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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4:1-37

by Mark Yang   05/04/2022   Daniel 4:1~37

Message


다니엘서 제 4 강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

말씀: 다니엘서 4:1-37

요절: 다니엘서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본문은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에 관한 사건으로서 성경에서도 독특한 사건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다니엘과 같이 믿음이 있는 자의 하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본문은 이방 군주인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신교를 믿는 우상 숭배자요, 바벨론 제국의 왕으로서 그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변화되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생애에 간섭하셔서 그를 훈련하심으로 변하여 새사람 되게 하셨습니다. 왕의 회심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요, 능력의 역사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심을 배웁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자라 할지라도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Ⅰ. 자만심에 빠진 느부갓네살 왕(1-18)

느부갓네살 왕이 3장에서 금신상 낙성 예식을 거행한 것은 B.C 585년이고, 4장에서 조서를 발표한 것은 B.C 562년입니다. 그러므로 3장과 4장 사이에는 23년간의 공백이 있습니다. 본문은 1-3절은 느부갓네살 왕이 회심한 후 조서를 발표하는 내용이고, 4-36절은 느부갓네살이 과거 자신에게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하는 신앙 간증이며, 37절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ⅰ)하나님을 찬양하는 느부갓네살 왕(1-3)

1절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조서 내용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능력의 역사를 간증하고자 하는 소원으로 충만했습니다(2).

그 조서 내용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dominion, 통치)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3:28-30절에 나오는 조서와 4:1-3절에 나오는 조서를 비교해 볼 때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3장에서는 왕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서 구원 받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에서 뛰어난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은 인정했지만 자신의 하나님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이요 자신의 하나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바벨론 왕국을 포함하여 세상 나라는 결국 망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고 그 통치도 영원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상 숭배자요 교만하고 포악한 이방 나라의 절대 군주가 변화되어 신앙 간증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세계 선교를 위한 역사 환경이 조성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A.D 313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밀라노 칙령과 견줄 만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친히 그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백성들과 열왕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ⅱ)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째 꿈(4-18)

느부갓네살 왕은 과거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간증하기 시작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이 말씀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왕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말해 줍니다. 이 때는 느부갓네살이 강대국 애굽을 물리친 후를 말합니다. 이 때까지 그는 정복 전쟁을 하느라 조금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복 전쟁이 끝나고 집에서 편히 쉬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왕국을 위협하는 모든 나라를 정복함으로써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세계의 부는 그의 창고에 쌓여 갔고 그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만족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궁에서 원하는 대로 마음껏 즐기며 편히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은 멋있게 보이지만 여기에는 영적 위험이 따릅니다.

이런 삶에 따르는 위험이 무엇일까요? 사람이 열심히 개척의 사명을 감당할 때는 겸손하게 투쟁을 잘 하게 되지만, 편안할 때는 자족하는 마음이 생겨서 교만해지고 안일해지기 쉽습니다. 안일에 빠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정욕입니다. 다윗 왕이 그 좋은 예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하였고 용기가 있었고 목자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또 그는 사람을 품는 포용력과 지혜가 출중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환난의 때에나 축복의 때에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기뻐하시고 그를 축복하사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시고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축복을 많이 받게 되자 자만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봄이 돌아오자 모든 병사들은 전쟁터로 나갔는데 그는 늦게까지 침상에서 뒹굴었습니다. 이러한 안일은 필연적인 정욕을 낳아, 마침내 그는 간음죄를 범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자만심이나 안일주의는 좋게 보이지만 이는 모든 악과 부패의 온상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정복자로서 많은 나라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제국을 세우신 분은 느부갓네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를 도구로 사용하사 바벨론 제국을 건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이 재위한 지 얼마 안 되어 꿈을 통해 세상 나라를 그 뜻대로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요, 느부갓네살을 포함한 세상 왕들은 그의 뜻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함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또 세상 나라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이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함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계시는 그에게 임한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그를 쓰시기를 원하셨고 그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축복하사 그의 제국을 번영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힘과 지혜로 제국을 건설했다고 생각하고 자만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대신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바벨론 제국을 건설하여 자신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내었다고 생각했습니다(4:30). 이렇게 교만하게 되면 쓸모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그를 잘라 버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그를 잘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꿈으로 간섭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두려워하며 번민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초강대국의 절대 군주로서 위엄있고 영광스러운 왕이었습니다. 그는 정복자로서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간섭하실 때 그는 두려워하며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 바벨론 모든 박사들을 불러 이 번에는 친절하게 꿈 이야기를 해 주고 꿈 해석을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능히 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최후로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왕은 다니엘은 능히 그 꿈을 해석할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8,9,18). 왕은 다니엘을 영적인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 지혜를 가진 자들이 영적 지혜를 가진 자들을 당할 수 없음을 배웁니다. 또 세상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자는 영적 지혜를 가진 자들임을 배웁니다. 세상 지혜를 가진 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는 잘 알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그러나 영적 지혜를 가진 자들은 인생의 본질을 알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영적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같이 영적 지혜를 가진 자들을 통해서 구속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10-17절까지는 왕이 꾼 꿈의 내용입니다. 그의 꿈은 2부작이었습니다. 제 1 부는 기분이 좋은 꿈이었습니다. 그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그 고가 심히 높았습니다.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아 땅 끝에서도 보일 정도였습니다. 또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풍성하여 만민의 식물이 될 만 하였습니다. 그 나무 아래는 들짐승이 안식처를 찾았고,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으며, 무릇 혈기 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었습니다. 그 나무는 중앙에 있었고 크고 높고 강하였으며 아름답고 풍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영원할 것같이 보입니다. 이 나무가 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2부는 두려운 꿈이었습니다. 그가 뇌 속으로 받은 이상 가운데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 왔습니다. 그는 내려와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이 꿈을 통해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만심에 빠져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포기치 않으시고 다시 한 번 그에게 꿈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악한 자라 할지라도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벧후3:9)

Ⅱ. 느부갓네살 왕을 훈련하신 하나님(19-37)

(ⅰ) 꿈을 해석하고 왕에게 간하는 다니엘(19-37)

왕의 꿈 이야기를 들은 다니엘은 얼마 동안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번민하였습니다. 그는 그토록 큰 권세를 가진 왕에게 그토록 큰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왕에게 흉한 소식을 고해야만 하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자 마음이 번민하였습니다. 다니엘이 놀라고 번민하는 것을 본 왕은 다니엘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도록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은 충심으로 말했습니다.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다니엘은 왕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꿈은 세계 역사에 관한 것이었으나 두 번째 꿈은 왕 개인의 심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의 해석에 의하면 나무는 곧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왕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여 하늘에 닿고 그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권세와 그 영광이 어떠했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 잎사귀가 아름답고 풍성한 것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영광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고고학 발견에 의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살던 왕궁은 가로 세로가 각각 9.6km 였다고 합니다. 그는 건축 애호가로서 바벨론 제국의 곳곳에 대신전들을 세웠습니다. 그 중에는 8층으로 된 거대한 벨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또 유명한 공중 정원(Hanging Gardens)을 지었는데 이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질 만큼 신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백 개의 문들이 있는 높은 성벽 위에는 4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그 위에서 회전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었습니다. 또한 높이 약 100m나 되는 성전 타워가 있었고 수 톤에 달하는 금신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왕의 권세와 그 영광이 얼마나 엄청났던가를 보여 줍니다. 그의 권세와 영광은 너무나 엄청나서 아무도 도전할 수 없고 영원할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는 하늘에서 내려온 한 순찰자로 인하여 순식간에 베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 순찰자는 깨어 있어서 파수하는 자 곧 천사를 의미합니다. 나무를 베도록 명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아무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찰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들을 감찰하고 계심을 배웁니다. 역대하 16:9절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시 11:4절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또한 시 138:6절은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서는 것, 중심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 등 우리의 모든 삶을 감찰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느부갓네살 왕을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자신의 허세를 부리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감찰하시고 한 순찰자를 보내사 심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왕에게 임한 심판은 왕으로서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박탈당하고 사람에게서 쫓겨나 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를 7년 동안을 하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느부갓네살은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7년 동안 그를 철저히 낮추심으로 겸손케 하시고 영적 눈을 뜨게 하십니다. 그 후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이 그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그를 뿌리째 뽑아 버리지 않으시고 그루터기를 남겨 두셨습니다. 이는 그를 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를 낮추시고 회개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그에게 꿈을 해석해 주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에게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이 말씀은 느부갓네살 왕이 공의롭지 못하고 포악한 사람임을 말해 줍니다. 그는 그의 왕궁과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악한 일을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여 무자비하게 죽이고 파괴했습니다. 또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와서 제국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했습니다. 그리고 병든 병아리같이 쓸모 없는 자들은 10만 명이라도 그 수에 관계없이 다 죽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불의와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죄악을 속하소서”라는 말씀은 속전의 의미가 아니라 “죄들을 벗어 버리라. 죄들을 깨뜨리라. 죄들을 포기하라”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공의와 긍휼을 베풀므로 의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다니엘로부터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세입니다. 다니엘이 잔인하고 포악한 왕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줄여서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 편에 서서 심판을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 했습니다. 그에게는 믿음의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용기는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 편에 서서 분명하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째는, 목자로서의 자세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왕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에게는 왕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왕의 관계는 신하와 왕의 관계 이전에 목자와 양의 관계였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왕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기 때문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오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오라” 이 메시지는 포악한 왕에게 귀에 거스리는 무례한 말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구원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왕에게 임한 심판은 조서와 같이 변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24). 그런데도 다니엘이 왕에게 그가 죄를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조언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 주시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심을 잘 알았습니다. 역대 이스라엘 왕 중에서 아합 왕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어 스스로 팔려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회개의 심정을 보시고 그에게 내리고자 하셨던 재앙을 연기하셨습니다(왕상 21:25-29). 하나님은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진실되게 죄를 회개하면 누구든지 받아 주시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다니엘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왕에게 조언할 수 있었습니다.

(ⅱ) 훈련 받는 느부갓네살(28-37)

왕은 다니엘로부터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또 동시에 그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복음의 메시지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죄를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당장에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12달 동안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내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마침내 그에게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어느 날 그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 때에 바벨론 성을 내다보며 자신이 이룬 업적으로 인해 자만심에 빠져 독백을 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 여기서 주어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입니다. “내가, 나의 도성, 내 위엄의 영광”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영광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교만을 가장 싫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약4:6).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16:18,19)

느부갓네살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만심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그를 여지없이 낮추셨습니다. 왕의 자만심에 찬 말이 그 입에 있을 때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그리고 왕은 백성들로부터 쫓겨나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의 몸은 하늘 이슬에 젖고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 털과 같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게 되었습니다(32,33). 그는 인간 이상의 무엇이 되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짐승보다 더 못하게 낮추셨습니다. 왕은 심한 정신 질환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성을 앗아가시고 짐승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수광병으로서 이 병에 걸리면 환자는 자신이 상상하는 동물처럼 행동하면서 그 동물의 특유한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우광병 환자는 자신을 소라고 생각하고 ‘음메’하고 소처럼 울며 소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왕이 하나님의 훈련에 걸리자 그는 짐승과 같이 되어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생의 모습을 잘 말해 줍니다. 타락한 인생들의 내면의 모습은 짐승과 같습니다. 로마서 1:21-31절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자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로 전락하고 정욕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버렸을 때 인간의 고귀함을 상실하고 짐승의 마음을 가진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무제한적 육신의 자유를 갈망하여 하나님을 그들의 삶에서 몰아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파멸에 이를 뿐입니다. 우리가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고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 후 7년이 지났습니다. 이 때 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하나님께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겸손하게 되었을 때 그의 훈련은 끝나고 그의 이성이 회복되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왕권도 회복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겸손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음을 심령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왕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의 정신병은 치료되고 왕으로서의 그의 지위와 명예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이전보다 더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왕은 지난 날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한 후 최후로 말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말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느부갓네살 왕이 겸손 훈련을 받고 느낀 한 마디 소감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