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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6:1-28

by Mark Yang   05/04/2022   Daniel 6:1~28

Message


다니엘서 제 6 강

다니엘의 기도 생활

말씀: 다니엘서 6:1-28

요절: 다니엘서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소년 때 이방 땅에 잡혀 와서 처음부터 작은 뜻을 정함으로 믿음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여러 왕들에 걸쳐 국가 요직을 감당하면서 믿음의 큰 영향력을 끼치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도 여든이 넘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세상도 많이 변하여 갈대아 왕조에서 메대와 바사 왕조로 넘어 갔습니다. 그런 중에도 다니엘의 믿음은 더욱 깊어 갔습니다. 그의 믿음의 나무는 이방 문화의 거센 비바람을 맞으면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거목으로 자라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니엘이 어려운 시대 분위기 가운데서 역경을 이기고 믿음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Ⅰ. 하루 세 번씩 기도한 다니엘(1-10)

때는 갈대아 왕조가 무너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어 다스리게 된 때였습니다. 그런데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을 지휘하고 바벨론을 정복한 사람은 바사의 장군인 고레스였습니다. 고레스는 제국의 왕이 될 수 있었으나 현명하게도 먼저 그 자리를 다리오에게 양보하고 그 후에 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오는 나라를 얻자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자기 원하는 대로 행정 개편을 했습니다. 전국을 120도로 나누고 각 도마다 방백을 두어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어 120방백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세 총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리오가 이런 제도를 둔 것은 방백들이 총리에게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이는 왕조가 바뀌었는데도 다니엘이 그처럼 빨리 높은 지위에 등용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외적 요인보다 내적 요인에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부정 부패가 만연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일하기를 싫어하였고 과소비와 사치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리오 왕에게는 도덕적, 정신적 기강을 바로잡고 나라를 올바로 통치할 수 있는 정직한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다니엘이야말로 왕이 찾던 적임자였습니다. 다니엘은 청렴결백하고 고결한 도덕성을 지닌 자였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탁월한 행정 능력을 가진 자 였습니다. 그는 시대가 바뀌었지만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큰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다니엘은 다리오가 정복한 나라의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마땅히 숙청 대상이었습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후 정치범 3천명을 십자가 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거기서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메대와 바사 제국의 총리로 임명되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다니엘은 비록 나이는 늙었으나 마음은 늙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인해 마음이 민첩하여 다른 두 총리와 젊은 방백들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뛰어났습니다. 다니엘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있어 스피릿이 충만하였습니다. 다리오는 이런 그를 깊이 신임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왕의 총애는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에게 시기심을 불러 일으켜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하는 음모를 꾸미게 하였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수석 총리가 되면 그들은 전혀 부정 부패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에 그들은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눈에 불을 켜고 살폈습니다. 털면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노망끼가 있어 빈틈이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충성스러웠습니다. 그에게는 부정 부패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었고 또 국사를 그르치는 일도 없었습니다. 이는 그가 사심을 가지고 일하거나 사람 앞에서 적당히 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충성심과 진실함과 책임감과 공정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그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 일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학교 공부를 게을리 하여 성적이 좋지 않다거나, 아르바이트를 소홀히 하여 쫓겨난다거나, 직장 일에 충성되지 못하여 눈총을 받는다면 이는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맡은 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총리와 방백들은 국사에서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니엘의 신앙생활에서 그 틈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어떤 경우에도 중단하지 않고 하루 세 번씩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그들은 이를 이용하여 다니엘을 넘어뜨리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30일 동안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넣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금령을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다시 고치지 못하도록 왕으로 하여금 조서에 어인을 찍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황제 숭배로서 왕을 심히 기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나라를 얻은 지 얼마 안되기 때문에 국론을 통일시키고 왕의 권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하들이 자기를 높이 세우고자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왕은 이 법령이 다니엘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는 간신배들의 술책에 넘어가 조서에 어인을 찍고 말았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 신앙의 지조를 지킨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힘으로 변개할 수 없는 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 법령이 자신을 겨냥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는 원수들의 간계를 다 알았습니다. 또한 법을 어기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다 알았습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알았을 때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일까요? 그는 왕에게 가서 이 법은 원수들이 자신을 시기하여 만든 것이고 또 자신이 동의한 것이 아니므로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법은 단지 30일 동안만 효력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만 은밀히 기도하라는 말씀대로 아무도 안보는 골방에 들어가 몰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왕에게 30일 동안 다른 나라에 출장을 갈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 상황을 피할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현실과 타협한다면 그의 목숨은 부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인격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것 또한 원수들이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실로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일 금령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첫째로, 총리직이 박탈됩니다. 당시 그가 누리고 있는 총리직은 어마어마한 큰 권세였습니다. 이런 권세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정치 세계에서 이런 권세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사람에게는 권세욕과 명예욕이 있습니다. 특히 남자들에게는 생득적일 만큼 강합니다. 요사이 국회의원 공천을 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권세란 사람을 매혹시킵니다. 그래서 한 번 권세를 잡은 자는 이를 놓치지 않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계속 잡고자 합니다. 다니엘은 여러 왕에 걸쳐 수십년 동안 실권자로 지냈으며 현재도 총리입니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그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총리직에 있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도 도지사가 될 수 있었고 또 동족들도 이방 땅에서 멸시받지 않고 떳떳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총리직을 물러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권세보다 신앙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둘째로, 권세 뿐만 아니라 귀중한 생명을 잃게 됩니다. 금령에는 누구든지 법을 어기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6:24절에 보면 사람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움켜 뼈까지도 부숴뜨린 것을 보면 얼마나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생명에 대한 애착심이 있습니다. 목숨이 살기 위해서는 체면이고 권세고 명예고 물질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숨 앞에서는 비굴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제시대 때 신사 참배 문제가 생겼을 때 신자들과 목회자들 가운데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신앙의 지조를 굽히고 타협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목숨을 내 놓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자는 소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세상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다니엘이라고 해서 생명에 대한 애착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은 금령을 어기면 귀중한 생명을 잃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생명보다 신앙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도 밀레도 고별사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다니엘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신앙의 지조를 가장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엄청난 권세가 박탈당하고 귀중한 생명을 잃는다 할지라도 그의 신앙의 지조 만큼은 꺾을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믿음으로 투쟁한 믿음의 용사들이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을 당하며, 어떤 이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그들의 신앙의 지조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더욱 불타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조 시대에 한 임금에 대한 절개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정몽주를 존경합니다. 그의 시조는 우리의 간장을 애끓게 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이들의 한 임금에 대한 변함 없는 충성심과 순결과 애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우리 주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과 순결과 애정을 가짐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상황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못한다면 이는 개만도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손해와 아픔과 희생이 따른다 할지라도 예수님께 대한 신앙의 지조 만큼은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로서의 정당한 자세입니다.

둘째, 꾸준히 기도하는 다니엘입니다. 1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봅시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의 평소 기도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라는 말을 보면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히 기도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와 그의 민족이 어떤 형편 가운데 있길래 이렇게 여유있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까? 다니엘은 곧 사자굴에 들어가야 함으로 목숨이 경각간에 달려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으로 인해 70년 동안 주권을 잃고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9장에 나타난 다니엘의 기도를 보면 그는 자기 백성의 절망적인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9:16).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9:18). 성전은 황폐케 되고 쓸 만한 백성들은 수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끌려와 융화 정책에 의해 선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잃고 바벨론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2세들은 유다 방언을 할 줄 몰라 느헤미야가 머리털을 뽑을 지경이 되었습니다(느13:24,25). 언제 이스라엘이 회복될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도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하루 이틀만 한 것이 아닙니다. 소년 시절에 끌려 와서 여든이 넘도록 약 70년 간을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니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생들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모든 허물과 죄를 사하시고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귀히 쓰실 것을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사자굴에 던져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사 자기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을 믿고 낙심치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이요, 또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또 그는 하루 세 번씩 규칙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식사할 때마다 기도하기 때문에 하루 세 번씩 기도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식사 시간 외에 하루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방 땅에서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규칙적인 기도 생활에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사랑하고 기도를 생명선과 같이 가장 귀히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생명이 위태롭다고 해서 기도를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명보다 영적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자신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시대를 이기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1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의 깊은 신앙의 경지를 보고 놀라게 됩니다. 그의 신앙은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이었습니다. 현재 그의 형편은 도저히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기는 커녕 내가 믿음으로 사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복수의 감정을 품고 악인의 모든 도모를 파하시고 그들을 심판해 주시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가 이런 형편 가운데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하나님은 이 때까지 다니엘의 선한 목자가 되사 섬세하게 인도하시고 지켜 주시고 도와 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상 숭배의 거센 이방 문화 가운데서도 믿음의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 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사 그를 능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은밀한 일을 나타내신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인간 세상을 그 뜻대로 다스리시며 인생들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은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때 심령에서부터 감사가 솟아났습니다. 그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와 자기 백성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좋으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지만 원치 않게 상황이 힘들게 돌아가면 감사하기보다 인상을 쓰고 불평을 늘어놓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을 때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무엇보다 나의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본문에는 ‘나의 하나님’이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10b,16,20,22,23 26). 그는 전심으로 자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의뢰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은 성숙한 신앙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8)

다니엘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로 향하여 항상 창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사랑의 창문, 경외심의 창문, 기도의 창문, 감사의 창문이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혼탁한 이방 문화 가운데서도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깊은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도 시간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힘과 위로를 얻고 지혜를 얻었습니다.

넷째,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다니엘입니다. 그는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닐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더 꼬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고 또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 사람이 인간적인가 영적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려면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람은 기도하기보다 자기 지혜를 믿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또한 감정적이 되어 사람들과 부딪힙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문제를 안고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지 않고 기도로 사단과의 영적 싸움을 싸웁니다. 이를 통해 영적 비밀을 깨닫고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과의 인간적인 싸움을 싸우기보다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는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Ⅱ. 사자들의 입을 봉하신 하나님(11-28)

두 총리와 방백들은 금령이 반포되자 CIA를 풀어 밤낮으로 다니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를 본 방백들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즉시 왕에게 나아가 다니엘을 고소하였습니다. 이들의 고소를 들은 왕은 비로소 그들의 흉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조서에 어인을 찍었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로 인해 심히 근심하며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방백들의 압력에 못 이겨 어쩔 수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도록 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왕은 다니엘이 평소 믿고 의지하던 하나님께 일루의 희망을 걸며 말했습니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16).

그들은 마침내 다니엘을 사자굴에다 넣고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고 왕의 어인과 자기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습니다. 왕은 궁에 돌아가서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였습니다. 그만큼 왕과 다니엘은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성이 맺어져 있었습니다. 왕은 한숨도 못 자고 이튿날 새벽에 사자굴로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슬픈 소리로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그러자 죽은 줄만 알았던 다니엘의 목소리가 사자굴 안에서 들려 왔습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로써 다니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다니엘의 무죄함도 증명되었습니다. 사단은 굶주린 사자와 같이 다니엘을 삼키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을 보호하심으로 사자굴 안에서도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하셨습니다.

왕은 다니엘의 말을 듣고 심히 기뻐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뢰하는 다니엘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책임지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왕은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끌어 오게 하여 그들을 사자굴에 던져 넣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들이 굴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그들을 움켜서 뼈까지도 부숴뜨렸습니다. 사자가 다니엘을 해치지 않고 잘 참았을 때 하나님은 사자에게 더 풍성한 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꾀에 빠져 자기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리오 왕은 전국에 조서를 내렸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하고 그 권세는 무궁합니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살아계셔서 세상 역사를 그 뜻대로 주관하시고, 다니엘과 같이 자기를 의뢰하는 자들을 통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