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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1-21

by Mark Yang   05/04/2022   Daniel 1:1~21

Message


다니엘서 제 1 강

뜻을 정한 다니엘

말씀: 다니엘 1:1-21

요절: 다니엘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스노빔 고돔! 이 말은 러시아어로 Happy New Year!입니다. 오늘은 새 해 첫 주일입니다. 새해에 한 분 한 분의 심령에 새 믿음과 새 마음과 새 소망을 충만히 허락해 주시기를 빕니다. 특히 선교 일선에서 충성하시는 선교사님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다니엘서는 B.C 530년 경 이스라엘의 바벨론 유수 기간 중에 기록된 구약의 묵시록입니다. 여기에는 세상 나라의 장래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은 인간 나라를 그 뜻대로 다스리시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6장은 역사적 내용이며, 7-12장은 예언적 내용입니다. 다니엘서 말씀 공부를 통해 이 시대를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니엘은 모든 학문과 재주에 뛰어난 학자요, 절망적인 시대에 비전에 불타며 장래 인류 역사를 내다 본 위대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양조에 걸쳐 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 원년까지 왕궁의 고관직을 지낸 지혜롭고 용기 있고 능력 있는 탁월한 정치가였습니다. 대개 정치가들은 권모술수가 많아 신뢰하기가 힘듭니다. 그러

나 다니엘은 원수들이 아무 고소할 틈을 찾지 못할 만큼 아무 허물이 없고 충성된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특히 그는 기도로 모든 난관을 타개해 나가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 와서 초기 유학생 시절 어떻게 믿음의 중심을 지켰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인 뜻을 정하고 출발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환경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겼습니다. 우리도 새해를 출발하면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인 뜻을 정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한 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바벨론 궁중 장학생이 된 다니엘과 그 친구들(1-7)

1,2절을 보십시오. 때는 유다왕 여호야김 3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에워쌌습니다. 여호야김은 요시야의 아들로서 본명은 엘리아김입니다. 요시야왕은 유다 역대 왕 중에서 보기 드문 선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애굽왕 바로느고가 앗수르왕을 치려고 유대를 통과하는 것을 막다가 아깝게도 므깃도에서 전사했습니다. 백성들은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바로느고는 여호아하스가 왕이 된 지 석 달만에 폐하고 여호야김을 대신 왕으로 세웠습니다(왕하23:29-34). 그 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바로느고를 격파하자 여호야김은 바벨론왕을 섬겼습니다. 그는 3년을 섬기다가 배반했습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여호야김을 사로잡고 다수의 젊은이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왕하24:1-4,대하36:5-7). 이것이 제 1차 바벨론 유수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로 이 때 바벨론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인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성전 기구의 얼마는 바벨론으로 옮겨져 우상들의 보물고에 보관되었습니다. 이는 계속 불의를 행하면서도 성전이 자기들을 지켜 줄 것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후 유다는 두 차례의 침략을 받고 B.C 587년 시드기야왕 때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적 요인이나 국제적인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징계하시고자 바벨론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비록 자기 백성이라 할지라도 교만하여 쓸모 없게 되었을 때 강대국의 손에 붙여 심판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어찌하든지 훈련하여 제사장 나라로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정복자로서 지혜가 있었습니다. 대개 정복자들은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젊은 여자들을 선발하라고 명하지만, 그는 통치에 봉사할 수 있는 젊은 소년들을 선발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선발 기준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첫째는 왕족이나 귀족 출신으로 가문이 좋아야 했습니다.

둘째는 신체적으로도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워야 했습니다. 저같이 키가 아담하다거나 눈이 나빠 안경을 꼈다든지 하면 안됩니다. 또 다른 곳은 다 잘 생겼지만 코가 약간 삐뚤어져도 실격입니다.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조금도 신체적 결함이 없어야 했습니다.

셋째는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한 자로서 지적으로도 우수한 자질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으로부터 고급 두뇌들을 데리고 와서 장차 바벨론 제국에 봉사할 미래의 엘리트를 훈련시키고자 했습니다. 그가 젊은 소년들을 택한 것은 소년이라야 유순하여 길들이기 쉬우며 자기 조국을 쉽사리 잊어버리고 갈대아인에게 동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발 기준이 까다로운 만큼 그들에게 주어지는 특권도 컸습니다. 그들에게는 당시 최고의 학문인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또 왕이 지정한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공급하여 3년을 훈련받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그 목적은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함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엄격한 심사 끝에 뽑힌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습니다. 환관장은 이들의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시다”라는 뜻인데 “벨이 보호하신다”라는 뜻인 벨드사살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냐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는 뜻인데 “달의 신인 아쿠의 명령”인 사드락으로 바꾸었습니다. 미사엘은 “하나님 같은 분이 어디 있으랴”라는 뜻에서 메삭, 즉 “아쿠 같은 분이 어디 있으랴”로 바꾸었습니다. 아사랴는 “하나님은 도와주신다”라는 뜻에서 아벳느고, 즉 “느고의 종”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에서 바벨론 이방 신과 관련된 이름으로 바꾸어졌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혼을 빼고 개종시켜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 왔지만 채찍을 맞으며 중노동을 하거나 차별대우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택받은 자로서 특별 궁중 장학생이 되어 날마다 왕궁에서 고량진미를 먹으며 선진국의 학문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최고로 좋은 직장인 바벨론 왕궁 비서실에서 왕의 특별 자문 위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장래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권세와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고 아름다운 아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캐딜락을 굴리며 호화 맨숀 아파트에서 선진국의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도의 동화정책이었습니다.

그들은 특별 대우를 받으면서 점점 선민의 정신을 상실하고 믿음의 중심을 잃기 쉬웠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보다 좋은 환경 가운데 있을 때 믿음의 중심을 지키기가 훨씬 더 힘듭니다. 또한 사람이 배가 고프면 겸손해져서 인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지만, 배가 부르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부분의 영리한 사람들은 기회주의자가 되어 현실과 타협하고 이기심에 사로잡혀 영적 눈이 멀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달랐습니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즐기기에는 너무나도 정신적 영적 아픔과 고통과 슬픔이 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기 백성을 인하여 매우 슬펐습니다. 또한 강대국에 끌려 온 자신의 처지도 슬펐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슬픔에 빠져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무엇인가 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다니엘은 무엇을 했습니까?

Ⅱ. 다니엘의 믿음의 결단(8)

8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고자 뜻을 정했습니다. 그가 이런 뜻을 정하기까지에는 수많은 번민과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왕의 진미를 거절할 경우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됩니까?

첫째는, 맛있는 음식을 못 먹게 됩니다. 왕의 진미에는 궁중 전골, 탕수육, 양장피, 완자, 상어 지느러미, 원숭이 골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진기한 것들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포도주도 몇 십 년 묵은 포도주가 나왔을 것입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식욕이 왕성한 청년의 때에 한끼도 아니고 매일 먹을 수 없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는, 동료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친구를 잃게 되고 외톨이가 되어 그렇지 않아도 이방 땅에서 외로운데 더 외롭게 됩니다. 대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왕의 특별한 호의를 거절함으로 바벨론에 대한 항거의 표시가 되어 모든 특권이 박탈당하고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려다 세상에서 출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로 인해 세 친구들과 동족에게까지 화가 미칠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전쟁 포로이기 때문에 그런 뜻을 정할 주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또 그가 믿음의 결단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믿음으로 결단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결단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첫째,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자 함입니다. 왕의 진미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그에게 왜 문제가 됩니까? 왕의 음식에는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한 짐승과 물고기들이 많았고 또 우상 제단에 바쳐진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는 제주(祭酒)로서 우상에게 먼저 붓고 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릴 때부터 율법을 지켜 온 다니엘에게는 신앙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혼탁한 이방 사회 가운데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순결을 가볍게 생각하고 신앙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함으로써 자기를 더럽힙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자기를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신앙의 순결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이는 마치 여자들이 정조를 지키는 것과 같이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고자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합리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얼마든지 분위기와 타협하며 합리화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처럼 살라는 말대로 바벨론에 왔으므로 그 곳 풍속대로 살아야 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이방 땅에서 선교 활동을 하려면 모든 것이 바벨론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다 양보하였지만 신앙 만큼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벨론 우상 문화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앙생활 하기 어려운 분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서 오직 믿음으로 살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의 도리를 좇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살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상대적인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셋째, 이방 문화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한 것은 단순히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자 하는 소극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결단은 거센 이방 문화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이방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세상의 부귀영화에 대한 모든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마치 거센 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살아 있는 잉어와 같이 죄악된 시대에 도전했습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할 때 분위기를 봐서 얼마 있다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뜻을 정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뜻을 정하고 출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나중에 하고자 하면 더 힘듭니다. 처음부터 뜻을 정할 때 처음 얼마 동안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뜻은 엄청나게 크고 미치지 못할 부왕부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2시간씩 기도하겠다고 뜻을 정해 놓고 하루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결심은 현재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결단은 시시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작은 결단으로 환경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그 시대를 이겼습니다. 그는 이 결단으로 하나님께 쓸모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믿음의 결단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도 부패한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믿음의 결단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으로서 애굽의 궁중에서 자라며 온갖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궁중에서의 죄의 낙을 누리지 않고자 믿음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의 결단은 작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의 결단은 그를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에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새해를 출발할 때도 어떻게 잘 되겠지 하며 막연히 출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으로 뜻을 정해야 합니다. 뜻을 정해 놓고 작심 삼일이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뜻을 정하기가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 1:8절에 보면 뜻을 정하지 않는 자는 정함이 없는 자로서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인생을 살겠다는 분명한 뜻을 정할 때 나아가야 할 분명한 방향이 생기고 투쟁 목표가 생기게 됩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1977년 처음 미국에 가셨을 때 미국 문화에 도전하시기 위해 김치를 먹지 않고, 5년 동안 차를 사지 않고, 모든 사람이 들고 있는 보험에 들지 않고자 결단하셨다고 합니다. 이로써 용광로와 같은 거센 미국 문화를 이기고 오늘날과 같이 왕성한 복음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강병주 목자님은 작년에 평신도 목자 생활을 출발하면서 주일을 절대적으로 지키고 수요일 말씀 공부에 빠지지 않고 매주 한편의 소감을 절대적으로 쓰고자 뜻을 정했습니다. 이때 그는 승리의 한 해를 살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절대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작은 뜻을 정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매주 일대일 말씀 공부와 한 편의 소감을 깊이 쓰고자 하는 뜻을 정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경 1회독을 하고자 하는 뜻을 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출발하면서 매일 아침 일어나서 양치질을 할 때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기로 뜻을 정하고 오랫동안 실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승리의 하루를 살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 제가 성경 2회독과 새벽에 1시간씩 기도의 단을 쌓고자 뜻을 정합니다. 이렇게 뜻을 정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Ⅲ. 지혜와 총명을 주신 하나님(9-21)

다니엘이 믿음의 순결을 지키고자 뜻을 정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첫째로,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구했을 때 하나님은 다니엘로 하여금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환관장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다니엘의 간구를 묵살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듣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만일 그와 세 친구들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보다 못한 것을 왕이 보게 되면 자기 머리가 위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니엘은 열흘 동안 채식을 주어 먹게 하여 시험한 후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 마음대로 처분하도록 제안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열흘 후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얼굴이 윤택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으면 오히려 돼지와 같이 비계살이 쪄서 못쓰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면 비록 잘 먹지 못하더라도 스피릿이 충만하고 얼굴에는 빛이 나게 됩니다. 잠언 3:8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면 이것이 몸에 양약이 되어 골수로 윤택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절제하며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았을 때 심령에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흘러 넘쳐 자연히 그 얼굴에 빛이 났습니다.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었습니다(16). 결국 다니엘의 믿음이 승리한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계속해서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지혜와 명철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 네 소년에게 세상 학문에서도 뛰어날 수 있도록 지식과 명철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쟁쟁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왕립 아카데미에서 학문을 감당할려면 암기력과 이해력이 뛰어나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학문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이외에 신령한 영적 세계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은사를 더하셨습니다. 다니엘이 믿음의 결단을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세상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주셨습니다. 3년 기한이 차서 그들이 왕의 앞에 섰을 때 모든 사람들 위에 뛰어났고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며 불타는 비젼을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바벨론 문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가치관이 만연하여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죄의 문화에 오염되어 심령이 부패해지기 쉽습니다. 특히 세속적이고 인본적인 신자들의 영향을 받아 스피릿을 잃고 안일하게 지내기 쉽습니다. 새해를 출발하면서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