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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10:1-21

by Mark Yang   05/04/2022   Daniel 10:1~21

Message


다니엘서 제 10 강

은총을 크게 받은 다니엘

말씀: 다니엘서 10:1-21

요절: 다니엘서 10:19a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 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이때까지 우리는 다니엘서 1-9장까지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1-9장까지는 각장마다 하나의 독립된 단위로서 우리에게 주는 독특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10-12장은 세장이 모두 합하여 하나의 전체적인 환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환상은 7,8장에 나오는 것처럼 상징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직접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10장은 서론 부분으로서 인자에 관한 환상과 또 장래 일에 대한 환상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11장은 본론 부분으로서 자세한 계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장은 계시의 결론으로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10장에서는 다니엘이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임을 두번이나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점에서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인가? 또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Ⅰ. 인자에 관한 환상을 본 다니엘(1-9)

첫째, 3주 동안 슬퍼한 다니엘(1-9)

1절을 보십시오. “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일이 참되니 곧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바사 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과 인연이 깊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민족을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준 해방자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유대 민족을 해방시킨 자는 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역대하 36:22절을 보면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고레스가 유대인에게 예루살렘과 성전 재건을 위해 귀환 칙령을 내린지 2년 이상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때는 스룹바벨과 소규모 집단의 유대인들이 이미 예루살렘에 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하여 그렇게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갈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가 바사에서 할 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86,7세의 고령의 나이로 인해 장거리 여행과 힘든 건축 사업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니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연로한 다니엘에게 종전에 볼 수 없었던 더 큰 환상을 보여 줄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만나 뵙고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계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가 받게 될 계시는 결코 공상이나 망상이 아니라 반드시 그대로 성취될 참된 것입니다. 이는 하늘로부터 계시된 것이기 때문에 가장 확고하고 신뢰할 만한 것입니다. 그 환상은 큰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로서 이스라엘이 장차 겪게 될 큰 고통거리에 관한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종말과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았습니다. 2절부터는 다니엘이 영적으로 체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다니엘은 고령의 나이였기 때문에 특별히 건강에 유의하고 몸조심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주 동안 슬퍼하며 주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는 일체의 좋은 음식들과 산해진미들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기도 먹지 않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동에서 기분 전환으로 널리 사용했던 기름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 이상은 먹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모든 것을 절제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자세로 슬퍼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연로한 선지자가 왜 3주간 동안이나 슬픔에 잠겨 기도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미 알려진 구약 역사를 통해 쉽게 짐작할 수 잇습니다. 다니엘은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향할 수 있도록 7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기도는 고레스 왕의 조서에 의해 응답되었습니다. 그 결과 소수의 유대인들이 이미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났고 또 바벨론에서 안정된 기반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는 다니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다 고국으로 돌아간 동포들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재건하는 도중에 이를 방해하는 원수들로 인해 힘든 난관에 부딪혀 실의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들어 주셨지만 예루살렘의 상황은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된 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하나님께 항의하며 불평을 늘어 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고행을 하며 기도한 또 다른 이유는 환상의 의미를 깨닫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12절에서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고 그 환상의 의미를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영적 세계의 비밀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건강을 상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영적 소원으로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영적 세계의 놀라운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영적 소원이 충만한 자에게 그 뜻을 계시해 주십니다.

둘째, 영광스러운 인자의 모습(4-9)

때는 정월 24일 다니엘이 슬픔 가운데서 기도한지 만 3주가 되는 때였습니다. 이를 볼 때 다니엘은 유월절이 끝난후 3일째부터 기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힛데겔이라 하는 티그리스 강가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연대와 장소를 정확하게 기록한 것은 이 환상이 비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역사임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가 강가에 서 있을 때 영적 세계가 펼쳐지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한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 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이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인 인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인자의 모습과 같았습니다(계1:13-16). 세마포 옷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으로서 인자는 대제사장이심을 말해 줍니다. 또한 허리에 순 정금띠를 띠었다는 것은 왕권을 가지신 분이심을 말해 줍니다. 또한 그 몸이 황옥 같고 그 얼굴이 번갯 빛 같은 것은 창조주의 권세와 영광을 가지신 분이심을 말해 줍니다. 또한 그 눈이 횃불 같은 것은 전능자로서의 통찰력을 뜻하며, 그 팔과 발이 빛난 놋과 같은 것은 심판주로서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 음성은 많은 무리의 소리와 같이 우렁차고 힘이 있었습니다. 이 인자의 모습은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실 만왕의 왕의 모습이었습니다. 7:13,14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심판의 권세를 위임받는 인자가 나옵니다. 다니엘은 이 인자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것입니다. 인자는 인류 역사의 초점이 되시며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인자에 관한 환상은 다니엘만 보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를 볼 때 아무나 환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과 같이 특별히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만이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하고 영적 소원이 충만한 자에게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다니엘과 함께 한 사람들은 이상을 보지 못했지만 그 이상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 영향권에만 있어도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습니다. 또한 그 환상을 본 다니엘은 온 몸에 힘이 빠졌고 그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들었을 때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이는 기절을 한 것입니다. 다니엘이 영광스러운 인자의 모습을 보았을 때 마치 죽은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하고 혈색이 없어지고 정신을 잃고 말 정도였습니다. 이는 주의 영광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보여 줍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불경스러운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보면 그 영광의 광채에 너무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 것입니다. 다니엘은 진리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성결하게 산 의인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도 인자 앞에 섰을 때 마치 죽은 자가 되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범인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인간은 본래 죄악되어서 스스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반드시 중보자 되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Ⅱ. 은총을 크게 받은 다니엘(10-21)

첫째, 기도의 응답을 받은 다니엘(10-12)

다니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의식이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이에 인자는 그를 어루만지며 깨웠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겨우 손을 땅에 짚고 무릎을 꿇고 일어서도록 까지 도와주었습니다. 그 후 인자는 다니엘에게 말씀했습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다니엘이 떨며 일어서자 인자는 다시 왜 다니엘에게 오게 되었는가를 말씀해 주었습니다.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인자가 다니엘에게 온 것은 그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볼 때 그의 기도가 얼마나 신속하게 응답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그의 기도는 기도를 시작하던 첫날 부터 하나님의 들으신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요한1서5:14). 만일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기도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체지 않으시고 속히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께 나아가 기쁨으로 간구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님은 4:2,3절에서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우리의 진짜 원수, 사단(13,14)

다니엘이 기도한 첫날부터 하늘에서는 기도가 응답되었지만 실제로 다니엘에게로 기도의 응답이 오기까지는 3주간의 기간이 걸렸습니다. 이는 바사 국군이 인자를 막아 다니엘에게 오지 못하도록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13절 말씀은 구약에서 가장 신비한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도대체 누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인자의 길을 방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때문에 다니엘에게 나타난 사람은 인자가 아니라 천사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 나타나나 그리스도는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인자의 모습으로 계신 그리스도를 방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사 국군은 바사의 왕이 아니고 왕자(Prince)로서 이는 바사를 뒤에서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세력을 의미합니다. 이 악한 세력의 방해 때문에 3주간이나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다가 군장 중 하나인 미가엘이 도와 주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가 지연된 이유가 사단의 방해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즉각 응답되지 않고 지체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장 기도를 들어 주시면 교만해져서 쓸모없게 되기 쉽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연단을 위해서 지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당장에 양을 주지 않는다거나 역사를 부흥시켜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본문에서와 같이 사단의 방해로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움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방해하기 위해 사단도 바삐 움직입니다. 이로 인해 하늘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결코 사단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허용된 범위 내에서만 활동할 뿐입니다. 그리고 최후 심판 날에 가서는 불과 유황 불에 던져져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계20:10)

13절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짜 원수가 사단임을 배웁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건축역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큰 실의에 빠지게 되고 다니엘은 슬픔 중에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유대인들의 원수는 하나님의 역사를 시기하여 방해하는 사마리아 사람들 같이 보입니다. 아니면 사마리아 인들이 바사에게 진정서를 넣어 바사 왕국이 그 사역을 중단시켰으므로 바사 왕국이 원수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일을 막고 방해하는 원수들의 실체는 지상의 권세를 가진 나라나 인간들이 아니고 그들 뒤에서 역사하는 악령의 세력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엡6:12절에서 우리의 진정한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고후4:4절에 보면 우리가 사람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지만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근본 원인은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여 불신과 회의와 두려움을 심습니다. 또 교만을 심어 자신이 무엇이나 된양 우쭐하게 만들어 못쓰게 만듭니다. 또한 사단은 인간들이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고 비난하게 만들어 파괴시킵니다. 우리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어두움의 권세 잡은 사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할 때 우리는 사단의 권세에 말려들게 되어 사단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우리의 원수가 항상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임을 깊이 인식할 때 우리는 마귀의 궤계에 말려들지 않고 올바른 영적 투쟁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주님께서 다니엘을 강건케 하심(15-21)

다니엘은 주님께서 들려 주시는 격려의 말씀을 받았지만 아직도 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여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그리스도께 대한 외경심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발 아래 얼굴을 파묻고 쓰러졌습니다. 그는 주님을 대면하자 그 영적인 권위에 너무나 압도되어 말문이 막혀 한마디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인자께서 그의 입술을 만지자 곧 입을 열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부정한 입술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음을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입술을 만진 것은 그에게 사죄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이 겨우 입을 열어 그 앞에 있는 천사에게 자신이 얼마나 깊은 고뇌에 잠겼으며 어떻게 몸의 기운을 다 잃게 되었으며 호흡을 잘 할 수 없어 죽을 것 같이 된 상태를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비천한 종이 어찌 감히 주님과 말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거룩한 환상을 도저히 감당치 못해 초죽음이 되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를 만지며 강건케 하셨습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19a) 그러자 다니엘은 곧 힘이 나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힘을 주실 때만이 주님의 은혜도 감당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주님은 위로와 힘의 원천이 되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와 영적인 힘을 주실 수 있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다니엘이 강건케 되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20,21절에서 있는 주님의 말씀은 이렇게 풀이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사에서 영적 투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바사를 지배하고 있는 악령의 세력들과 싸우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 투쟁이 끝나면 헬라의 왕자 곧 악령의 세력들과 또 다른 영적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이 투쟁에서 나의 동맹이 될 자는 너희를 도와주는 왕자인 미가엘 천사밖에 없다. 그런데 너는 내가 왜 너에게 온 것을 아느냐? 그것은 진리의 글 곧 하나님의 계획서에 기록된 것을 너에게 말해 주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계획서는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서 이는 아직 성경 말씀으로 기록되지는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11,12장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에는 진리의 대적자들 즉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한 천사들과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방해하는 악한 천사들 사이에 끊임없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진리가 승리합니다. 세상에는 악의 세력이 득세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다니엘이 받은 은총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11,19절에서 다니엘을 부를 때에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9:23절에서 천사 가브리엘도 다니엘에게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은총을 크게 받았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와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세상에서 사랑할 만한 것들이 많은 자였습니다. 그는 제국의 수상으로서 세상 명예와 권세와 부를 사랑하고 이런 것들을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뛰어난 명철과 지혜를 사랑하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들을 사랑하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언젠가는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말 무가치한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자랑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한분 만을 뜨겁게 사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를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에게 임한 큰 은총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거룩하신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측량할 수 없는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도 하나님을 사랑치 아니할 때 하나님을 슬프시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니엘과 같이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큰 은총입니다.

둘째로,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했고 주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소원대로 그에게 영광스러운 인자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니엘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인자의 모습으로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말씀하시고 진리의 글에 기록된 하나님의 비밀의 세계를 가르쳐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셋째로, 그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거룩한 주님 앞에 섰을 때 인간의 부패하고 죄악된 본성 때문에 도저히 그 앞에 설 수 없었고 죽은 자와 같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그를 강건케 하셨을 때 비로소 주님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니엘과 같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크게 은총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