러워하고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열등한 신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재앙 역사를 통하여 애굽의 신들은 모두 헛되며, 그들이 믿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보여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동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핍박을 받고 불이익을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재앙 역사를 통해 그들을 애굽 사람으로부터 구별시킴으로 그들은 선민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천대받고 멸시받던 이스라엘이 애굽 사람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빛 가운데서 빛된 생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 항상 손해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억울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사랑하사 모든 위험과 환란으로부터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생의 의미와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하고 어두움 가운데서 헤매일 때 우리 믿는 자들은 진리의 빛 가운데서 빛된 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보배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재앙 역사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그 뜻대로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수가 피가 되게 할 수 있고, 티끌이 이가 되게 할 수 있고, 재로 독종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원하시면 천하에 있는 메뚜기를 다 한 곳으로 모으실 수 있고, 이 땅에 흑암이 임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무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실 수 있습니다.

Ⅱ. 재앙 가운데 두신 뜻

이상 재앙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과, 둘째는 마음을 강퍅케 한 바로와, 셋째는 재앙을 내리신 목적입니다.

첫째, 내 백성을 보내라. 각 재앙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에게 전할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이 메시지는 7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5:1, 7:16, 8:1,20, 9:1,13, 10:3). 여기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바로를 섬기는 노예 백성으로서 아무 쓸모없는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함이나 존엄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의미나 목적도 알지 못한 채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고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동물과 같았습니다. 이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둔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큰 소망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내 백성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바로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사 하나님을 섬기는 친 백성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로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시는 목적은 단지 그들을 구원하는데 있지 않고 그들이 바로를 섬기는 데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사단의 종, 죄의 종노릇하는 데서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이는 바로에 대한 하나님의 선전포고였습니다. 바로는 사단의 대리자요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바로의 싸움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또 바로는 절대로 놓지 않고자 하기 때문에 영적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으시고, 좀 고생스럽지만 광야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둘째, 마음을 강퍅케 한 바로. 바로 왕은 이스라엘을 순순히 내보내지 아니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내 보낼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개구리 재앙 때는 이스라엘을 보내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는 숨을 통할 수 있게 되자 마음이 완강해졌습니다. 파리 재앙 때는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하며 기도 부탁까지 해 놓고 재앙이 지나가자 다시 마음이 강퍅해 졌습니다. 악질 재앙, 독종 재앙, 우박 재앙,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가축이 죽고 밭의 농사가 망하여도 그 때만 지나면 다시 마음이 강퍅해졌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크신 권능을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마음을 강퍅케 하여 듣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회개 대신 후회만 했습니다. 그의 후회가 너무 진지하여 진짜 회개한 것같이 보입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9:27).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10:16,17). 그러나 재앙이 지나면 다시 마음을 강퍅케 하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는 바로조차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타협의 명수였습니다. 8:25절에서는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하였고, 8:28절에서는 “너희가 가기는 가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10:11절에서는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였고, 10:24절에서는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100% 완전히 출애굽하지 말고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며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혹합니다. 사단의 세력은 끈질깁니다. 사단은 우리가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끈질기게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타협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이라도 세상과 타협하게 되면 사단의 궤계에 말려들어 결국 사단의 밥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100% 완전히 출애굽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로가 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을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바로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손해보기 싫은 이기심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때까지 애굽에 막대한 노동력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들을 떠나 보낸다는 것은 엄청난 손해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그들을 보내지 않고 노예로 부려먹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편히 지내기를 원했고 섬김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유익을 구하는 이기심 때문에 결국에는 더 큰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교만입니다. 바로란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을 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순종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9: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그는 자고하여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했습니다. 그의 교만은 하늘 끝까지 닿았습니다. 그는 가려워서 이를 잡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곧장 죽어도 자신을 꺾지 아니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계속해서 재앙을 면치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바로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손해 보기 싫은 이기심과 안일을 사랑하고 섬김 받고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죄악된 본성이 있습니다. 또 자기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기 싫어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회개하기 싫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로는 잘 알지만 마음을 강퍅케 하여 말씀을 배척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됩니다.

셋째,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런 재앙을 내리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7:17, 8:10,22, 9:14, 10:2에 보면 “이를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론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바로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10:29). 당시 애굽에는 여러 가지 신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재앙으로 애굽 신들을 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것들은 모두 헛된 신이요,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통해 애굽 사람들이 온 천하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그 이름을 나타내시고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상의 재앙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모세를 담대한 믿음의 용사로 키우셨습니다. 모세가 처음 바로에게 가서 거절 당했을 때 마음이 상심되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쉽게 상처받고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내면이 약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계속해서 믿음으로 바로에게 도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도전했을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한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이때 그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내면이 강해졌습니다. 또한 어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도전하는 도전정신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도 모세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모세 되게 하신 분은 온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물질과 쾌락과 사상 등 각종 우상을 섬기고 있는 애굽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예로 살더라도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편안하게 애굽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죄 가운데서 고통할지라도 출애굽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바로를 섬기는 삶은 비참합니다. 참된 열매가 없습니다. 그 결국은 영원한 파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죄와 사단의 권세에 도전하여 출애굽해야 합니다. 죄악된 생활에서 출애굽해야 합니다. 안일한 생활에서 출애굽해야 합니다. 소시민적인 생활에서 출애굽해야 합니다. 그리고 좀 고생스럽더라도 진리의 말씀으로 광야에서 훈련 받으며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개개인의 삶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구속하사 위대한 사명인의 인생을 살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한마디로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