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모스크바 제자 수양회 개회 (2월 6일)
하나님의 뜻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이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첫째, 항상 기뻐하라 (5:16)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사도 바울의 서신에 자주 나오는 말씀입니다. 특히 빌립보서는 옥중에서 쓴 서신인데 기쁨이란 단어가 무려 18번이나 나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은 옥에 갇혀 있고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기뻐할 형편이 못됩니다. 그런데도 그는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그에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슬프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시고 우리에게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소유나 환경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축복들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조건과 형편에 관계없이 늘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 뿐 아니라 아플 때도 기뻐하고, 축복의 때 뿐 아니라 고난의 때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삶과 죽음의 생물학적 메카니즘을 내부에 가지고 있는데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신체에 ‘삶’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우울함과 공포과 갈등은 ‘죽음’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합니다. 마음의 우울상태는 암과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보스톤의 버나드 휙스 박사는 우울상태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두 배나 암에 걸리기 쉽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지 않으면 사단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여 우리로 하여금 슬퍼하게 하고 우울에 빠지게 하여 결국에는 암에 걸리게 함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 (5:17)
5:17절을 보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흔히 기도는 신앙생활의 호흡과 같다고 합니다. 호흡하지 않으면 죽는 것과 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생명력을 상실하고 영적으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죽은 신앙생활을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스피릿이 있고 생명력이 넘칩니다.
기도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기도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사단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내 힘으로 할 수 없고 위로부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기도는 위로부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사단의 시험에 들게 됩니다(막 14:37,38). 그러나 기도하게 되면 분별력이 생겨 사단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특히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게 되면 문제를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사무엘서에 나오는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한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분이 많은 브닌나로부터 “아이도 못 낳는 네가 무슨 여자냐?” 하고 놀림을 받을 때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인간적인 싸움을 싸우지 않고 문제를 안고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을 쏟아 놓고 기도함으로써 고차원적인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이때 그녀는 사무엘을 낳아 양육함으로써 어려운 그 시대를 섬기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할까요? 이것은 끊임없이 지껄이며 기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꾸준하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분명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그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줄기차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니카는 방탕아 어거스틴이 변화되어 성어거스틴이 되기까지 17년 동안 쉬지 않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에 있어서 새벽 시간에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새벽 시간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57:8절에서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노랬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기도하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새벽 기도를 통해서 하늘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을 수 있고, 역경에서 은총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기도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도는 ‘절망’, ‘한숨’, ‘눈물’을 ‘희망’, ‘찬양’, ‘미소’로 바꾸어 줍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 (5:18)
5: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대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 감사를 빠뜨리는 것은 두 날개에 상처를 입고 날지 못하는 새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치 않는 것은 모든 죄의 원인입니다. 로마서 1:21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인간이 타락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치 않은 데에 있습니다. 감사치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전염병과 같은 것입니다. 원망은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죽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는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립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파괴되어 버립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면 사단이 역사하게 되지만, 감사하게 되면 성령이 역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현실의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불신자들에게 모함을 당하여 사자굴에 들어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올무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이를 계속하면 굶주린 사자굴에 들어가 사자밥이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어떻게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감사기도가 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그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는 그가 이때까지 자기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깊이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방 땅에서 승리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감사하게 되면 내면의 병든 마음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병균도 죽게 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시대를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며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가 이런 생활을 계속하게 되자 그의 몸이 돌과 같이 굳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병은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독실한 크리스천이요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는 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루에 1만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 줄 것입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점점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평범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 개를 주었는데 그는 반사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감사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불평은 불행을 낳지만 감사는 행복을 창조합니다. 감사하게 되면 행복해 집니다. 감사는 행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사할 조건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감사제목을 찾으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맹인이었던 헬렌 켈러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둘째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 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의 소망은 우리가 매일 누릴 수 있는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감사제목을 찾지 못하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하고자 하면 감사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생명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두 눈으로 보고 두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것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를 하되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한 두 번 감사하기는 쉬운데 범사에 감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으면 감사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감사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감사는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in all circumstances) 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를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이는 반드시 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은혜가 넘치고 스피릿이 넘치고 승리가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