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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2:1-26

by Mark Yang   05/01/2022   2Timothy 2:1~26

Message


디모데후서 제 2 강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말씀/ 디모데후서 2:1-26
요절/ 디모데후서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젊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일군으로서 가져야 할 내면적인 자세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군인, 경기하는 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고난을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 힘써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히 살기를 원하고 고난받기를 싫어합니다. 우리 나라는 그동안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실로 많은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경제 기적을 이루어서 우리 나라의 국제적인 지위가 놀랍게 향상되어 머지 않아 선진국 대열에도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잘 살게 되자 힘들고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은 기피하고 고난을 싫어하는 현상이 도처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고난 없이 요령껏 살고자 하는 편의주의, 무사 안일주의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영적 소원이 사라지고 신자 수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기존 신자들마저도 개척 교회에 가서 힘들게 역사를 섬기기 보다 대형 교회에 가서 편히 신앙생활 하고자 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모임도 어느새 이 시대의 영향을 받아 수적으로는 크게 부흥한 반면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영적 사관학교로서의 특수성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군인 정신(soldier's spirit)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군인 정신을 충만히 덧입혀 주셔서 어려운 이 시대를 이기고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능히 섬길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1-13)

  1-13절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일군이 가져야 할 자세를 세가지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속에서 강해야 합니다(1). 1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왜 강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까?
  디모데는 성품이 온화하고 진실되고 충성된 자였습니다. 또한 눈물이 많은 자로서 목자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반면 내면이 연약하고 속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는 현재 에베소 교회의 책임 목자로 있었지만 연소하고(딤전4:12), 몸은 허약하며(딤전5:23), 성격은 소심하여 많은 고전을 겪고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에베소의 타락한 문화와 싸워야 했고 안으로는 유대 율법주의, 영지주의와 같은 각종 이단 사상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가 의지하고 존경하던 목자 바울은 네로의 박해로 인해 재투옥되어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언제 순교 당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박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복음을 저버리고 바울을 떠나갔습니다(딤후1:15). 이 소식은 디모데를 더욱 연약하게 하고 위축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에게 "강하라"(Be strong)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강해야 합니다. 강해야 복음의 외적 내적 원수와 싸울 수 있고 제자 훈련을 시킬 수 있습니다. 강해야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고 세상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강해야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영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병균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잠재해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물 속에도 있고, 우리가 숨쉬는 공기 중에도 존재하며, 심지어는 우리의 피부에도 항상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병균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몸이 강하면 병균이 몸에 침입해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지만 몸이 약하여 저항력을 상실하게 되어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불신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영적으로 건강한 인생을 살려면 내면이 강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역기를 들고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합니까? 물론 운동을 하여 육신이 강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육신이 강하다 할찌라도 영적으로 약하면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이기고 내면이 강해지려면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란 죄사함의 은혜요 부르심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내면이 약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알렉산더와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라도 중풍 병자와 같이 무기력하게 되어 버립니다. 죄 때문에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나아가서 진실되게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보배 피로 사죄의 은혜를 덧입게 되면 내면이 강해집니다. 
  또 부르심의 은혜는 복음의 일꾼이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부르심의 은혜가 없을 때 어려운 일에 부딪치게 되면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부르심의 은혜가 있을 때 어떤 어려움도 해쳐 나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습니다. 그는 춥고 외롭고 슬픈 생각으로 인해 마음이 연약해져서 슬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연약해 지지 않고 백전노장과 같이 강했습니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충성된 자에게 부탁해야 합니다(2).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가 은혜 속에서 강하게 된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여기에는 복음 역사를 이루는 원칙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디모데는 딤후1:13, 14절에서 복음 진리를 지키라는 사명을 부탁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 진리를 수호할 뿐 아니라 전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4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맨 먼저 복음은 그리스도에 의해 바울에게 맡겨졌습니다(딤전1:12). 다음으로 바울에게 맡겨졌던 복음은 디모데에게 맡겨졌습니다.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 전달된 복음은 사적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증인 앞에서 공적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이제 디모데는 이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 복음을 맡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복음이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서 계승되고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가는 것을 복음의 사도적 계승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올림픽 성화의 횃불이 성화 주자의 손과 손을 통해 전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복음의 횃불을 들고 달리는 성화 주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복음의 횃불을 꺼뜨리지 아니하고 온전하게 보존하였다가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 전달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충성된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이며 왜 그들에게 부탁하라고 했을까요? 충성이란 faithfulness로서 변함이 없는 신실성을 의미합니다. 또 충성에는 책임성과 신뢰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습니다. 충성된 자는 좋으나 싫으나 꾸준히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합니다. 충성된 자는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합니다. 일을 맡으면 상황을 핑계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책임성 있게 해 냅니다. 이런 자는 신뢰할 만합니다. 이런 자는 참으로 귀합니다.
  그러나 충성심이 없는 자는 처음에는 잘하다가 용두사미격으로 뒤에는 흐지부지해 버립니다. 책임감이 없습니다. 이런 자는 신뢰성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이런 자는 아무리 머리가 좋고 능력이 많고 말씀을 잘 가르쳐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좀 부족할지라도 충성된 자를 귀히 쓰십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배교치 않고 믿음을 지킨 충성된 자들을 통해서 복음이 계승되었습니다.

셋째, 고난을 사랑해야 합니다(3-13). 바울은 3-6절에서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고난을 사랑해야 함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① 군사 비유: 3절을 보십시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사도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그의 영적 신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주 신자를 군인에 비유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군사된 자'라고 하였고(빌2:25), 아킵보를 '군사'라고 불렀습니다(몬1:2).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의 악과 유혹, 각종 이단 사상과 싸우는 주의 군사들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수동적으로 고난을 감당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난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훌륭한 군인으로 빚어지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이 요구됩니다. 이 훈련기간 동안 심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때로는 인간 이하의 모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두려워 훈련을 거부한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강하고 훌륭한 군사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은 그의 인간 조건에 달려 있지 않고 전적으로 훈련에 달려 있습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Disciples are not born but made)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자는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훈련은 고난 자체입니다. 신병 훈련소에서 받는 P.R.I라는 훈련이 있습니다. 훈련병들은 이를 피가 튀고 알이 배기고 이가 갈리는 훈련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훈련에 익숙지 않아서 훈련을 좀 피해 볼까 머리를 굴려 보지만 노련한 조교들에게 걸려 몇 배나 심한 훈련과 기합을 받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연약한 자들도 어떤 고난도 극복하고 적을 무찌를 수 있는 무적의 용사로 빚어지게 됩니다. 또한 군사는 훈련이 끝난 뒤에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 가는 과정에서 숱한 고초와 시련을 겪습니다. 또 전쟁이 일어나면 죽음을 무릅쓰고 원수와 싸워야 합니다. 한마디로 군인 생활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이처럼 군사는 고난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군인 생활은 결코 편안하거나 안락하지 않습니다. 군인이 고난을 싫어하여 회피하고 안락을 추구하면 좋은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군인이 되려면 반드시 고난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 외적 내적으로 많은 반대와 비난 조롱을 받게 되고 원수의 훼방과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복음을 위해 고난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사랑하게 될 때 고난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못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으로 살아 있게 하고 영적 기쁨으로 충만케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사랑할 때 고난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고 우리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조각하게 합니다. 

  요즈음 우리 시대는 먹고 살만하게 되자 어렵고 힘든 일은 기피하고 쉽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풍조가 사회에 만연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대가 어떠하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사랑하며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UBF를 영적 사관학교로 세우시고 많은 훈련을 통해서 주님께서 쓰실만한 수많은 영적 군사들을 배출케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모든 학생복음 운동이 침체 상태에 있는 가운데서도 큰 성장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지금까지 71개국에 950명이 넘는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임이 커지고 수가 많아지면서 훈련이 등한시되고 점차 우리 모임의 특수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 마음에도 조금씩 주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고난을 감당하기 보다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이 순간순간 파고 들어오고 있는 것을 봅니다. 목자 생활이 너무 여유가 없는 것 같고 조용히 책읽고 차 마시며 조금은 여유있는 목자 생활을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순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저의 신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군인이요, 지금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전쟁 중임을 깨닫고 쉬고 싶은 마음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가하게 쉬고 여유를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사랑하며 복음을 위해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얼마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위해 제네바에 갔던 대표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fast food점에서 햄버거를 주문해서 먹으며 불꽃튀는 협상에 임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일과 후에도 보따리를 집에 가지고 가서 쉴틈없이 협상 대비를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벌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부름 받은 우리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일찌기 기독교의 꽃을 피웠던 서구라파 국가들이 영적으로 몰락하고 미국마저도 그 영적 영향력을 상실해 감으로 영적으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백성을 오랫동안 연단하셨다가 100년 전에 복음을 허락하시고 이제는 복음의 꽃을 활짝 피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한국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사 세계 역사에 새로운 문명을 창출하는 역사의 주역으로 쓰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동안 특히 U.B.F를 통해 세계 지성계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역사를 이루었다고 해서 자만하고 안일해져서 투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원대하신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없고 또 더 이상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는 전보다 더 고난을 사랑해야 하고 더 투쟁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세계는 UR협상 타결로 인해 이제는 온 세계가 무한 자유경쟁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국제화, 개방화를 지향하며 엄청난 속도로 변천해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강하고 힘있는 자만이 살아남고 연약한 자는 도태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영적으로 강하게 무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무기인 말씀의 검을 날카롭게 갈아야 합니다. 날카로운 말씀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또한 국제 언어인 영어도 정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전보다 더 많이 십자가를 감당하고 더 많이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우리 시대에 놀라운 새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4a절을 보십시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군사가 국가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는 시민으로서 일상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상생활에는 개인의 인격과 자유와 권리가 존중됩니다. 그러나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와 인격은 다 없어집니다. 이는 국가의 일을 절대적으로 생각하고 그 일을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인은 입대와 함께 오직 군인 생활에 전력투구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를 중심한 생활이 아니라 예수님과 복음 역사를 중심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와 복음 역사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꿈과 이상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한마디로 자기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외에는 얽매이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되는 것입니까? 4b절을 보십시오.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군인 생활의 목적은 군사로 모집한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West Point 미 육군사관학교의 표어 중의 하나는 '국가'(Country)(3대 표어는 Duty, Honor, Country)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때 자족하거나 교만해지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하나님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유익을 드릴 수 있을까? 연구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성장하게 됩니다. 

② 경기자의 비유: 사도 바울은 군사에 이어 복음의 일군을 경기하는 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요." 헬라 로마 시대에는 4년에 한 번씩 올림피아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경기가 유명했습니다. 이때 주로 레슬링, 권투, 투창, 투원반, 마차 경기, 달리기, 넓이뛰기 이외에 음악과 시 경연이 실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에 참석하는 자들은 승자의 면류관 곧 월계수 관을 쓰기 위해 고된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 훈련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죽는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전 앞에서 제우스 상을 향하여 최소한 6개월 이상의 훈련 과정을 마쳤노라고 선서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경기자는 다른 일을 하면서 취미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전부와 온 힘을 쏟아 붓는 전문 경기자여야 했습니다. 당시 모든 경기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는데 경기자가 정해진 규칙을 좇아 경기해야 하지 규칙을 어기고 반칙을 하면 승리의 면류관을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규칙 없이는 월계관도 없다."는 말이 속담처럼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88 올림픽에서 벤 죤슨이 100m 세계 기록을 깨고 인간마하라고 하였지만 규칙을 어기고 약물 복용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경기하는 자는 비록 힘들고 지루하더라도 정해진 법대로 경기를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일군이 복음 역사를 감당하고자 할 때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의 법, 믿음의 법, 사랑의 법, 순종의 법 등 법(Rule)에 따라서 해야 합니다. 
  법을 지키며 경기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특히 극기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더 연습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10분을 더하라." 우리가 잘 아는 황영조 선수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기까지 혹독한 강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현지 훈련 때는 주당 360Km(하루 60km)를 뛰는 지옥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여러번 느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강훈련을 통하여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프로야구 빙그레 이글스의 장종훈은 원래 물 주전자와 볼 박스를 나르던 월급 30만원의 연습생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잠든 자정에서부터 새벽 2시까지 타격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의 손바닥은 지독한 훈련과 연습으로 두껍고 징그럽게 못이 박혔습니다. 해태의 김응룡 감독은 야구 경력을 통틀어 이런 선수는 처음 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피나는 훈련 끝에 만22세에 홈런왕이 되었고 2년 연속 프로야구 최고 선수(MVP)에 뽑혔습니다. 이처럼 경기자가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피나는 자기 훈련을 하는 고난이 따릅니다.

③ 농부 비유: 6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계속하여 복음의 일군을 농부에 비유합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아마도 가장 수고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농부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농부들은 겨울 동안에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고, 봄이 오면 밭을 갈고 거름을 주어야 하며 그리고 준비가 다 되면 파종을 합니다. 여름 내내 쉬지 못하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김을 매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고 물을 대주어야 하기 때문에 해수욕이나 등산 같은 것은 꿈에도 못 꿉니다. 가을이 되면 해충들을 잡고 새들을 쫓느라 정신이 없으며 그러다가 늦가을이 되면 주름살을 펴고 추수의 기쁨을 마음껏 맛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일꾼은 농부처럼 수고해야 합니다. 수고하지 않고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거나 신실한 양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당 신앙입니다. 게으름은 큰 죄입니다. 게으른 자는 절대 수확할 수 없습니다. 여름이면 덥다고 쉬고, 겨울이면 춥다고 자고,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다고 논다면 수확기에는 비참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열매를 맺으려면 무수한 눈물과 땀과 피가 요구되고 기다리며 인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참으로 열심히 수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심방하며 개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양무리들을 섬기시느라 마른 넝쿨이 되도록까지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노력 없이 수확을 거둘 수 없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얻습니다. 

④ 고난을 통한 영광(7-13): 7, 8절을 보십시오.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내게 총명을 주시리라.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바울은 먼저 디모데에게 자신이 말한 비유들을 깊이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깨닫는 영을 주실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세가지 비유는 고난을 통해 영광을 얻게 된다는 일반적인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군사 비유는 고난을 사랑해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고, 경기하는 자의 비유는 피나는 훈련을 통해 규칙대로 할 때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고, 농부의 비유는 땀흘려 열심히 일할 때 수확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을 깊이 생각해 볼 때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디모데가 고난 중에서 기억하고 붙들어야 할 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모진 고난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바울은 이어 9-13절에서 자신의 간증을 통해 복음의 일군들이 받게 될 영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현재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있었고 얼마 후에는 순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고난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고(골1:24), 그의 죽으심을 본받고자 하는(빌3:10) 거룩한 열정 때문이였습니다. 그가 고난을 받은 목적은 첫째는 복음을 위해서요, 둘째는 택하신 자의 구원과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 곧 그가 고난을 받음으로 모든 믿는 자들이 바울을 바라보고 본받고 고난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도록 함이었습니다. 그는 주와 함께 고난을 받는 자들이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주와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11-13). 우리가 고난 받는 것은 주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면 함께 살 것입니다.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예수님과 똑같이 영광스런 부활의 형체를 덧입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면 주께서 우리를 끝까지 돌보실 것입니다. '고난을 통한 영광!' 이것이야말로 신앙생활의 원칙이요, 생명 역사의 비밀입니다. 

Ⅱ.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14-26)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첫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해야 합니다(14-19). 복음의 일꾼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양무리들에게 먹이는 일입니다. 여기서 옳게 분변한다란 말은 '바르다'의 뜻인 '오르도스'(     )와 '자르다'의 뜻인 '템노'(     )의 합성어로서 결국 "바르게 자르다" (cut straight)의 뜻입니다. 이 말은 진리의 말씀을 '바로 해석한다. 정통적으로 풀이한다'는 뜻입니다. 또 이 말은 '길을 바르게 개통한다'는 뜻으로서 여행자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나갈 수 있도록 구부러진 길을 똑바로 뚫는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한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가르침으로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릇된 이단 사상에 빠져들지 않고 복음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복음의 일꾼은 말씀 연구를 많이 해서 실력있는 말씀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 역사는 말씀 연구에 비례합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말씀을 올바로 생명력 있게 파는가에 따라 복음역사도 달라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각종 이단과 퇴폐적인 사상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사람들은 구정물을 많이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은 메마르고 곤핍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갈급해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아모스의 예언대로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영적 기근의 시대입니다(암 8:11-13). 사람들은 참된 복음을 듣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을 원합니다. 분명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기를 원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파는 사명은 세상의 그 어떤 사명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올바르게 파서 증거함으로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말씀의 종이 되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 센타에서 겨우 인정받는 말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말씀의 종이 되기 위해서 자기를 쳐 복종시키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려야 합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이란 당시 부활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들의 말입니다. 바울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후메네오와 빌레도 같은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보는 이원론자들로서 육체를 악하게 여기고 장래의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그럴듯하고 멋있는 것 같았지만 점점 불경건으로 나아가고 하나님 없는 불신앙으로 인도하였습니다(16). 또한 저희의 말은 독한 창질이 살을 썩게 하듯이 사람들의 영혼과 정신을 파괴시키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늘날도 말은 멋있는데 부활의 진리를 무너뜨리는 독한 창질과 같은 사상이 있습니다. 불트만의 비신화화 같은 사상들입니다. 불트만은 성경이 신화적이 시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성경의 표현은 신화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그 표현 뒤에 숨어있는 진리를 파악해야 한다 곧 비신화화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동정녀 탄생, 부활의 진리들을 부인함으로 복음 신앙을 파괴하는 복음의 원수였습니다. 말씀의 종은 바로 이런 이단들을 경계하고 복음 진리를 사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9절을 보십시오. 복음의 원수들은 부활의 진리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고자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활의 진리 위에 세우신 교회는 절대로 무너지지 아니하고 견고히 서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고 보호하시고 끝까지 지키시기 때문이요, 또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20-22). D.L 무디는 하나님은 금그릇이나 은그릇이 아닌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꾼이 되려면 불의에서 떠나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청년의 정욕이란 단지 청년의 성적인 욕망만이 아니라 이기적인 야심,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 등 청년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비정상적인 욕망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청년의 정욕을 적극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합니다. 이때 말씀의 권위도 생기고 능력있는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온유해야 합니다(23-26).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꾼이 되려면 가르치는데 있어서나 징계함에 있어서나 온유함으로 해야 합니다. 절대로 감정을 부리면 안됩니다. 온유함은 주님의 종의 특징입니다. 온유함으로 할 때 혹 하나님이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좇게 하실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가져야 할 내면적인 자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1994년 새해에 군인 정신으로 새롭게 무장하여 멸망해 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