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서론
1. 고린도 시
발칸반도 남쪽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교통, 상업, 정치의 중심지가 되어 "헬라의 다리"라 불리웠습니다.
헬라시대에는 테에베, 아덴, 스파르타와 함께 맹주 도시였습니다. 그 전성기는 주전 7세기의 키프셀루스(Cypselus) 왕 시대로서 "전 헬라의 빛"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주전 146년 로마의 장군 뭄미우스(Mummius)에 의해 파괴되고, 그 시민은 노예로 팔려 약 100년 간 폐허로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46년 시저가 식민 이민단을 보내어 고린도시를 재건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고린도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는 아가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인구 60만을 헤아리는 대도시로 발전했습니다. 고린도의 주민들의 대부분이 노예들로서 자유인 20만명에 노예들이 40만명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이 다수였고, 로마 식민 이민단과 각처에서 모여 온 자들과 유대인도 상당수에 달하였습니다.
상업도시로 번창했으며, "철인을 만나는 일 없이 고린도 거리를 걸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고대 헬라의 전통적 철학이 성행하였습니다. 또한 올림픽 경기를 본받아 이스므스 경기를 개최하였으며, 헬라의 여러 도시 중에서 로마의 검투경기를 수입한 최초의 도시였습니다.
정신계는 다신교가 성행하였고 퇴폐적이고 음란하였습니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섬기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1천명의 여사제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창녀였습니다. "고린도와 같이 된다"는 것은 부요와 사치, 방탕과 술취함, 불결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 가면 쾌락을 즐기는데 물질을 다 탕진하기 때문에 "고린도로 항해하지 말라" 격언이 생겼습니다.
2. 고린도 교회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주후 50년 경) 1년 6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개척한 곳입니다. 그 때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동역자로 얻게 되었으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에는 아볼로가 와서 사역을 감당하였으며, 후에는 디모데와 실라가 계속해서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3. 쓴 시기와 장소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3년동안 머무를 때 썼습니다 (행18:19). 그 시기는 AD 55-57년 경으로 봅니다.
4 특징
① 로마서가 교리적이라면 고린도전서는 실제적입니다. -- 분파문제, 음행문제, 소송문제, 혼인문제, 우상의 제물문제, 여자들의 예배시 복장에 관한 문제. 성만찬문제, 은사문제, 부활에 관한 문제 등을 복음적인 원리에 입각해서 설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도 실제 여러가지 신앙생활에 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② 주제는 문제 많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8:1, 13장, 14:1, 16:14,22,24) 사도 바울이 그들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해결해 주고자 하는 데서 사랑의 사도로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의 목자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5. 내용 구분
A. 서언 (1:1-9)
i) 인사 (1-3)
ii) 감사 (4-9)
B. 교회내의 분쟁 문제 (1:10-4:21)
C. 도덕 문제 (5:1-6:20)
D. 결혼에 관한 문제 (7:1-40)
E. 우상의 제물에 관한 문제 (8:1-11:1)
F. 예배 문제 (11:2-16)
G. 성만찬 문제 (11:17-34)
H. 은사에 관한 문제 (12:1-14:40)
I. 부활에 관한 문제 (15:1-58)
J. 마지막 권면 (16:1-24)
6. 공부 목적
오늘날은 과학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지혜를 자랑하고, 물질주의와 쾌락주의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십자가의 메시지는 외면 당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공부함으로써 십자가의 메시지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문명을 창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