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 View


디모데전서 3:1-16

by Mark Yang   05/01/2022   1Timothy 3:1~16

Message


디모데전서 제 3 강 

영적 지도자의 내면성

말씀/ 디모데전서 3:1-16
요절/ 디모데전서 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오늘 본문은 교회 내의 영적 지도자인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들의 도덕적 영적 자격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지도자의 내면성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위계 질서를 가지고 있는 군대나 직장과 같은 어떤 계급이 아닙니다. 이는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복음 역사를 섬기는 복음의 일꾼들을 말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만년 양으로 있을 수 없고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서 반드시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가 되려면 내면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영적 지도자의 내면성이 어떠해야 되는가를 살펴봄으로 이 시대에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감독의 자격 (1-7)

  감독은 장로와 같은 직책입니다. 우리는 '감독'이라고 하면 공장 감독과 같이 높은 위치에 서서 일을 잘 하나 못하나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사람이 연상됩니다. 그러나 '감독'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스코포스(ἐπίσκοπος,overseer)로서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봐 주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높은 교권적 위치가 아니라 섬기는 자의 직책입니다. 벧전 2:25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영혼의 목자와 감독은 동격으로서 감독은 바로 영혼의 목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혼의 목자는 어떤 내면성을 가진 자라야 합니까? 

첫째로,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섬기고자 하는 영적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이 말씀은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양무리를 섬기는 목자가 되고자 소원하다면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한다고 한 그 말은 참되도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일'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일반적으로 '선한 일'이라고 하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구제 사업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선한 일은 한 영혼을 살리고 키우는 일입니다. 세상에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일처럼 귀한 일은 없습니다. 본문에서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양무리를 섬기고 돌보는 감독, 곧 목자의 직분을 말합니다. 목자의 직분은 명예나 권세가 아닙니다. 이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희생과 헌신이 따릅니다. 황금과 같은 시간을 희생해야 하고 물질을 희생해야 하고 가정을 희생해야 하고 자신의 소중한 꿈을 희생해야 하고 심지어는 아무도 보상해 줄 수 없는 청춘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씀 공부를 하고 은혜를 누리기는 원하지만 목자의 직분을 감당하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이런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고 살리고 키우는 일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불사하고자 하는 영적 소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악된 인간의 본성은 희생하지 않고 쉽게 영광을 얻고 위대해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희생이 없이는 참된 영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치있고 고귀한 일일수록 더 큰 희생이 요구됩니다. 일제 식민 치하에서 독립 운동가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한 목숨 바치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전폭적인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든 특권과 영광을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높이 되고자 날카롭게 경쟁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또한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고쳐 주심으로 유대 교권 지도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으신 후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하나님의 양무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으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양들을 위해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본받은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리더들을 모아 놓고 고별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무가치하고 헛된 일을 위해 무익한 수고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는 일을 위해 진력합니다. 이 고귀한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하는 자가 영적 지도자의 자격이 있습니다. 

둘째로, 영적 지도자는 책망할 것이 없는 좋은 영향력의 소유자라야 합니다. 2-7절에는 영적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15가지 종목이 열거되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첫째 종목은 다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도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는 잘하지만 가정 생활이 좋지 않다거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 경고를 맞는다거나 직장에서 충성치 못한자로 낙인이 찍힌다면 영적 지도자가 될 자격을 상실해 버릴 것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완전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는 행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책잡거나 고소할 여지가 없는 좋은 영향력의 소유자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영향력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생활이 검소하고 사고가 건전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섬기고 희생하며, 힘든 일을 앞장 서서 함으로써 매사에 솔선 수범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좋은 영향력이란 하루 아침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에 한 사건 한 사건이 쌓여서 그 사람의 이미지를 형성해 나감으로써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기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어쩌다 한 두 번 희생적으로 남을 섬겼다고 해서 그 사람을 희생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희생적으로 남을 섬기는 생활을 할 때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그 사람을 희생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영향력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내면성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좋은 영향력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영적 지도자가 좋은 영향력을 소유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따를 수 없게 됩니다. 그때 자연히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가 부족하지만 좋은 영향력을 소유하게 될 때 그 좋은 영향력을 통해서 복음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영향력은 말없이 천리를 갑니다. 초창기 고려의대 복음 역사는 선배들이 열심히 목자생활 하면서도 공부를 잘 하였기 때문에 영향력이 좋아서 복음역사가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나 문학적인 데 소질이 있고 의대 공부에 별로 취미가 없는 한 두 사람이 헤매다가 UBF에 나와서 낙제를 함으로써 한동안 의대 복음역사는 전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계 수석으로 들어온 김아브라함 목자님이 신문에 인터뷰를 하면서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UBF 목자들이 놓일리가 없습니다. 지금 시카고에 있는 Esther Kim Jung 선교사님이 즉각 찾아가서 말씀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는 학창 시절 동안 믿음으로 살기 위해 남모르는 많은 아픔을 감당하면서 묵묵히 외롭게 투쟁했습니다. 이 한분의 좋은 믿음의 영향력으로 인해 지금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윤마리아 사모님 한 분의 좋은 영향력으로 인해 의대 자매님들 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믿음의 영향력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로, 영적 지도자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고, 가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 이혼이 급증하여 파괴된 가정이 날로 늘어가는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일부일처주의는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세우신 법칙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대로 한 남편이 한 아내를 사랑하고 한 아내에 대한 충성심을 가질 때 그 가정은 화목하게 되고, 자녀들은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 밑에서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일부다처주의나 또 이혼을 하여 가정이 파괴된다면 자녀들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비극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4절 말씀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이 믿음을 갖고 순종심을 가지도록 하는 자라야 영적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도 잘 돌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5). '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 하였고 또 속담에도 '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라고 하였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교회의 기초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정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말이 쉽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녀들은 인간의 힘으로 안됩니다. 아버지의 권위로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야 되고 자녀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저는 한동안 자녀들이 영적인 좋은 환경 가운데서도 왜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하는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고생을 별로 안하고 너무 좋은 환경 가운데서 지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세 선교사들을 돕는 가운데 이는 2세들의 공통적인 문제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자기중심성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얼마나 마음 고생을 많이 했는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대학생, 삼촌, 이모들과 생활하면서 생각하는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너무 유치하여 대화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집에서는 영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살다가 학교에 가면 지극히 인간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지내야 하는 것으로 인해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 때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자녀들의 마음에 믿음을 심어 주시고 친히 돌봐 주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넷째로, 영적 지도자는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제란 본래 음주의 절제에서 시작하여 생활의 모든 면에서 절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목자의 직분을 감당하려면 모든 면에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감정을 절제해야 하고 생각을 절제해야 합니다. 화가 날 때도 화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욕을 절제하고 욕심을 절제하고 잠을 절제하고 음식을 절제해야 됩니다. 무엇보다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여 상처를 준다면 상대방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깊이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힘이 되고 덕이 되는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절제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내킬 때는 양에게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고 사랑을 해 주다가도 힘들 때는 양이고 뭐고 모든 것을 다 팽개쳐 버리고 드러누워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자의 직분을 감당하려면 싫든 좋든, 마음에 내키든 내키지 않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나님 앞에서 꾸준히 감당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절제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절제하고자 투쟁하다가 잘 안되면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제를 배우지 못한다면 절대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절제도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덧입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절제의 영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께서 허락해 주십니다. 디모데후서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 곧 절제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로, 영적 지도자는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훌륭한 성경 선생이 되고자 하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고래로 나그네는 고아와 과부와 함께 사회적인 약자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들은 힘이 없고 차별을 받고 외로운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용하기 쉽고 함부로 대하기 쉽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외국에서 온 가난한 근로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이용하고 학대하는 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얼마 전에는 네팔인들이 명동 성당에서 데모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기꺼이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근본적으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인간애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가르치기를 좋아해야 하고 또 가르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위에 서서 남을 고쳐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이 참된 삶의 길인지 알지 못해 방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젊은이라도 기진하여 비틀거리며 방황합니다(암9:11-13).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줌으로써 말씀으로 내면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위로해 주고 힘을 주고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심어 주고 참된 소망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좋은 성경 선생이 될 수 있습니까? 좋은 성경 선생이 되려면 겸손하게 배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배우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결코 잘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잘 배워야 하고 또 상대방을 잘 배워야 합니다. 또한 좋은 성경 선생이 되려면 말씀이 없어 방황하는 양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보실 때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시고 해가 저물도록까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막 6:34). 

여섯째로, 영적 지도자는 관용해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만일 목자가 술을 즐기고 술에 취해 있다면 목자의 직분을 감당하기는커녕 자기 자신 하나도 감당치 못할 것입니다. 구타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혈기를 내어 상대방을 때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투지 아니한다는 것은 말다툼하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무엇보다 관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부드러운 마음이요 참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품는 마음을 말합니다. 영적 지도자가 율법적이 되어서 사람을 품지 못하고 꼬치 꼬치 대한다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괴로움을 당할 것입니다. 
  6,7절은 초신자가 아무리 능력이 많고 인간성이 좋고 모든 면에 합당하다 할지라도 영적 지도자로 세워서는 안됨을 말해 줍니다. 이는 교만하여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다'는 말에는 "흐리게 하다, 연기를 내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빨리 세우게 되면 무엇이나 된 줄로 생각하여 교만해져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되어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사람을 못쓰게 만들고 패망케 하는 무서운 파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빨리 세우는 것은 그 사람을 못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초신자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전에 뛰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초신자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생활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고 영적 지도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Ⅱ. 집사의 자격 (8-16)

  집사는 교회의 살림과 행정을 맡은 실무자를 말합니다. 선교사업부나 일용할 양식부나 소식부나 사무부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실무일을 맡은 자들을 말합니다. 감독도 섬기는 자이지만 집사도 섬기는 자입니다. 다만 집사는 감독보다 책임을 덜 맡고 있을 뿐입니다. 실무자도 감독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자격을 보면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집사의 자격에서 특징적인 것은 일구이언을 하지 말라는 것과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일구이언은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영적 지도자는 말에 일관성을 가짐으로써 신뢰성이 있어야 합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깨끗한 양심"이라는 상자에 "믿음의 비밀"이라는 값진 보물이 잘 보관되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비밀"이라는 것은 신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알려지지 않는 진리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 이해되어지고 전승되어지는 계시된 진리를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 때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를 세우려면 평소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상당 기간에 걸쳐 시험해 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세워야 합니다. 일이 아쉽다고 해서 빨리 세우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11절은 여집사의 요건을 말해 줍니다. 여집사는 남을 비방하거나 중상 모략해서는 안되고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합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하게 되면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또 자신에게도 믿음의 확신을 얻게 됩니다(13).

  15절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 목적입니다. 만일 바울이 지체하게 되면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이 어떤 곳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15). 2세기까지만 해도 일정한 교회 건물이 없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은 교회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 것은 죽은 우상들을 섬기는 이방 신전과 대조해서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존재케 하시고 생명을 유지시키시는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항상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분으로서 우리 인생들로부터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집을 세우는 데에는 필수적으로 기둥과 터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에 견고한 터를 가지고 또 세상에 대하여 진리를 선포하고 세우고 지지한다는 점에서 진리의 기둥이 됩니다. 교회는 진리에 기초하고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곳입니다. 만일 교회가 진리에 기초하지 못하고 진리를 선포하거나 수호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모임과 다를 바가 없다면 세상은 부패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짓과 부패와 대항해서 싸움으로써 진리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16절 말씀은 송영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라." 예수님은 성육신 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있는 존재인 천사들 앞에서도 영광을 얻으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음의 대상이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승천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 진리의 진정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세상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가장 확실하고 참된 것입니다. 복음 진리만이 사람을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복음 진리만이 참되고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 진리를 전파하고 지지하고 수호하는 거룩한 사명을 위해 부름 받은 복음의 일꾼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들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수준이 높은 내면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섬기는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