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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24장(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by Mark Yang   08/14/2019   Exodus

Message


출애굽기 제 7 강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말씀: 출애굽기 19-24장
요절: 출애굽기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애굽기 1-18장까지는 역사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역사와 광야 훈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19-40장까지는 율법편으로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계명과 율례를 주시고 성막과 제사장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1-18장은 주로 구속에 관해 말해 주고 있다면, 19-40장은 구속한 백성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크신 뜻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친히 강림하셔서 거룩한 율법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때까지 법이 없었기 때문에 감정과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룩한 율법을 주심으로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법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감정과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아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살아야 됩니다. 그리할 때 그들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와 이 백성에게 두신 크신 뜻을 깨닫고 이를 힘써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19장)

첫째,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신 하나님(1-4)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제 3월에 그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러 산 앞에 장막을 쳤습니다. (출애굽한 날이 정월 15일이고 또 애굽에서 나온 지 50일만에 율법을 수여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 오순절임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이 산 앞에 장막을 친 날은 3월 초순 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산은 시내산 또는 호렙산으로서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역사적인 곳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너희가 이 산에서 나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신 뜻을 두시고 목적지인 가나안과는 정반대 방향인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계시해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법도인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사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친 후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 사람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이는 우상 숭배에 대한 심판이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압제하고 착취한 것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노예 상태에 있는 그들을 건져내시되 독수리 같이 강하고 신속하고 안전하게 건져내시고, 또 광야에서 그들을 쓰실만한 백성으로 훈련하셨음을 말해 주는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32:11절에 보면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독수리가 새끼를 키울 때는 새끼가 안일하게 지내지 못하도록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독수리는 새끼가 소시민적인 새가 되기를 원치 않고 새의 왕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때문에 강훈련을 시킵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업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사정없이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살기 위해 날개를 필사적으로 너풀거리다가 힘이 없어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뇌진탕을 일으켜 즉사하기 일보직전. 어미 독수리는 그 넓은 날개로 살짝 받아서 다시 위로 올라갑니다. 이렇게 수없이 훈련하다 보면 새끼의 날개는 튼튼해 져서 자립적으로 힘차게 창공을 날아 오를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강훈련을 통해 새끼는 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나 모든 새 위에 군림하는 새의 왕자가 됩니다. 이렇게 훈련시켜서 쓸 만한 독수리가 되게 하는 것이 새끼에 대한 어미 독수리의 사랑입니다. 만일 독수리 새끼가 훈련을 받지 못한다면 모양은 독수리지만 병든 독수리가 되어 아무 쓸모없게 될 것입니다. 훈련은 최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생활에 젖어 출애굽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출애굽하지 않고 노예생활을 하더라도 애굽에서 편히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에서 무사 안일하게 소시민적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 역사를 섬기는 거룩한 사명인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험한 광야로 끌어내사 강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는 얄팍한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사랑하지 않으시고 영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훈련하십니다.(히12:6)

둘째, 이스라엘에게 두신 하나님의 크신 뜻(5,6)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신 크신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5,6절을 읽어보십시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 말씀에는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희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배로운 소유(a treasured possession)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이때까지 이스라엘은 바로의 소유였습니다. 바로는 그들 위에 군림하여 자유를 억압하고 기쁨과 희망을 앗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소유, 곧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한 목자가 되사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시고 참 자유와 생명을 주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을 때는 사단의 소유였습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감정과 물질과 정욕의 종이 되어 세상의 헛된 것을 섬기게 합니다. 사단의 종노릇 할 때는 무엇을 하나 기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원 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아끼는 보물이 있으면 이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몹시 아끼시고 애지중지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될 때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과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사 43:4). 사단의 소유가 될 때 사단은 우리를 이용하고 죄의 열매를 맺게 하고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수단으로 삼지 않으시고 목적으로 삼으십니다. 우리의 인간 조건이 어떠하든간에 개의치 않으시고 우리 자체를 귀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실수를 정죄하기보다 감당해 주시고 우리를 쓰실 만한 하나님의 자녀로 키워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에 이르는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또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둘째로,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 하십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이 하는 일은 첫째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요, 둘째는,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고 중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백성들은 제사장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제사장 나라는 만백성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목자의 나라요, 성경 선생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계 만민의 목자의 나라요, 성경 선생의 나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눈부신 과학 문명과 풍요한 물질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면 당연히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메마르고 삭막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하나 참 만족이 없고 기쁨과 생명이 없습니다. 세상 지식은 풍부하지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영혼은 바싹바싹 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명을 알지 못하고 또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알지 못하고 영적 무지 가운데서 죄로 인해 고통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성경공부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을 가르쳐 주고 그들의 허물과 죄를 담당해 주고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돌봐 주고 간절히 기도해 주는 사명을 맡은 자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에게 이런 제사장 나라로서의 큰 뜻을 두셨습니다.
셋째로,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이는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 세상 나라와 구별된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거룩이란 도덕적인 순결도 의미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내면이 거룩하지 못했습니다. 21-23장까지를 살펴보면 그들은 음란하고 정욕적이었고 감정적이었습니다. 감정에 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부모를 치는 자도 있었습니다. 또 무책임하였고 무자비하였습니다. 그들의 내면은 탐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추하고 더러운 내면성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을 가진 자들로 그 내면을 변화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상을 살펴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큰 뜻을 두고 계시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노예 백성의 특징은 소원이 저급하다는 것입니다.그들은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는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소망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에게 희망을 둘 수 없었고 또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희망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희망을 두셨습니다. 이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서 제사장 왕국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거리의 깡패들이나 흉악범들이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고 이들이 온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목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200만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 모든 백성들의 선한 목자가 되는 희망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의 희망은 너무나 커서 그 넓이와 길이를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큰 희망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한 사람, 한사람을 이 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만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 주고 그들의 죄를 담당해 주고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해 주는 목자의 나라요, 성경선생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놀라운 희망을 두셨기 때문에 나는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놀라운 희망을 두셨기 때문에 이 백성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없이 부족한 우리에게 희망을 두신 것은 우리를 통해 온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5a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현재 이스라엘 백성은 부족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족할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이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이들을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도 늙은이로서 복의 근원이 될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천하 만민의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온 세상 만민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진술하자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일제히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며 응답했습니다. 이들은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신 뜻을 영접하고 인격적인 결단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위해 시내 산에서 친히 강림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백성들로 하여금 옷을 빨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때묻은 와이셔츠나 얼룩진 블라우스를 입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옷을 깨끗이 빨고 목욕 재계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육신의 정욕을 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호기심으로 산에 오르거나 지경을 범하지 못하도록 경계하셨습니다. 그후 제 삼일 아침에 시내 산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우렁찬 나팔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후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더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강림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엄위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인간이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논의의 대상이나 비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생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순종해야 할 분이십니다.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고 옷깃을 여미며 나아가 엎으려 경배해야 할 분이십니다.

Ⅱ. 계명과 율례를 주신 하나님(20-24장)

율법은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 주신 것이므로 시대를 막론하고 폐지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제사법으로서 이는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심으로 자연히 폐지 되었습니다. 셋째로, 시민법으로서 시민 생활에 필요한 법입니다. 이 시민법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지만 그 가운데 나타난 법의 정신이 중요합니다.

첫째,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20장)
20:1-17절까지는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은 하나 하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한 강의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은 여호와의 강림하심을 보고 심히 두려워 떨었습니다. 너무 두려워서 하나님이 직접 자신들과 말씀하시지 말고 중보자를 통해 말씀하시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중보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림하심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여 범죄치 않도록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우상숭배의 죄와 도덕적 죄와, 사회적 부패에서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20:22-26절은 종교법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부재중인 것처럼 신상을 만드는 것을 경계 하셨습니다. 다신론과 범신론을 경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단은 아무 꾸밈없이 소박하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만일 제단을 화려하게 꾸미게 되면 제단 자체를 우상시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제사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야 하는데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고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합니다. 번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희생을 의미하고 화목제는 이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둘째, 율례를 주신 하나님(21-23장)
21-23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구체적인 율례가 있습니다 그 율례를 주제별로 나누어 보면 ① 종에 대한 율례(21:1-11) ② 사람에게 해를 끼쳤을 때의 율례(21:12-36) ③ 재산의 배상에 관한 율례(22:1-15) ④ 사회적 책임에 관한 율례(22:16-31) ⑤ 공의와 자비에 관한 율례(23:1-9) ⑥ 절기에 관한 율례(23:10-19)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율례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나타난 정신이 중요합니다.

첫째, 자유와 관용에 대한 정신이 나타나 있습니다. 노예제도는 고대 사회의 보편적인 악이었습니다. 노예는 경제 문제나 전쟁으로 인해 생겨났는데 이는 19세기 이후에야 폐지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노예가 되면 평생 노예가 되어 주인 밑에서 죽도록 일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노예는 재산과 같이 취급되었기 때문에 노예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 법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7년만에 자유를 주라고 하십니다. 이는 혁명적인 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십니다.
21:7-11절까지는 여종에 관한 법입니다. 당시 여자 노예는 주인의 노리갯감에 불과했으므로 주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종의 기본 권리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둘째, 남의 생명과 재산을 귀하게 여기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귀히 여기는 것처럼 남의 생명과 재산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쳤으면 반드시 배상해야 합니다.

셋째, 공의와 자비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고 공평하게 재판하고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면 돌려 주고 자비를 베풀라고 하십니다. 공의와 자비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율례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22:3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지 못했습니다. 감정과 욕심대로 행했습니다. 음란했습니다. 심지어는 짐승과 행음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실생활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율례를 가르쳐 주심으로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23:20-33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명과 율례를 지킬 때 모든 원수들로부터 지켜 주시고 또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병을 제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장수의 축복도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가 승리의 인생을 살고 영육간에 건강하고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백성의 결단 (24:1-11)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과 함께 여호와께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경배하고 모세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를 백성들에게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응답했습니다.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 피를 취하여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낭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운 언약의 피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짐승의 피로 언약을 인쳤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잠시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언약은 쌍방간의 이루어진 약속입니다. 만일 어느 한 쪽이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면 약속은 파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지키겠다고 철석같이 맹세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 지킬 수 없음을 말해 줍니다. 인간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언약을 파기치 아니하시고 새로운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누가복음 22:2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구 언약은 짐승의 피로 인쳤지만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로 인쳤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완전하고 확실하고 영원합니다. 구 언약은 우리에게 행위로 순종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새 언약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구 언약은 행위언약이라고 하고 새 언약은 은혜언약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연약하여 아무도 구 언약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믿음으로 말미암은 새 언약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사죄의 은혜를 베푸시고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해 주시고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계명과 율례, 곧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잘 감당치 못했습니다. 결국 그 축복이 이방인에게 넘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새 이스라엘로 삼으시고 이와 동일한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나와 이 백성을 이 시대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날 서구라파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서구 사회는 소돔. 고모라와 같이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버린 그들은 동물의 차원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날로 사람 살기가 힘들만큼 황무하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특별히 귀한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세계 선교 사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백성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말씀을 사랑합니다. 기도를 많이 합니다. 이 백성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사장 나라입니다.
우리가 제사장 나라로서 축복을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말씀 연구와 제자양성과 세계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투쟁하고 제자양성을 통해 세계선교를 하고자 힘쓸 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를 온 세상 만민의 목자의 나라요 성경 선생의 나라로서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않고 또 세계 선교 사명을 힘써 감당치 아니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영적 특권과 축복을 다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큰 뜻을 두시고 훈련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