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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by Mark Yang   04/23/2022   Acts 2:1~47

Message


사도행전 제 2 강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말씀/ 사도행전 2:1-47

요절/ 사도행전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제 1 강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세계 선교 명령과 선교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어떻게 성령의 그릇을 이루었는가를 공부했습니다. 오늘 제 2강에서는 성령 강림과 사도 베드로의 부활절 메시지와 이로 인한 교회의 탄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구속사에서 그리스도의 탄생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 (1-21)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서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합심 기도는 여러날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합심 기도를 하는 가운데 말씀을 기초로 인본주의 누룩을 제거하고 또 맛디아를 뽑아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시킴으로 성령의 그릇을 든든히 이루게 되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역사적인 오순절 날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서 유월절 후 첫 번째 일요일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지켰습니다. 이 날은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또 밀의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맥추절 또는 초칠절이라고도 하였습니다.(출23:16, 민28:26) 바로 이때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탄생한 것은 교회가 성령의 첫 열매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오순절 날에는 각 나라에 흩어진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성령께서 바로 이때 사도들로 하여금 각 나라 방언으로 하나님의 일을 말하게 하신 것은 온 세상에 복음의 씨를 퍼뜨리고자 하신 크신 뜻이 숨어 잇는 것입니다. 성령은 세계 선교를 위해 그 뜻대로 역사 하십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러 모든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였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져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임하였다는 것은 성령의 강력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때로 비둘기같이 조용히 평화롭게 임하기도 하고(마3:16), 또 믿는 자들의 마음에 생수의 강같이 흘러 참 만족과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요7:38,39) 그러나 본문에서는 강력하게 역사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폭풍처럼 강하게 휘몰아치는 바람같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또 불의 혀같이 갈라져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은 성령께서 인격적으로 각사람의 마음에 임하셨음을 말해 줍니다. 성령께서 불의 혀같이 임한 것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불은 뜨겁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해 뜨겁게 역사했음을 말해 줍니다. 또 불은 모든 것을 태웁니다. 이는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태워버림으로 정결케 하심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능력으로 임하실 때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들에게 어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첫째로, 그들의 입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들은 외국어라고는 배워 본 적이 없는 갈릴리 촌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두려움과 자의식으로 인해서 심령이 막히고 입이 막힌 자들이었습니다. 그어나 성령이 임했을 때 두려움과 자의식이 사라지고 담대해졌습니다. 닫혔던 입이 열려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게 될 때 언어의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갈릴리 촌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조금도 떨지 않고 담대히 말씀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계적인 말씀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각국에서 온 유대인들은 무식한 갈릴리 사람들이 자기 나라 본토 말로 유창하게 말씀 전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놀라 기이히 여겼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능력있는 말씀의 종이 된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될 때 입이 열리고 심령이 열려 담대하게 말씀을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로 그들은 비전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 큰 역사를 본 사람들은 다 놀라며 이 어찐 일리냐하고 의혹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저희가 이상한 술을 많이 마셔 새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습니다. 요사이 같으면 마약을 피웠다고 조롱할 것입니다. 어쨋든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눈동자는 반짝 반짝 빛이 났으며, 그 전신에는 패기와 정열이 넘쳐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생명력이 충만했습니다. 보통 술에 취하게 되면 소심하던 사람이 간이 커져서 큰 소리를 잘 치고 겂없이 행동하게 됩니다.그래서 용기가 없어 할 말을 못하던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술힘으로 말을 잘하게 됩니다. 그러나 술에 취하게 되면 정신 상태가 흐리멍텅하게 되어 눈에 초점을 잃고 비틀비틀하게 되며, 말도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생명력이 넘쳤고 외국어 바람도 정확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자들이 술에 취한 것 같기는 한데 보통 술과는 달라서 새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한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때가 제 삼시, 즉 아침 9시이므로 술을 마실 때가 아님을 상기시켰습니다. 특히 당시 유대 사회는 아침부터 술 마시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 요엘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말세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때부터 재림하실 때까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말세가 가까워 오므로 이 시대는 말세지말이라고 일컸습니다. 말세 기간은 성령 시대이므로 성령께서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시게 됩니다. 특히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성령께서 만민 구속 역사를 위해 더욱 강력히 역사하십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한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하였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믿는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이 역사하게 될 때 자녀들은 예언하게 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게 되고, 늙은이들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으므로 꿈을 꾸게 됩니다. 예언이나 환상이나 꿈은 모두 성령의 역사 방법입니다.

여기서 볼 때 성령이 임하게 되면 젊은이들은 환상에 불타게 됨을 알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환상이라고 하면 현실을 초월하여 붕붕 떠 다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환상이란 비전입니다. 비전이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희망을 말합니다. 비넞과 인간적인 야심은 비슷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비전은 하나님께로붙너 오는 것이지만, 인간적인 야심은 자기에게서 출발합니다. 비전은 하나님 중심적이지만, 인간적인 야심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만 인간적인 야심은 자기 영광을 드러냅니다. 비전이 충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지만, 인간적인 야심이 충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반드시 성취되지만, 인간적인 야심은 욕심에 기초한 것이므로 실현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적인 야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비전에 충만한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야심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합니다.

그러면 비전이 충만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만민 구원 역사에 쓰임 받고자 하는 순수한 영적 소원으로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현실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자유롭습니다. 또 말과 행동에 박력이 있고 삶에는 생동감이 넘칩니다. 생각하는 스케일이 크고 웅장하며, 개척 정신과 모험 정신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비전이 없는 사람은 개척이나 모험을 싫어하고 안정된 생활을 희구하며 현실에 안주하고자 합니다. 십자가를 싫어하고 할 수 있는대로 편안하게 살고자 합니다. 이런 자들은 소시민적이어서 작은 소원에 얽매이고 생각하는 것이 째째합니다. 자연히 세상의 잔 재미를 좋아하게 되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이 되어 버립니다. 고상하고 거룩한 영적 소원보다 죄의 소욕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나이는 젊지만 젊은이다움을 상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젊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 애늙은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다움 자는 비전에 충만한 자입니다. 이런 자는 영적인 것을 사모하고 늘 영적인 생각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읖 최고로 가치있게 생각하고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고자 합니다. 특히 어던 모양으로든지 세계선교역상에 쓰임받고자 합니다.

L.A의 김이삭 선교사님은 본국에서 판검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선교 비전을 갖게 되었을 때 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학생으로 나아가 신문배달을 하며 선교사 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의 희생을 받으시고 L.A역사를 놀랍게 축복하고 게십니다. 또 안 요셉 선교사님은 지난 20년간 외교관으로서 여러나라를 다니며 사도 바울과 같이 개척 역사를 섬겼습니다. 이제는 승진을 하여 고생하던 시절은 다 지나고 공사가 되고 대사가 되는 길만 남았습니다.그러나 오히려 이때부터 전적으로 세계 선교 역사를 섬기기 위해 사표를 내고 이방 땅으로 갔습니다. 또 박한진 목자님은 오랜 공부 끝에 한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얼마든지 세상에서 존경 받으며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의사보다 full time 목자로서 훈련받고 쓰임 받다가 때가 도면 선교사로 나가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의사 체질이 아니고 목자 체질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비전이 충만한 자는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물질적이고 인간적인데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비전이 없을 때 자연히 물질적이되고 육신적이 되어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비전이 없는 자는 현실에 얽매여 심정이 부패하여져서 쓸모없게 되어 버립니다. 비전이 없는 개인이나 백성은 망합니다.(잠29:18) 비전는 말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3:1절에 보면 말씀이 희구할 때 비전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자연 히 인간적인 생각을 하고 세상 욕심과 죄의 소욕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할 때 모든 인간적인 생각, 육신적인 생각이 물러가고 영적인 생각, 비전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Ⅱ. 베드로의 오순절 부활 메시지 (22-40)

베드로는 성령의 역사를 증거한 후 곧 이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생전에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그들 가운데 행하게 하심으로 그가 바로 약속된 메시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예수님을 로마인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사망권세에 매여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갑자기 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시편 16편에서 다윗이 주의 거룩ㄹ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다윗 자긴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미 죽어 장사되어 그 시체는 썩었고 그 묘가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거룩한 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 다. 다윗은 선지자로서 장차 그의 자손 중에서 오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예언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12사도들은 바로 이 일의 증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그들이 보고 들은대로 부어 주신 것입니다.(33)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그의 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34,35) 36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늘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메시지의 결론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주’란 신성의 대명사로서 하나님을 가리키고 그리스도란 약속된 메시야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시고 세상 만민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름다운 메시지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도록 도왔습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다”(23)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36) 베드로는 바로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외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너희가 죽였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바로 그들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나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입니다. 나의 교만의 죄, 불순종의 죄, 정욕의 죄, 배은망덕의 죄, 감사치 않고 불평한 죄, 안일의 죄, 이러한 나의 죄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메시지를 들은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내가 언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냐? 생사람 잡지 말라고 펄쩍 뛰었습니까? 아닙니다. 3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마음에 찔려 그들의 죄로 인해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가 어찌할꼬?” 이것이 진실된 회개의 자세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분명히 제시해 주었습니다. 38절을 보십히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우리가 믿음의 길에 들어가려면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구원에 이르는 관문입니다. 회개란 자신의 죄를 진실되게 뉘우치고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신앙고백하고 이제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증표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배 피로 죄사함을 받고 마음이 정결케 되면 깨끗한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내재하시게 됩니다. 성령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베드로는 여러 말로 확증하며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도록 권면했습니다.(40)

Ⅲ. 교회의 탄생 (41-47)

베드로의 부활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그날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되었습니다. 이로써 초대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42절로 보십시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첫째로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들의 모임이 말씀 중심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성경 공부하기에 힘썼습니다. 성도의 모입은 말씀 공부가 첫째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서로 사랑하고 말씀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모임만이 생명력이 넘치고 하나님이 쓰실 수 있습니다. 말씀 중심이 되지 아니할 때 자연히 영적 생명력을 상실해 버려 복이나 구하고 자기 만족이나 구하는 샤마니즘적으로 흐르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말씀공부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었습니다. 사랑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음식을 함께 먹는데서 오고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된장찌게를 끓여 놓고 서로 초대했을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할 수 없고 반드시 공동체를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말씀 중심으로 서로 사귀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셋째로 그들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개인기도, 새벽기도, 둘씩 기도, 합심기도, 만나면 기도, 헤어지기 전에 기도, 자기 전에 기도, 무시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자연히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사당이 놀라 도망가 버립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와 기도하는 모임을 귀히 쓰십니다.

이상에서 볼 때 초대 교회 특징는 말씀과 사랑과 기도입니다. 이 세가지가 삼위일체가 될 때 그 모임은 살아있게 됩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실제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사도들로 인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욕심과 이기주의가 사라졌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습니다. 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아름다운 신자의 공동체가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임을 통해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1990년도에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의 심령에 성령을 허락하셔서 비전에 충만한 인생을 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