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제 3 강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 디모데후서 3:1-4:8
요절/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Sola Fide'(오직 믿음), 'Sola Scriptura'(오직 성경)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종교 개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성경 한 권을 붙들고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성경 한권을 굳게 붙들고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 자기가 사는 시대문제를 극복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점점 그 형편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시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못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의 가치를 재 발견하고 어떤 자세로 이 시대를 극복할 것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한 분 한 분이 이 시대를 감당할 만한 위대한 성경 선생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3:1-17)
1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네가 이것을 알라" 이 말씀은 진리에 대한 반대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시대의 변치 않는 영속적인 특성임을 알고 적극적으로 시대의 죄악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말세란 광의의 의미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말세인데 이 시대는 말세 중에서 말세인 "말세지말"이라고 합니다. 또 고통하는 때란 영어 성경에서는 'terrible times', 'hard times', 'perilous times'(위험한 때), 또는 'time of stress'라고 했습니다. 이는 말세가 무섭고도 소름끼치며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는 때임을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장차 첨단 과학 문명과 기계 기술의 발달로 다가오는 21세기에는 '테크노피아', '유토피아'가 이루어지며 살기 좋은 이상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은 결코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동안 많은 진화론자들, 인본주의자들, 사회 과학자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왔지만 이들의 예상은 항상 빗나갔습니다. 중국의 임어당은 인간은 무한한 능력으로 세상을 얼마든지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30년동안 인본주의를 신ㅂ몽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그 뜻대로 주관하고 계심을 깨닫고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작가들도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시대의 고통을 그들의 작품 속에서 리얼하게 묘사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는 날고 더하여 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날카로운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말세의 현상을 19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를 살펴 볼 때 우리는 인간이 고통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모든 고통의 원인은 '자기 사랑'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의 본질을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고귀하고 거룩한 계명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보다 자기를 더 사랑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전통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물질화되고 경쟁사회가 되었습니다. 인심은 각박해지고 더욱 이기적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시대는 UR로 인해 더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사회가 되어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더 냉혹해지는 현실 속에서 남을 짓밟고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스트레스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사랑할 때 행복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자기를 사랑하게 될 때 필연적으로 죄를 낳게 됩니다. 이기주의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성이 파괴되고 대인 관계의 균형을 잃고 자의식과 불안, 자기 폐쇄적 현상이 나타나 끝내 깊은 고독과 죄의식 속에 자아가 붕괴되어 버립니다. 또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게 될 때 반드시 돈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 때문에 죄를 짓고 돈돈돈 하며 살아 갑니다. 돈이 있으면 염라대왕 문서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시대 속에 가장 깨끗해야 할 Campus마저도 돈의 유혹에 빠져 무더기 부정 입학을 시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황금 만능주의 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꾸정물을 퍼주어도 먹는 돼지처럼, 사기도 치고 양심도 팔고 마음의 순결을 버려 창녀도 되고 인신매매도 합니다.
둘째로, 말세에는 비 인간화가 됩니다. 비 인간화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잘났다며 자긍하고 교만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참 행복을 얻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을 훼방하게 되고 부모를 거역하게 됩니다. 그리고 냉혈 동물처럼 무정해지고 짐승처럼 그 성품이 사나워집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이 정욕적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음란 비디오가 너무나 깊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음란비디오는 이 시대가 탄생시킨 정신적 AIDS라 불릴 만큼 한번 여기에 빠져들면 정신이 황폐해지고 건전한 분별력을 상실하고 정욕 귀신에 들리고 그 인생 자체를 망쳐 버립니다.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마약 중독자가 되어 아무 쓸모없게 되어 버립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셋째로, 말세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니' 6, 7절은 이러한 예로서 영지주의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것은 선하지만 육은 악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은 악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쾌락에 탐닉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을 가르친다는 미명 아래 자매님 집에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여 함께 음란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유혹에 빠지는 자들은 아무리 배워도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영적인 성장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우리는 더러 신문지상을 통해서 종교 지도자들의 범죄 기사를 읽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세상 다 되었다"고 하며 깊은 한숨을 쉽니다. 미국의 유명한 TV설교가가 비서와 놀아난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타락할 때 이 시대는 깊은 어둠과 죄악 속에 빠져들고 글자 그대로 terrible한 무섭고도 끔찍스런 시대가 되어버립니다.
사도 바울은 시대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 후 디모데에게 '그러나 너는 이 시대가 어떠하든 달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원어에 보면 10절 첫 머리에 '너는 그러나'(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시대가 아무리 죄악되고 타락하더라도 '그러나 너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가 죄악된 이 시대에서 어떻게 목자생활을 하였는가를 생각하고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서 그는 자신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에 대해서 본이 되었음을 상기시키고, 11절에서는 그가 이런 신앙생활을 했을 때 받은 핍박과 고난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는 당연히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핍박 가운데서도 함께 하셔서 다 건져 내 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디모데는 시대형편이 어떠하든 주님을 알고 바울을 본받아 열심히 목자생활을 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 시대 사람들의 죄악상에 대해서 한번 더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악한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나빠져저 더욱 악하여져서 사람들을 속이고 또 자신도 속습니다. 이렇게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디모데는 이런 시대에 맞춰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여기서 배우고 확신한 일이란 성경 말씀을 가리킵니다. 또 거하라는 것은 "계속 머무르라", "굳게 붙들라"는 뜻입니다. 이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일 수록 성경을 굳게 붙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붙들어야 합니까? 15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에 가 보면 사상서, 교양서, 참고서, 시집, 만화책 등등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또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발간되어 나옵니다. 얼마전 베스트 셀러 중에는 라즈니쉬가 쓴 '배꼽'이라든가 이계진 아나운서가 쓴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Y.S는 못말려', '반갑다, 논리야' 하는 책들이 잘 팔린다고 합니다. 요즘 정연우 목자님은 총 36권으로 되어있는 '대망'을 다 읽은 성취감에 뿌듯해 있는 듯합니다. 물론 이런 책들도 잘 읽어보면 나름대로의 유익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서 우리를 구원에 하는 책은 오직 성경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구원의 도리가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죄와 사망이 주는 고통 속에서 끝없이 구원을 갈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어떤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죄 가운데서 고통하며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 인생들에게는 실로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과거 정욕과 허무와 죽음으로 인해 고통하였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학, 철학, 종교서적들을 읽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성경공부했을 때에야 비로소 이런 모든 문제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박조환 목자님도 성경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이 분은 과거 남포동에서 한가닥 하던 자로서 세상에서 아무도 감당치 못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성경 공부를 통해 자신이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고귀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통해서 과거의 모든 죄에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고 이제 미국 선교사로 나아가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 성경 말고 다른 책에서 구원받은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Y.S는 못말려'를 읽고 구원받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교만한 미국, 독일의 지성인 뿐만 아니라 아마존 밀림의 원시인이라도 성경을 배움으로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비로소 구원받고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는 곳일수록 거기에는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초기에 우리나라 성도들이 사랑방에 모여 열심히 성경공부를 한 결과 엄청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서 우뚝선 영적인 제사장 나라가 되었습니다. 미국도 개척 초기 때부터 열심있는 청교도들의 부지런한 성경공부로 말미암아 이를 기초로 활발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고 나라가 번영하고 세계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 만민 구원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1960년대에 들어 와서 학교에서 채플을 없애고 성경도 멀리하게 되면서 타락하고 이제는 타락을 수출하는 퇴폐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가 어떠하든 더 열심히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여 위대한 1:1 성경 선생이 되어 말씀을 열심히 가르칠 때 구원 역사는 반드시 흥왕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성경은 약 1600년에 걸쳐 40여명의 각기 다른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거기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고 모순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상세히 써 있고 천지창조, 동정녀 탄생, 성육신,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길 등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는 성경은 인간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말은 영어로 God breathed로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무디에게 와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 무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어 갈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깊은 감동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 갈 때 이전에 깨닫지 못하던 죄를 깨닫고 자기가 얼마나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는가 회개도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증오했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고, 남을 속인 죄를 회개하고, 선을 베풀고, 목자의 심정도 배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사람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갠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청년이 정욕을 극복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도 성경 말씀을 붙드는데 있습니다. 시편 119편 9절은 말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성경을 외면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은 꼭 읽어보아야 하는 중요한 책이라고 여겨 1권 정도는 삽니다. 그러나 제대로 읽는 사람은 희귀합니다. 급변하는 과학 문명 시대에 살다 보니 성경은 수천 년 전에 쓰여진 낡은 책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책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신세대, X세대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들 역시 인간이요 죄에서 구원받아야 할 죄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권의 책, 구원의 진리와 능력을 주는 성경 밖에 없습니다. 미국 NASA에서 머큐리와 제미니 계획의 총 책임자였던 월터 F 버크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과학이나 우주 탐험에 관한 사실적인 기록들이 나로 하여금 성경을 멀리하거나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게 하는 그 어떤 점도 발견하지 못하고 나는 지금 성경을 전보다 더 많이 읽고 있습니다. 과학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 인생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나는 성경을 통해 얻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성경은 가장 현대적인 책이요 필수적인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더욱 확신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세에 이렇게 고통하는 때에 우리 인류가 나아갈 길은 "오직 성경" 뿐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성경을 펼쳐 읽어 나갈 때 거기에 인류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유능한 1:1 성경 선생으로 성장해야 하는 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자만이 그 시대의 목자가 되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죠지 워싱턴이라든가 아브라함 링컨도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고 성서적 가치관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정치가라기 보다는 목자로서 그 백성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선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정치가이든 사업가이든 어디에 있든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성경 선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죄로 고통하고 있는 한 영혼 한 영혼을 1:1로 인격적으로 감당하며 말씀으로 섬기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1:1 성경선생이야말로 이 고통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1:1 성경 선생은 그 어느 직분보다도 더 위대합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보다 열심히 말씀을 배움으로 이 시대 캠퍼스 영혼들을 위한 1:1 성경 선생으로 자라고자 하는 충만한 소원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4:1-8)
사도 바울은 3장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시대의 문제와 이러한 시대에 오직 성경 말씀만이 사람을 구원하며 온전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말씀을 어떠한 자세로 전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1절과 2a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사도 바울은 한마디로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목자로서의 권위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엄위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곧 오실 예수님을 빌어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요 그리스도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언자로서 신적 권위를 담아 이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외함으로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전파할 때 어떤 자세로 전해야 합니까? 2절을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권하라."
첫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말씀은 "기회가 주어지든지 주어지지 않든지, 조건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라는 뜻입니다. 또한 "항상 힘쓰라"는 말씀은 때가 없으면 때를 만들어서라도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는 영어로 in season and out of season 입니다. 말씀 전파에는 때가 따로 없습니다. 계절이 따로 없습니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한 여름에만 장사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각종 매스컴으로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선전하고 한 겨울에도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서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팝니다. 하물며 말세에 이 고통하는 때에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계절을 따라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전도자가 상황이 좋지 않으니 "아, 때를 기다려야 되겠군" 하고 말하는 것은 가장 비성서적인 말입니다. 육사교육에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군사는 말씀을 전파할 때 무슨 이유도 달지 말고 안되면 되게 해서 말씀을 전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년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 전파에 힘쓰는 한해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시험 기간은 말씀을 전파할 때를 얻기 힘듭니다. 그러나 시험 때에 맞게끔 10분에 공부할 수 있는 짧은 문제, special food 등을 만들어 말씀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축제 때에는 진부한 캠퍼스 축제에 대해 참신한 영적 축제로 도전하여 말씀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방학 때는 winter school, summer school을 만들어 집에 있는 양들을 불러내어 하루 종일 양들과 함께 하며 말씀을 전파할 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수업이 끝난 저녁 시간에는 양들이 없어 말씀 전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이나 기숙사에 가면 양들을 떼로 만나 말씀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전도인은 상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전파할 수 있도록 상황을 좌우해야 합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자세와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을 전파할 때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지금 브라질에 가 계신 Pablo 오 선교사님은 바쁜 외무부 생활 가운데서도 퇴근 후에는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시기 전에 꼭 심야 도서관 심방을 하므로 양을 얻고 1:1을 하며 제자를 양성하며 우리에게 많은 본이 되었습니다. 백승원 목자님도 직장을 다니는 상황에 굴하지 아니하고 직장에서 그 짧은 30분간의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group study를 이루고 퇴근 후에는 leader들과 기도모임을 이루고 양의 집을, 기숙사를 심방하며 양을 얻고 1:1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자세와 심령으로 말씀을 전파할 때 새 역사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1:1전투입니다.
둘째, 여러가지 모양으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2b을 보십시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우리가 말씀을 전파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반발하기도 하고, 대적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듣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허탄한 이야기란 당시의 근거 없는 신화나 전설을 가리킵니다. 요즈음도 사람들은 성경 말씀보다 단, 선, 심령 과학, 요가, 마인드 콘트롤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또 난센스 퀴즈, 최불암 시리즈, 연예계 스켄들 등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진지한 대화보다 농담이나 음담 패설을 즐기고, 가볍고 부담 없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혹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전하면 "그렇게 심한 말을?" 또 성경에 구원의 지혜가 있다고 하면 "그렇게 깊은 뜻이?"하면서 웃어 넘기고 맙니다. 도대체 심각하고 진지한 말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양들을 섬기려면 화가 나고 속이 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뼈저리게 회개하도록 경책해야 합니다. 또한 죄를 짓기 전에 미리 경계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위로하며 권하기도 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별짓을 다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6-8절에서 한 위대한 전도인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의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6-8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관제란 제물 위에 술을 붓는 제사로서 사도 바울의 헌신적인 목자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는 일생을 하나님을 위해 산 제사로 남김없이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조금의 슬픔이나 후회나 아쉬움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죄와 사탄과의 끊임없는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하고도 고귀한 싸움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이는 사명을 다 완수했음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나 그는 어떤 유혹이나 핍박이 있었어도 결코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았고 우리 주님께 대한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는 이제 이런 삶을 산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된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죽음을 앞두고 슬퍼하고 절망하기 보다 오히려 소망에 불탑니다. 그의 모습은 힘들고 치열했던 싸움을 마치고 이제는 승리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는 개선 장군과 같습니다. 슬픔이나 후회나 절망보다도 자랑과 승리와 소망과 영광이 가득찬 인생,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시대의 살 길이 오직 말씀 전파에 있음을 배웠습니다. 말씀을 맡은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새해에 우리는 말씀 공부에 더욱 힘을 써서 능력있는 1대1 성경선생으로 성장하여 위대한 1:1전투를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서 충성할 때, 하늘 나라에 개선하는 그 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영광의 그날까지 충성스럽게 전도인의 직무를 감당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