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제 2부 18강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말씀/ 누가복음 19:11-27
요절/ 누가복음 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본문은 유명한 므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신자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 많은 유익을 남기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장사하라 (11-13)
11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백성들은 예순미의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문둥이도 깨끗케 하시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시며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의 역사를 보아 왔습니다. 그들은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만 하면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과 멸시의 십자가를 지고자 하셨습니다(18:31-33).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들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고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원수 로마를 물리치심으로 다윗시대와 같은 메시야 왕국이 건설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것도 당장에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 그들의 심리가 어떠합니까? 이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요, 기적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현실의 삶을 인정치 않고 사명의 십자가를 부인합니다. 십자가 없이 영광만 누리고자 합니다. 이런 자들은 말씀 앞에서 진실되게 회개하고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는 투쟁을 하기보다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자기를 변화시켜 주셔서 큰 종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노력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시험성적이 잘 나와서 장학금 타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무당신앙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무엇이든지 당장에 이”렁지는 것은 없습니다. 농부가 가을에 열매를 추수하기까지는 봄부터 씨를 뿌리고 인내로 가꾸는 많은 수고가 있습니다. 복음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주님께서 쓰실많나 목자로 성장하기까지에는 실로 많은 희생이 요구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의 의미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영광을 구하는 죄악된 본성은 그들의 영적 눈을 감기게 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만민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때까지 예수님을 따르면서 받은 고난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십자가의 도리를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도리를 말씀하실 때마다 반발하고 귀를 막았습니다(막 8:32; 눅 9:45). 지상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는 것은 그들의 절실한 소원이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시자 점점 마음이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꽉 막힌 이들을 보실 때 얼마나 심령피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오래 참으시고 그들의 그릇된 생각을 고쳐주시기 위해 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들이 현실에 발을 붙이고 실제 생활에서 열매 맺는 생활을 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여기서 어떤 귀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또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를 간 것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후에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을 의미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귀인은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말했습니다.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이 말씀에서 종은 제자들, 더 나아가 모든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한 므나는 일군 석달 품삯에 해당되는 돈으로 장사 밑천입니다. 주인은 이 돈을 종들에게 주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데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한 므나를 가지고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이는 구원 받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생의 분명한 방향을 줍니다. 사람들은 쉬고 놀기를 좋아하지만 분명한 할 일이 없이 쉬고 놀기만 하는 것처럼 괴롭고 비참한 일은 없습니다. 종들이 주인을 위해서 열심히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요 특권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장사 밑천으로 준 므나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므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므나는 인간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인간은 누구나 공평하게 하나님께로부터 한 므나, 즉 한 생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인간의 삶은 일정 기간동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생명의 열매는 풍성하고 거의 무한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a)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2:24절에서 인간의 생명을 한 알의 밀에 비유하심으로 한 인생이 수많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인간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을 투자하여 장사를 해야 합니다. 생명은 돈과 같습니다. 돈을 써버리면 다 없어져 버리지만 적절하게 잘 투자하면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생명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써 버린다면 아무런 열매없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이 생명을 주와 복음을 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많은 열매를 남길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세상에서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세상 쾌락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에서의 궁중생활이 생명을 허비하는 생활인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장성하여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리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4,25). 모세는 가치있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투자함으로 누구보다도 많은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셔서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함으로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둘째로, 므나는 인간의 재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각 사람마다 독특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유전인자가 다르고 지문도 다 다릅니다. 인간은 각자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금미 학사님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윤선자 학사님은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부드럽게 춤을 출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카운슬링을 잘하고 어떤 분을 말씀을 잘 가르칩니다. 사람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재능으로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대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독특한 재능을 개발하여 사용하지 않고 이를 남과 비교하여 무가치하게 여기고 손수건에 싸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사하라.” 이는 주인이 종들에게 명령으로 주신 것입니다. 장사에는 반드시 이익을 남겨야 합니다. 이윤이 없는 장사는 장사가 아니라 봉사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익을 남겨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II. 착한 종, 악한 종 (14-27)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자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14). 이것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원치 않는다고 해서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예수님께서 첫 번 세상에 오실 때는 구유에 가장 낮고 천하고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생들의 모든 슬픔과 운명과 연약함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가 되시고 인생들의 선한 목자가 되시고 인생들의 무거운 죄짐을 담당해 주신 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와 같이 병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살려 주셨습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인생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아름다운 생애와 사역은 인류의 마음 가운데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실 때는 이렇게 섬기는 종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대동하고 왕이요 심판주로서 위엄과 큰 영광으로 오십니다(눅 21:17). 이때 모든 민족과 나라의 백성들이 예수님께 나아아 무릎을 꿇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이 각각 어떻게 장사했는가 알고자 하여 부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에 반드시 결산의 때가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매 학기마다 시험을 보고 그 결산으로 성적이 나옵니다. 또 12월이 되면 은행이나 회사에서 연말 결산을 하게 됩니다. 결산을 하게 되면 한 해 어떻게 장사했는가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산을 통해 많은 유익을 남긴 자는 상을 주고 손해를 끼친 사람은 징계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연말 결산은 다음 해에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결산은 다시는 만회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인생의 결산의 날이 있음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절에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안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젊기 때문에 인생을 영원히 살 것 같지만 잠깐입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 90:10). 결산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이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과 또 우리가 주님께로 갈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인생의 결산은 가족 단위나 요회 단위나 센타 단위와 같이 도매금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는 각각 행한대로 결산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고 진지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결산을 위해 해마다 요절 심포지움으로 한 해를 결산합니다. 지난 한해 동안 감사제목과 회개제목을 찾고 새해에는 좀 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고자 방향을 잡게 됩니다. 우리가 매년 이렇게 결산할 때 인생의 최후 결산 때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종들은 각각 어떻게 장사를 했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첫째 종이 주인에게 나아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이 종은 장사를 잘하여 1000%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주인은 마음이 심히 기뻐 그 종을 칭찬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종이 받은 가장 큰 상급은 주인의 인정과 칭찬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되시고 온 세상의 심판주가 되신 예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듣게 되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예수님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자들에게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칭찬하시며 머리에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줄 것입니다. 또 종이 받을 상급은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둘째 종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주인은 첫째 종과 비교하여 왜 많은 유익을 남기지 못했는가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종이 최선을 다해서 한 것 자체를 귀히 여기시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일한대로 다섯 고을을 차지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첫째와 둘째 종은 장사를 잘하여 많은 유익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주인에게 쓸모있는 종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장사를 잘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을 칭찬할 때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장사하는 자들은 1원을 가지고 따집니다. 그들은 1원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잘 알기 때문에 1원을 중히 여깁니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것을 무시하고 큰 것만 원하는 자는 결코 큰 사업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재벌 연구를 하면서 발견한 그들의 공통점이 지극히 작은 것을 중히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선화 학사님과 같이 영어를 유창히 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중히 여기고 외워야 합니다. 큰 목자가 되는 비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와 같이 중히 여기고 한 번 1:1하는 것을 천금과 같이 중이 여길 때 자연히 큰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때를 잘 분별하고 믿음으로 투자를 했기 때문입니다. 장사를 잘 하려면 Time Sense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양들을 연구하고 시대를 연구해야 합니다. 연구하지 않는 자는 결코 성장할 수 없으며 장사를 잘 할 수 없습니다. 때를 잘 분별한 후에는 믿음으로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합니다. 투자 없이는 장사할 수 없습니다. 투자하지 않으면 손해도 없고 유익도 없고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장사해서 유익을 남기려면 반드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의 재능과 생명을 투자해야 합니다. 이렇게 투자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 믿음으로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우리의 젊음을 투자할 때 우리의 인생은 가장 값지고 풍성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동안 캠퍼스 역사를 위해 자신을 투자했습니다. 그때 순간 순간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았지만 20년이 지난 오늘날 중간결산을 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인생을 누구보다도 값지고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셋째는, 장사하라는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첫째와 둘째 종이 장사를 잘 할 수 있었던 근본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는 주인의 명령을 심령 깊이 영접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장사를 하고자 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캠퍼스는 이틀이 멀다하고 최루탄이 터져 fishing하기 힘들었고 겨우 얻은 양은 반발심이 강하고 영적 소원이 별로 없어 1:1 약속을 밥먹듯이 어겼습니다. 또 육신과 마음이 피곤하여 모든 것을 제쳐두고 조용한 곳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어찌하든지 장사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뒤로 물러가면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히 10:38). 그들은 기도로 주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역경에 도전했습니다. 그들은 어찌하든지 장사를 잘하여 주님께 많은 유익을 남기고자 하는 Spirit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핑계하지 않고 주인의 명령대로 절대 순종하고자 몸부림쳤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순종하는 믿음을 축복하사 500%, 1000%의 유익을 남기게 하셨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셋째 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변명했습니다. “이는 당신은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두나이다.” 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는 주인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주인을 율법적으로 생각하고 주인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두려워 한 나머니 한 므나를 잃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손수건에 싸두었습니다. 두려움은 그를 소심하게 만들었고 그의 생각과 손발을 마비시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생명과 재능을 손수건에 싸두고 두려움에 시달리는 자가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남과 비교하여 자학하고 헛생각을 잘합니다. 자학하고 헛생각하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귀중한 인생을 낭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귀중한 인생을 낭비하는 죄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위해서는 밤잠을 자지 않고 투쟁하지만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을 드리기에 극히 인색합니다. 이들은 자기를 잃지 않고자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자기를 잃기 않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주와 복음을 위해 자기를 잃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막 8:35).
둘째로, 그는 주인을 잘못 알았습니다. 그는 주인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열심히 말씀을 증거하지 않아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택한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8세기 William Carey가 세계 선교를 강조했을 때 영국 교회는 우리가 애써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아도 전능하신 하나님게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안일과 나태함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심은대로 거두시는 분이십니다(갈 6:7). 셋째 종은 변명이 많았습니다. 결국 그의 문제는 장사하라는 주인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주인은 그를 악한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5:26). 그는 주인의 므나를 받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므나는 본전이 아니라 기회손실로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것입니다. 그가 어찌하든지 유익을 남기고자 하였다면 그 은을 은행에 두어 이자라도 찾았을 것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쓸모없는 악한 종이었습니다. 주인은 곁에 섰는 자들에게 그의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24). 그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치 않았을 때 결국에는 한 므나까지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주인의 처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되어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 이것이 바로 복음의 원칙입니다. 이는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가장 공평한 것입니다. 충성된 자는 축복을 더 받게 되고 충성치 못한 자는 축복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왕됨을 원치 않는 자들은 원수들로 여기시고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27).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고귀한 생명과 재능을 주시고 장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에 순종하여 주님께 많은 유익을 남기는 쓸모있는 종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인생을 결산할 때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하는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