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 View


여호수아 4:1-24

by Mark Yang   05/04/2022   Joshua 4:1~24

Message


여호수아 제 4 강

역사교육의 중요성

■ 말씀: 여호수아 4:1-24
■ 요절: 여호수아 4:6,7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직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교육은 단순한 역사교육이 아니라 후일에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능력의 역사를 가르치도록 하시는 신앙교육인 동시에 역사교육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역사교육과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역사의식의 중요성 (1-3)

  1-3절을 보십시오.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매 지파에서 선출된 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바로 그곳에서 열 두 돌을 취하도록 하셨습니다.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쳤을 때 그들의 상태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한방울 묻히지 않고 건넜을 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약 40년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미리암을 중심으로 모든 여인들은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1-21). 이와 같이 그들도 요단을 건넜을 때 감사 충만, 은혜 충만, 기쁨 충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격도 잠시 뿐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의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다 까먹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받지 않은 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직후에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마실 물이 없자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마실 물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거나, 길이 험하거나, 고기를 먹고 싶거나, 애굽의 가마솥 곁에서 주어먹던 생선과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이 먹고 싶으면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사랑을 많이 체험하였지만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히면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감사할 줄 몰랐고 기도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늘 불평불만이 가득하였고, 그들의 입은 항상 3cm가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과거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식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과거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돌봐주시고 인도해 오셨는가를 기억하였더라면, 힘든 현실에 부딪힐 때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에 힘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기에 힘썼을 것입니다. 역사의식을 가질 때 현실문제에 매이지 않고 역경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안목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혜가 충만할 바로 그 때에 그들이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쉽게 은혜를 망각하는 죄악된 본성의 소유자임을 너무나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대만을 위해 살지 않고 역사의식을 가지고 후손들을 위해 살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이란 역사의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도 항상 ‘너와 네 후손’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역사성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되 역사의식을 가지고 하는 것과 역사의식이 없이 되는 대로 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의식을 갖게 되면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되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내가 하는 행동이 후배들과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을 보이고자 투쟁하게 됩니다.
  죠지 워싱톤이 초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역사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일에 신중하게 처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접견식, 축하 연회, 사사로운 친구방문, 식사, 복장 등 사소한 점에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나아가는 길은 지금까지 아무도 발을 들여 놓지 않은 땅이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행동이 후세에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가 두 번째 대통령 임기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그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할 것 없이 그가 계속해서 대통령 직무을 수행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3선, 4선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전제 정치의 원인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나는 제 1 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선례를 남기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썼지만, 이제 또 대통령직을 물러남으로써 선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선례를 남긴 죠지 워싱톤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는 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역사의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나의 후배들에게, 나의 자녀들에게, 나의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역사교육의 중요성 (4-24)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각 지파에서 선출된 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이 서 있던 곳에서 열 두 돌을 취하도록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6,7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역사의 산 현장에서 기념할만한 열 두 돌을 취하도록 하심으로 요단강 도하 사건을 역사화 시키셨습니다. 그들이 취한 돌은 취하기 전에는 아무 의미없이 요단 강에 굴러 다니는 보통 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열 두 돌을 취했을 때는 그 돌은 하나의 의미를 지닌 역사적인 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이 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나타내는 표징이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표징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승리의 표징입니다. 그들은 이 돌들을 볼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기억하고 그들의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돌들은 후손들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는 돌이었습니다. 후일에 그들의 후손들이 ‘아빠, 이 돌들이 왜 여기 서 있지요? 이 돌들이 지닌 뜻이 무엇이죠?'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야 했었지. 그런데 넘실거리는 요단강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믿음으로 요단강에 발을 내딛었지. 그러자 놀랍게도 그 넘실거리던 요단강물이 언약궤 앞에서 뚝 끊어져서 거대한 물벽을 이루며 쌓이는 것이 아니겠니?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역사였지. 그 돌들은 바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영원토록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이제 알겠니?” 하나님은 이렇게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도록 하셨습니다. 기념비는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8,9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요단 가운데서 돌 열 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요단 가운데에 돌 열 둘을 기념비로 세웠습니다.
  10-18절까지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목자로서 끝까지 수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사장들은 가장 먼저 요단물을 밟았고, 또 백성들이 다 건넌 후에 가장 나중에 나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단물에 들어가라고 명했을 때 빠져 죽을 각오를 하고 믿음으로 들어갔으며, 또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요단에서 올라오도록 명령하실 때까지 언약궤를 메고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요단 가운데 서 있는 동안에는 감히 물이 침범하지 못하다가, 그들이 요단에서 올라오자 마자 쌓였던 물이 다시 흐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기도와 말씀전파에 전념하는 한 세상의 죄악의 물결이 감히 침범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왕같은 제사장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도 죄악이 넘실거리는 세상에서 요동치 않고 기도와 말씀으로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죄의 세력은 물러가고 양들이 안심하고 죄악의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동의 더운 날씨에 아무 짐도 지지 않고 부동의 자세로 계속 서 있는 일도 피곤하고 힘든 일인데 언약궤를 메고 하루종일 서 있어야만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또 언제 물이 다시 흐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요단 한 가운데 서 있기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 사명이 힘들다고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끝까지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목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본을 보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성 있게 섬겼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을 보면 그 배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말씀을 굳게 붙들고 믿음의 중심을 굳게 지키는 제사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9-2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월 십일에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이르러 요단에서 가지고 온 열 두 돌을 그곳에 기념비로 세우고 반복해서 역사교육을 시키는 장면입니다. 후일에 그들의 자손이 이 돌이 무슨 뜻인가 물으면 하나님께서 홍해를 말리시고 건너가게 하신 것과 같이, 요단을 마르게 하사 우리로 건너가게 하셨음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철저하게 역사교육을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역사교육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능력의 역사를 가르치는 신앙교육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녀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킴과 동시에 신앙교육을 시키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 특히 우리의 자녀들에게 역사교육과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게 됩니다.
  역사상 자녀들에게 역사교육과 신앙교육을 가장 잘 시키는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최대의 역사가요, 문명 비평가인 토인비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세계사에 있어서 하나의 경이요,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상 그들처럼 많은 환난과 핍박과 시련을 겪고, 그들처럼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무자비한 역경을 겪은 민족은 없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들은 1천 6백만명의 동포 가운데 6백만명이 학살당했습니다. 또한 그들처럼 장구한 세월동안 시련을 겪은 민족은 없습니다. AD 70년에 나라를 잃은 후부터 1948년에 다시 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그들은 각 나라에 흩어져서 온갖 조롱과 핍박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이런 비참한 운명과 역사적인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들처럼 끈질기게 버티면서 자녀들을 훌륭하게 길러내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민족은 일찍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의 인구는 약 1,500만명으로서 세계인구의 0.3%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300명의 노벨 수상자 중에서 유대인 출신이 93명, 약 3분의 1에 해당되는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1986년 통계). 유대인들은 어느 한 분야만 우수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의학, 법학, 물리학, 화학,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습니다. 미국의 70만명 변호사 중에서 20%인 14만명이 유대인이고(1985년 통계), 400명의 재벌 중에서 23%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 대학 교수 중에서 약 30%가 유대인이고, 하버드 대학이나 UCLA의 의대 및 법대 교수들 중 5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좋은 영향이든 악영향이든 역사상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 중에 유대인들이 많습니다.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 심리학자 프로이드, 화가 샤갈, 상대성 이론가 아인슈타인, 세계적 지휘자 번스타인, 국제 외교가 키신저, 영화 감독 스필버그 등 이름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그들의 우수성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아서일까요? 아니면 후천적인 개발, 즉 그들의 특수한 교육에 의해서일까요?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하나 같이 유대인은 천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교육에 의해 우수한 민족이 됨을 증명했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핏줄 속에는 어떤 민족도 모방할 수 없는 하나의 무서운 정열이 있는데 그 정열을 두 개의 수레바퀴로 비유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 수레바퀴는 교육이고, 다른 수레바퀴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즉 교육에 대한 정열과 신앙에 대한 정열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육학자는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육받을 기회가 있어야 하고, 상징적 도구를 잘 활용해야 하며, 일관성있게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세가지 요소가 다 나타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으셨다면 요단강 도하사건이 그 당시에는 큰 의미가 있었는지 몰라도 후손들에게 그 의미가 전달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단강 도하사건을 역사화시키심으로 그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건을 역사화시켜 후손들에게 교육의 재료로 삼도록 하신 것은 성경 도처에 나옵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기 전 유월절 예식을 지킬 때도 후일에 자녀들에게 그 역사적인 의미를 가르치도록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명절이 오면 편히 쉰다거나 여행을 하여 기분을 전환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절을 자녀들에게 교육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한밤중에 부모가 자녀들을 깨웁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한밤중에 곤히 자고 있다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서 짜증스럽게 묻습니다. “아빠, 왜 한밤중에 깨워요?” 그러면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가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애굽을 떠날 때 급히 한밤중에 일어나 허리 띠를 매고 유월절 식사를 하였단다. 우리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밤중에 일어나 유월절 식사를 하는 것이란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명절은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한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역사교육과 신앙교육을 시킬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단강 도하사건을 자손들에게 교육하는 기회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돌로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상징을 사용하여 자녀들을 교육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냥 말로 하는 것보다 시청각 교재를 사용할 때 훨씬 교육의 효과가 높은 것을 잘 압니다. 역사교육도 앉아서 배우는 것보다 역사의 현장에 가서 기념비를 보고 배우게 되면 산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식이 있는 민족은 보고 배울만한 상징적인 도구를 많이 만들어서 이를 교육의 기회로 활용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도처에 기념비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1991년 러시아에 3일 천하로 끝난 쿠데타가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시민들이 버스로 쿠데타를 막아내다가 버스가 불타고 부서지게 되었습니다. 쿠데타가 끝난 후 역사박물관에 가보니 그곳에 불탄 버스가 그대로 보존되어 와 있었습니다. 지금도 모스크바에 있는 역사박물관에 가보면 그 때 불탄 버스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역사적인 유물을 없애 버립니다. 중앙청사는 일제가 지었기 때문에 국민정서를 해친다고 하여 폭파시켜 버려 역사의 흔적을 없이해 버렸습니다. 일제 시대 때 그 흔했던 신사참배 사당도 다 없애 버렸기 때문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새문안 교회는 언더우더가 세운 역사적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장소가 비좁기 때문에 교회를 크게 짓기 위해 옛날 건물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만일 100년 전에 세운 교회 그대로 보존했더라면 오늘날 얼마나 역사적인 가치가 있겠습니까? 영국에 가보면 역사적인 가치가 될 만한 건물은 절대로 허물지 못하도록 법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옛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역사적인 기념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찾아보면 도처에 역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기념물이 많이 있습니다. 가깝게는 초대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이 있고, 1866년 병인양효 때 프랑스 선교사 9명을 비롯하여 8천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의 피를 뿌린 절두산 성지가 있습니다. 이런 곳에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역사교육을 시키다면 산 교육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금요일에 제 아들 마가를 데리고 양화진과 절두산을 탐방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양화진이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한강변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약 100년전 가난과 질병과 무지와 억압 속에서 신음하던 이 백성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와서 한 알의 밀알의 인생을 살다가 순교의 피를 뿌린 수많은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더 가족,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가족, 세브란스 병원장 에비슨, 헤이그 밀사로 파송되었던 헐버트, 대한 매일 신보의 창설자 베델, 여성 신교육의 선구적 요람인 이화학당의 창시자 스크렌톤 여사, 또 정신 여학당의 창시자 애니 엘러스 등 75명의 선교사들의 무덤과 36명의 어린이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헐버트의 비문에는 “비전의 사람 (Man of Vision), 한국의 친구 (Friend of Korea)라는 글귀와 함께,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아펜젤러의 비문에는 제물포에서 상륙하자마자 첫기도를 드린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또 다른 한면에는 그가 선교활동 중 목포 앞바다에서 전복된 배에서 한국 소녀를 구하다가 익사했음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찾아 역사탐방을 하며 역사교육을 한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신 내용은 일반 역사교육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가르치는 신앙교육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자녀들에게 열심히 교육을 시키는 민족도 드뭅니다. 우리네 부모들은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자녀교육을 시키고자 합니다. 소를 팔고 품팔이를 해서라도 절대적으로 자녀를 교육시키고자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 교육에는 열심이 있지만 신앙교육은 등한히 한다는 것입니다. 등한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성경공부를 하면 이를 하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핍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힘써야 할 것은 신앙교육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기고, 양식있는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지식을 남기며, 지혜로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신앙을 남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아무리 도움을 많이 준다 할지라도 영원히 도움을 줄 수 없고, 또 근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인생의 폭풍우와 비바람을 만날 때 그 어떤 것도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없지만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 줄 때 그들은 믿음으로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부모처럼 지혜로운 부모는 없습니다.
  역사상 하나님께서 쓰신 위대한 인물들의 배후을 살펴보면 그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킨 훌륭한 신앙의 부모들, 특히 신앙의 어머니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어거스틴 뒤에는 30년동안 한결같이 눈물로 기도한 모니카가 있었고, 웨슬리 뒤에는 믿음의 어머니 수산나가 있었으며, 링컨 뒤에도 어릴 때 링컨을 무릎에 앉혀놓고 성경을 읽어주었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링컨의 어머니는 마지막 유언으로 링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늘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다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후에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오늘, 나의 희망, 이 모든 것은 천사와 같은 내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나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치, 경제, 교육, 예술 각 분야에 하나님 없는 세상의 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인본주의와 무신론적 교육만 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실업가이자 작가인 로저 밥슨은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25년전 우리 때보다 천배나 더 유혹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세상교육에만 맡겨 둔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교육만이 교육의 전부가 아닙니다. 가정은 최고의 교실이요, 부모는 최고의 교사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부모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통해 그대로 부모들의 인격과 삶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인격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또 직접 성경을 가르침으로써, 자녀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신앙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때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잠언 14:26,27절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의뢰하는 재물, 권세, 지식 등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믿음이 없는 자는 환난 중에 엎드려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실제 생활에서도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잠언 22:4은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승리의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역사부재의 시대에 역사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힘써 역사교육과 신앙교육을 시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