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 5 강
비밀의 경륜
말씀 / 에베소서 3:1-13
요절 / 에베소서 3:8b,9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 개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독특한 은혜를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첫째는, 계시를 통해 그리스도의 비밀, 곧 복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받은 바 복음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 특히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임무를 맡은 것입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그가 받은 바 은혜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이를 전하는 사명을 맡은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라고 하면 주로 받는 것을 생각하고 주는 것은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생각하는 은혜의 개념에는 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는 받은 바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그 자체가 은혜였습니다. 바울이 이 은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환경이 좋은 상황에서가 아니라 로마 감옥에서 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은혜는 매우 값진 보화와 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기 때문에 감옥이 그를 괴롭히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은총의 장소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 감옥처럼 느껴져서 답답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환경이나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곳은 천국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에게 임하였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바울 (1-6)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3장을 시작합니다.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이러하므로'라는 말은 앞의 1,2장을 연결하는 말입니다. 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들이 무엇인가를 증거했습니다. 2장에서는 십자가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을 허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창조하여 화평케 하신 놀라운 역사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3장에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작정하셨던 계획과 목적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크신 계획 가운데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 되었다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the prisoner of Christ Jesus)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말한다면 그는 로마의 폭군인 네로 황제의 죄수였습니다. 당시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채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외롭고 슬프고 억울하여 복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인간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서 인간사를 주관하신다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롬 8:28).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그의 믿음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불후의 명작인 에베소서를 집필하게 하였습니다. 옥중 서신 중의 하나인 에베소서는 그의 가장 위대한 서신 중 하나로 평가되며, 또한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서신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으로 볼 때 절망적인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보면 희망적인 상황으로 바뀐다는 것을 배웁니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믿음으로 삶의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한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질병으로 반신불수 상태였습니다. 그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돈을 빌렸으나 이를 갚지 못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순간에 그는 믿음으로 악보를 펴놓고 창작에 몰입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세계적인 음악가 헨델이며, 그가 감옥에서 만든 작품은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할렐루야'였습니다. 죤 번연은 얼음장 같은 감옥에서 믿음으로 '천로역정'을 집필하였고, 밀턴은 시각장애인이었으나 믿음으로 실낙원을 집필했습니다. 루즈벨트는 소아마비에 걸려 휠체어를 타는 지체 장애인이었으나 믿음으로 절망을 딛고 미국 역사상 가장 절망적인 대 공항을 극복한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방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행 9:15),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다가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방인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고 거짓 증거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은 체포되었고 결국에는 이 서신을 쓰고 있는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행 21:27-36). 바울이 이방인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2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의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은혜로 바울에게 주신 사도직의 직분을 말합니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에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로 이 직분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1,2절에서 자신을 소개한 후 3-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비밀의 계시를 알려 주셨다고 말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여기서 말하는 비밀은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말이나 영어에서 비밀(mystery)은 어둡고 모호하고 은밀하여 설명할 수 없거나 심지어 파악할 수조차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헬라어의 비밀(mysterion)은 비밀이긴 하지만 더 이상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밝히 드러난 진리를 가리킵니다. 본래 이 용어는 이방인들의 신비주의적인 종교들의 은밀한 가르침, 즉 입교자들에게만 국한된 가르침에 대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초기 기독교의 이단인 영지주의에서는 입교자들은 입회식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오한 지식을 전수받게 됩니다. 그러면 입교자들은 무지한 다수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알도록 허락된 소수의 영적 엘리뜨가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비밀은 일부 영적인 엘리트에게만 알려진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공개된 진리입니다. 공개된 진리인데 비밀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인간의 지식이나 이해력으로는 결코 깨달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깨달아 알 수 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은 4절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고, 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가 그 원천이요 동시에 그리스도를 본질로 삼고 있는 특별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에 있었으나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늘 희망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로 주신 비밀을 글로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그 기록이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바울은 4절에서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록된 말씀, 즉 성경을 읽으면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그가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우리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읽기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고 구원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성경은 인생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어린이가 주일학교 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하늘나라 전화번호는 몇번이에요?" 교사는 어린이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습니다.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얘야, 하늘나라 전화번호는 66-3927번이란다." 어린이가 그 이유를 묻자 교사가 대답했습니다. "성경은 모두 66권이다. 구약성경은 39권이고 신약성경이 27권이지. 그 속에 하늘나라의 진리가 모두 담겨 있단다." 사람들은 가끔 114를 눌러 전화번호를 확인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방향을 가르쳐 주는 전화번호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이 나아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방향을 알려면 하늘나라 전화번호를 걸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요 체신부 장관을 지낸 존 워너 메이커는 부자가 되어 많은 선한 일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그가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일생 동안 투자를 많이 하여 수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내가 투자했던 것 중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열 두 살 때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 한 권을 산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다. 왜냐하면 이 성경이 오늘날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성경을 사랑하고 틈나는 대로 성경을 읽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애썼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조수아 스피드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요즘 저는 성경읽기에 몰두해 있는데 대단히 유익합니다. 당신의 이성으로 이 성경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도록 힘쓰고 신앙과 조화시켜 보십시오. 그리하면 풍성하고 더 나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놀라운 하늘나라의 비밀이 담겨 있지만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흔히 "말씀 속에 있는 특별한 말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말씀 속에 있는 어떤 특별한 구절이 개인의 상황에 새롭게 적용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로마서 13:11-14절은 말씀 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서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또 루터에게 있어서는 로마서 1:17절이 말씀 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읽는 중에 영적 눈을 뜨고 종교개혁의 역사를 창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사건 뿐만 아니라 평범한 실제 삶 가운데서도 성경을 읽음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 연약함을 극복하고 능력있는 인생을 살 수 있고, 우둔함을 극복하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무기력을 극복하고 스피릿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유혹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성령께서 역사하여 말씀 속에 담긴 놀라운 하늘나라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마음에 하늘 나라의 보화를 간직한 복된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5절은 그리스도의 비밀이 어떻게 알려졌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선지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아니라 신약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즉 복음은 그리스도 이전 시대(구약시대)에서는 일반 사람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나, 이제 그리스도 이후(신약시대)에는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하셨습니다. 바울에게도 계시로 알게 하셨습니다. 6절은 비밀의 내용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사도 바울은 '함께'라는 접두어를 세 번이나 사용함으로써 이방인이 유대인과 하나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방인들을 개나 돼지와 같이 생각했던 시대에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등한 자가 되어 동일하게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이는 이조 시대에 쌍놈이 양반과 동등한 자가 되어 동일한 특권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보다도 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는 곳마다 목숨을 내놓고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이유는 바울이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빈부귀천이나 신분고하가 없이 누구나 동등하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인종 차별, 신분 차별, 성별 차별 등과 같은 모든 차별이 철폐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둘째, 복음을 위임받은 바울 (7-13)
7절을 보십시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바울이 받은 첫 번째 은혜의 선물이 그에게 계시된 비밀이었다면, 두 번째 선물은 그에게 맡겨진 사역,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선물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계시를 받으면 무엇이나 된 양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위해서 계시를 이용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를 주신 것은 이를 독점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누어 가지라고 주신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복음을 위하여 ...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복음의 일군이 된 것은 자격이 있어서 되었거나 어떤 업적을 남김으로 공로로 된 것도 아닙니다. 이는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의하여 사역을 맡았고 또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그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바울은 8절 상반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된 것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최상급과 비교급을 합한 이중 비교급으로 가장 강한 표현입니다. '바울'이라는 이름은 로마식 이름이었는데 이는 '작은'이라는 뜻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나는 작다. 이름을 보아도 작고 키도 작고,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모든 성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다"라는 뜻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자",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 15:8,9),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위선이나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이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무익함을 뼈아프게 인식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과거 그가 예수님을 훼방하고 핍박하고 모욕하였기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였으나 그리스도의 넘치는 자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그의 겸손은 자신을 낮춤으로서 높이고자 하는 허위적인 것이나 병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데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겸손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될 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가치하고 비참한 죄인인가를 깨닫게 되고, 나의 나된 것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을 극소화하면서 자신의 직분은 극대화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위탁된 복음을 전파하는 특권적인 사역을 세 단계로 말하였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8b절을 보십시오.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여기서 '전하다'(preach)는 말은 '좋은 소식을 선포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매우 좋은 소식이 됨을 확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란 그리스도의 풍성이 측량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풍성이 다함이 없이 무한대로 크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는 부요함을 소유하고 계시고 또 나누어 주시는 데도 부요하심을 배우게 됩니다. 대개 부자들은 나누어 주기에 인색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는 자를 결코 궁핍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부요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후서 8:9절은 말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또한 고린도후서 9:8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며,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풍성한 선행을 행하기에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한 자원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 때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지혜보다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의술보다 인간의 의술을 의지하게 되면 메마르고 궁핍한 삶을 살게 되고 실패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자원을 의지했을 때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되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크신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셨고, 또 시퍼런 홍해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을 황량한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섬세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으며,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때를 따라 부족함이 없이 풍성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하시고 믿음으로 이를 쟁취하도록 하셨을 때 그들은 불신으로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40년간을 광야에서 유리 방황하다가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부요한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을 의지함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호흡이 코에 붙은 인간의 한계적인 능력이나 지혜, 인간의 의술을 의지하게 되면 반드시 궁핍을 맛보게 되고 결국에는 비참한 패배를 인생을 살게 됩니다.
둘째로, 바울은 이전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경륜'이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로서 '행정'(administration) '계획'(plan), 또는 '교제'(fellowship)라는 말로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비밀의 경륜이란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서 그 내용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할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교제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게 한다"는 것은 밝히고 계몽시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단지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계몽시켜 그 말씀을 이해하고 영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사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무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이를 깨닫도록 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위로부터 빛을 받고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 8:12)고 하셨고, 제자들에게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의 빛되신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이를 세상에 반사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우주적 세력들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여기서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은 선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각종 지혜란 '많은 빛깔'이란 뜻으로서 꽃 왕관이나 야곱이 요셉에게 입혀 준 채색 옷과 같은 수놓은 옷을 가리킵니다. 이는 교회 안에 각종 인종과 각종 문화가 채색 옷과 같이 아름답게 수놓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성원들은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 또한 교회의 각종 교제는 하나님의 각종의 지혜로서 매우 찬란한 지혜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은 옛 창조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그의 영광을 계시하셨는데 이제는 새로운 창조인 교회를 통하여 그의 지혜를 천사들에게 계시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축사가 어떤 집을 짓기 위해 건축설계를 미리 구상해 두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것입니다(11). 이로 인해 우주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입니다(1:10).
바울은 12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말해 줍니다. 과거에는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감히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잘못 나아가면 그 즉시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덧입음으로 죄사함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19,20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담대함이란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간구할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불평을 하기도 하고 별의별 간구를 다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부족한 기도를 다 들어 주십니다. 또한 확신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믿음으로 나아가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죄사함에 대한 확신과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확신을 말합니다.
바울은 1절에서 이방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가 되었다는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13절에서 양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개인적인 말로 끝맺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바울은 자신의 고난보다도 양들이 그의 환난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그들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인류 구원역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주적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역사란 His story, 즉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부터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를 계시하시고 이를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역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B.C와 A.D가 나뉘어 졌습니다. 세속 역사는 왕들과 대통령들, 정치가들, 장군들, 스타들과 같이 중요한 인물들에 그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성도라고 불리우는 보잘 것 없는 백성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하찮은 백성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매우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는 무명한 자 같으나 하나님께는 유명한 자들입니다. 또한 세속 역사는 전쟁과 평화조약에 중점을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선과 악의 전쟁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화평, 인간 상호간의 화평에 대한 화평의 복음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세속 역사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격퇴하고 그 영토를 확장하는 일과 나라들의 흥망성쇠에 중점을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국경도 없고, 결코 종말이 없으며, 복음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교회라고 불리우는 다국가적 공동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는 자들의 복음 전파를 통하여 그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고 계시며 장엄한 그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이를 전파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