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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18

by Mark Yang   05/04/2022   Joshua 1:1~18

Message


여호수아 제 1 강 (1998년 봄학기)

성공하는 삶을 사는 비결

■ 말씀: 여호수아 1:1-18
■ 요절: 여호수아 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따라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안식을 얻는 구원의 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리는 모든 과정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구원의 과정을 나타내는 역사적 예표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피의 능력으로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히브리서 4장은 여호수아가 안식을 줄 수 없고, 참된 의미의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하면 ‘예수’인데, 이는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됨을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원수들과 싸워야 하는 거룩한 전쟁이 요구되었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영적전쟁이 필연적으로 요구됩니다. 여호수아서는 우리가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제 1 강 말씀은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부분적인 성공이 아니라 전체적인 성공, 일시적인 성공이 아니라 영원한 성공을 원합니다. 우리는 입학시험이나 학과시험, 취직시험, 승진시험과 같이 각종 시험에서 성공하고, 사업에서 성공하더라도 삶에서 실패할 수 있고, 인생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모든 면에서 성공했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실패하고, 인생이 실패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 자체, 인생 자체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일어나 가야 합니다 (1-2). 여호수아서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의 시대가 지나가고 여호수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 줍니다. 모세는 노예 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40년 동안 광야 길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입구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소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산에 올라가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생을 마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요, 율법의 전수자요,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수많은 이적과 권능을 행하던 자였습니다(신 34:10-12). 또한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품고 겸손과 온유로 섬긴 선한 목자요, 영적 아버지였습니다. 이러한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죽었을 때 백성들은 얼마나 큰 슬픔과 낙심에 빠졌겠습니까? 모세의 죽음과 함께 이스라엘의 운명도 끝장난 것 같았습니다. 그 슬픔이 얼마나 컸던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30일간 애곡하였습니다(신 34:8).
  그러나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디모데전서 6:15,16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모세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능력의 한계가 있고 지혜의 한계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결코 한계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하나님이 되셔서 모세를 택하시고 모세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죽자 이제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되셔서 여호수아를 택하시고 그를 통해 가나안 정복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사람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 인류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첫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이것은 가나안 땅을 향한 진군명령입니다. 여기서 “일어나라”는 것은 원어로 “쿰!”으로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절망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죽은 모세를 바라보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쿰!”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슬픔의 자리, 절망의 자리, 염려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이유이든 주저앉아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일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힘차게 진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단의 전략중의 하나는 우리가 현실문제에 얽매여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와 비전을 상실하게 하고 주저앉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계선교 비전을 주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현실 문제에 얽매여 선교비전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상실하고 안주한다면 벌레와 같이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문제에서 박차고 일어나 불타는 선교 비전을 가지고 도전하고 전진하며 끊임없이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인생 살맛이 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싸워서 축복을 쟁취해야 합니다 (3-4). 3,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이면 다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자격이 있어서 주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다만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한 하나님이시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3b절에서 ‘주었노니’라는 동사는 완료동사로서 이미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이미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이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발바닥으로 밟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속으로 받은 땅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소유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그 땅을 발바닥으로 밟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수들과 싸워야 하고 정복하고 쫓아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얻고자 하는 안일한 마음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공짜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짜 좋아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사람 한사람도 없습니다.
  옛날 어떤 임금이 유능한 학자들을 소집하여 모든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비결을 연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연구하여 책 12권에 그 내용을 수록하여 임금에게 바쳤습니다. 임금은 분량이 너무 많다고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들은 장시간 토론과 연구를 거쳐 여섯권으로 압축하고, 여섯권에서 한권으로, 한권에서 소논문 분량으로, 다시 한 페이지로 줄였습니다. 그런데도 임금은 그렇게 길어서는 전 국민이 외울 수 없다고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줄이고 줄이다 보니 딱 한 줄만 남았습니다. 임금은 그제야 기뻐하며 국민이 이것만 지키면 모두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절대로 공짜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농부는 제한시간 내에 걸어서 돌아오면 그 땅을 전부 주겠다는 말을 듣고 공짜라고 좋아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결국에는 자기가 묻힐 땅 한평도 얻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요행만을 바라다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도 주신 줄 믿고 올라가서 밟는만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쟁취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풍성한 삶을 약속해 주는 약속의 말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풍성한 삶은 완성된 제품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땀이 요구되는 믿음의 선한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 6:11,12a).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되 믿음의 투쟁을 요구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의 투쟁없이 안일한 자세로 받기만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고 또한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것을 감사할 줄 모르고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적극적으로 믿음의 투쟁을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믿음이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영적 안일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세계선교 명령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이 말씀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적극적인 믿음의 투쟁을 요구합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순교 신앙이 요구됩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암 캐리가 세계선교를 감당하고자 할 때 영국교회는 극단적인 칼빈주의 이론에 빠져 깊은 영적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선교명령은 사도들에게만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코자 하시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런 저런 방법으로 그들을 복음으로 인도해 오시거나 아니면 직접 복음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실 것이라는 깊은 영적 안일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번은 목회자 모임에서 윌리암 캐리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사도들에게 주어졌던 명령은 그에 따른 약속, 곧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살펴 볼 때 전 세대에 걸쳐 모든 사역자들에게 부과된 명령임을 역설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세상 끝날까지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모임의 사회를 보고 있던 노 목사가 화난 얼굴을 하고 외쳤습니다. “젊은이, 앉게나.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코자 하신다면 자네나 내 도움 없이도 하나님께서 친히 하실 것일세!” 이런 분위기 가운데서 캐리는 세계선교는 신자이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임을 주장했습니다. “복음을 믿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의무라면 복음을 먼저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는 이방 땅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틈틈히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이탈리아어, 독어와 불어를 배웠습니다. 그의 구두 수선공의 오두막집은 ‘캐리의 대학’이라고 불리워졌습니다. 그는 작업복을 입고, 입에 두 세 개의 못을 물고, 그 옆에 책을 펴 놓고, 때때로 망치를 두드리며 책을 보면서 일을 했습니다. 후에 캐리는 인도에 선교사로 가서 40년동안 섬기면서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여 근대선교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선교열정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준비하며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자들을 통해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우리가 양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양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캠퍼스에 나아가서 캠퍼스를 밟으며 적극적으로 찾을 때 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믿음의 투쟁을 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고 귀히 쓰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어나 가서 밟아야 할 땅은 한국과 전세계의 캠퍼스입니다. 한국에는 약 300개의 캠퍼스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큰 캠퍼스만 7000개가 됩니다. 작은 캠퍼스까지 합하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습니다. 현재 우리가 85개국을 개척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겨우 개척의 깃대를 꽂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실로 광활한 캠퍼스를 우리에게 약속의 땅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서는 일어나 가서 열심히 밟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족하거나 안주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일어나 가기를 원하시고, 믿음으로 밟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5,9b). 5절을 보십시오.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9b).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가 처음부터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맡기셨을 때 모세는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니 보낼만한 자를 보내시라고 불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1,12). 모세가 모세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만국을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또한 건설하며 심는 역사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심히 부담스러워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렘 1:6). 이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 1:7,8).
  예수님의 제자들은 팔레스타인 밖을 한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촌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전 세계를 맡기시고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황당무계한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실현 가능한 것은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b).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개척하고자 할 때 그를 대적하는 복음의 원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속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복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때 주께서 밤에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 바울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잠잠하지 않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이 되고 더 든든한 보장이 되는 약속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인간들의 생사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겠다니 얼마나 든든하고 가슴벅찬 일입니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사 힘이 필요할 때 힘을 주시고,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를 주시고,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능히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성공했을 때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도 함께 하십니다. 은총의 때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역경의 때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회의할 때,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께 반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돈을 사랑하고 안일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때는 회개하지 않으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와 함께 하십니다.  
 
넷째,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다 (6,7a,9a). 하나님은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세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6a).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7a)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9a).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세움받고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가나안 정복의 사명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는 모세를 의지하는 마음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세가 죽었기 때문에 아무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평불만을 일삼는 백성들을 과연 잘 인도할 수 있을까? 철병거를 가지고 골리앗과 같이 신장이 장대하고 어깨가 딱 벌어진 아낙자손들을 과연 물리칠 수 있을까? 그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염려와 걱정이 생기고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마음을 잘 아시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서 내면의 연약함과 속 두려움과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연약해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몸이 약해지면 저향력이 떨어져서 병에 걸리기 쉬운 것과 같이, 마음이 연약해지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불신이 찾아들게 됩니다. 일을 하려다가도 소극적이 되고 회피하게 됩니다. 패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싸워 보기도 전에 부전패해 버립니다. 캠퍼스 역사는 힘들다, 제자양성 역사는 힘들다, 세계선교는 힘들다 등 모든 것이 힘들게 느껴지고 한계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생겨 마음이 강해지고 담대해지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대로 힘들지만 능히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고 도전적인 스피릿이 생기게 됩니다. 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믿음이 생길 때 생각이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연약하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요소와 적극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연약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죄와 사단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천하장사라도 무기력하게 되고 연약하게 됩니다. 또 불신과 의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아무리 힘을 내려고 해도 힘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 고하고 예수님의 보배피로 죄사함을 받게 되면 힘이 나고 속사람이 강건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딤후 2:1).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연약하게 하고 두려움과 불신을 심는 사단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단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강하십니다. 마틴 루터가 부패한 로마 카토릭과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마틴 루터는 1521년에 보름스(Worms)에 있는 제국의회에 출두하여 증언을 해야 했습니다. 그가 황제 및 독일 제국의 대 영주들 앞에 서서 증언을 한다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전날 밤 루터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통하였습니다. 이때 부인이 그의 방 앞에서 상복을 입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누가 죽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루터는 믿음이 없어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담대하게 나아가 진리를 위해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제국의회에 참석하여 권세자들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황제는 루터의 책들을 가리키며 “그대는 그 책들을 철회하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루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힌 바 되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양심에 불복하는 것은 옳은 것도 안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그가 작시한 유명한 찬송가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찬384) 우리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려면 나의 연약함을 깊이 인정하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 때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함으로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사단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섯째, 말씀을 붙들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7b,8). 7b,8절을 보십시오.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는 현재 수많은 원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정복전쟁에 승리하려면 적극적으로 군사훈련을 시키고 무기를 준비하고 참모들과 함께 세밀한 작전을 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주야로 묵상하며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철저히 말씀을 붙들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입과 마음과 생각과 삶을 지배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에 사로잡힌 바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을 때 가는 곳마다 형통했으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사단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사단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죄와 죽음과 마귀의 세력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많이 있지만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구원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죽음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구원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평소에 귀하게 여기는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세상의 그 어떤 책도 우리를 죄와 죽음과 마귀의 세력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영적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 3:16).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빛이요, 등입니다(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인생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전쟁은 모사, 즉 지혜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이 내게 있으므로 원수보다 지혜롭고 스승보다 명철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끊임없는 지혜와 능력과 용기와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John Hulley라는 사람이 15년동안 두뇌개발을 연구했는데 특별히 노벨상 수상자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Comets Jews, & Christians”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노벨 수상자들의 출신을 분석해 보면 개신교국가, 개신교 배경을 가진 자들이 64%, 유대교 22%, 카톨릭 12%, 희랍정교 1.9%, 불교 0.9%라고 하였습니다. 개신교와 유대교의 공통점은 성경을 절대적인 권위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경우도 공산주의나 모슬렘 국가가 아니라 개신교국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절대적인 권위로 삼고 있는 개신교와 유대교와 카톨릭을 합하면 98%가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두뇌개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말해 줍니다. 성경을 읽는 개인이나 민족이 성공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전 한남대 총장이요, 현재 한국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이신 이원설 박사님은 성경을 읽는 백성은 지혜로와진다는 확신하에 성경 읽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루에 석장씩 읽기에 힘쓴다고 합니다. 너무 바쁠 때는 시편에 나오는 가장 짧은 성경을 읽는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한 형제님은 중학교 2학년 때 성적문제와 친구문제와 성격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괴로와 했습니다. 이때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하루에 성경을 한 장씩 읽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권면을 영접하고 매일 하루 한 장씩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영적소원이 충만하게 되어 성적이 향상되고 성격도 원만해지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대 목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이번에 고대 경영학과에 특차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어떻게 도울 줄 아는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며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승리의 비결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각종 사상과 이론을 굴복시키고 죄악되고 타락한 문화를 거슬러 싸워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힘써 해야 할 일은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준행하며 말씀을 가르치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진군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과 권면의 말씀을 심령깊이 영접했습니다. 그 때 그의 심령에는 믿음과 용기가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했습니다. 그는 먼저 백성들로 하여금 양식을 예비하도록 하였습니다(10,11). 이는 정복전쟁을 위해 실제적인 준비였습니다. 그 후에 견고한 성령의 그릇을 이루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에게 모세와 약속한 것과 같이 먼저 건너가서 가나안 정복전쟁의 선봉장이 되라고 명령했습니다(12-15).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요단 이편에 기업의 땅을 얻은 지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입장에서는 정복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이기적이고 다른 형제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로 하여금 형제들을 위하여 적극 고난에 동참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정복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한 사람도 놀거나 이탈함이 없이 합심하도록 도왔습니다. 영적 전쟁에 있어서 합심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 전쟁은 능력있고 훌륭한 개인보다 부족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합심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16-18). 그들은 적극적으로 지도자를 세웠습니다. 지도자는 태어날 때부터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위해 격려해주고 받쳐주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질서를 세우고 견고한 성령의 그릇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한분 한분이 말씀을 붙들고 투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